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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아 Jul 22. 2024

꺼이꺼이

(우리들의 아버지께)

  J의 아버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큰 키에, 넓은 어깨에, 평생 스포츠머리였으며 불의를, 예의 없음을, 학생이 학생답지 못함을 참지 못하는 분이었다.

  때는 1980년 대 어느 날. J의 아버지가 예고 없이 동네 친구네 집을 방문했는데, 아버지의 친구는 없고 친구의 자식들만 안방에서 학교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채로. 그걸 본 J의 아버지는 구두를 신은 채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가 그 자리에 있던 무리들을 가차 없이 혼을 냈다. 어찌나 무섭게 호통을 쳤던지 덩치 큰 남고생들이 오금이 저려 슬금슬금 빠져나갔고 나가기가 무섭게 줄행랑을 쳤다고.


   J에게는 공영방송 피디인 먼 친척뻘 삼촌이 있다. 워낙에 안하무인인 사람인데 명절에 J의 아버지를 보고도 인사를 안 하고 지나친 적이 있다 한다. 그걸 본 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가열하게 귀 X대기를 치며 호통을 쳤다. 그 뒤로 그가 J의 아버지를 보는 족족 인사했음은 물론이다.

  J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매일 조르던 시절, 그의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며 결사반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놀라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존심 세고 꼿꼿하기 이를 데 없던 의 아버지가 딸을 위해 그 옛날 뺨을 쳤던(그 뒤로 사이가 매끄럽지 않았던) 사촌동생을 찾아가 "내 딸이 음악을 하고 싶다는데 네가 좀 도와줄 수 없겠냐"며 고개 숙여 읍소했다 한다... 물론 거절당했다.

  유순한 J와 엄하고 무섭기 그지없는 그의 아버지는 언뜻 상반되어 보이나, 공통분모가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J의 오빠는 아버지를 닮아 덩치가 크고 체격이 좋아 일찌감치 유도를 하였고 그 외에도 온갖 스포츠에 능했다. 그가 군대에 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차출의 기미가 보였다. 의장대, 헌병, 특공대. 그런데 하필 가장 힘들다는 특공대에 뽑혔다. 그 소식을 들은 J의 아버지는 온갖 인맥을 동원해 특공대 만은 막아보려 사방팔방으로 애를 썼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특공대에서 빼내지 못한 J의 아버지는 큰 아들이 특공대에 들어간 첫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꺼이꺼이 큰 소리로 통곡을 하고 말았다. 이러다 동네 사람들이 놀라 쫓아오지나 않을까 싶게 눈물을, 안타까움을 쏟아부었다. 고생할 아들 생각에 가슴이 저며 왔으리라. J와 의 엄마는 아빠가, 남편이 저렇게 목놓아 우는 모습에 같이 울고 말았다. 이야기를 듣던 나도 울었다.

(결국 J의 오빠는 특공대에서 평생 잊지 못할, 죽을 만큼의 고생을 다 하고 나왔다 한다).


  그 슬픔도, 안타까움도, 눈물도 다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J의 아버지는 이른 나이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J의 가슴속에는 아버지와의 애틋한 기억이 고여 있다. 는 40여 년 전의 일이라도 아버지와 관계있는 거라면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다.

  J의 아버지는 J안에 있다. 마음 깊은 곳에 기둥으로. 그는 아버지와 마음으로 교감하며,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J의 원천인  아버지는 J의 아들 딸에게, 또 그들 자식의 자식들에게 그 외 여러 경로로 계속 '계승'된다. 그래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이어지고 연결되는 것이 이 세상의 오묘한 이치이리라.


(몇십 년 전의 군대 상황인지라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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