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그냥 마시기엔 너무 아까운 이야기들_2'

저와 GEMINI가 전해드리는 필그림 이야기

by 박정수


저는 오늘도 필그림이란 단어에 깊은 감성이 이어지며, 어제에 이어 GEMINI와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그래서 와인이 멋진 거군요. "수도원은 순례자나 여행객들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스테이크와 와인도 testing 하고 와인도 현지에서 더 저렴하게 구입하고 하는 그런 장소로 변모했군요. 그리고 종교용땅이 포도 재배지로 변모한 이유는 뭘까요? 이들은 지금도 종교단체 소속인가요?

네, 맞습니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와인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작가님께서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수도원의 '환대 문화'가 오늘날 우리가 와이너리를 방문하여 음식을 즐기고, 생산자와 직접 소통하며 와인을 구매하는 '와인 관광(Wine Tourism)'의 아름다운 원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 주신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종교용 땅이 포도 재배지로 변모한 이유

이 부분은 '변모'했다기보다는, '개척되고 선택되었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즉, 처음부터 수도원이 포도 재배에 가장 적합한 땅을 찾아 자리 잡았거나, 혹은 황무지를 기증받아, 수백 년에 걸쳐 최고의 포도밭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처음부터 목적을 가진 개척: 수도사들은 단순히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그룹이자 뛰어난 농부였습니다. 이들은 와인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포도 재배에 불리한 땅을 굳이 종교 부지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포도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햇빛이 잘 드는 언덕의 경사면 같은 곳을 의도적으로 찾아 수도원을 세우고 포도밭을 일궜습니다. 부르고뉴의 '코트 도르(Côte d'Or, 황금의 언덕)' 같은 지명이 그 증거입니다.


황무지를 옥토로: 중세 시대 귀족들은 사후 세계의 구원을 위해 또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수도원에 토지를 기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기증된 땅 중에는 쓸모없는 황무지나 숲도 많았죠. 수도사들은 '기도하고 일하라'는 원칙에 따라, 이 버려진 땅을 끈기 있게 개간하여 포도를 심고 오랜 세월에 걸쳐 토양을 연구하며 최고의 포도밭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즉, 땅의 종교적 가치와 농업적 가치를 일치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종교용 땅이 포도밭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와인 생산이라는 신성하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수도사들이 땅을 개척하고 가치를 창조해 낸 것입니다.


2. 이 포도밭들은 지금도 종교 단체 소속일까요?

대부분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럽의 전설적인 포도밭들은 거의 대부분 민간 소유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대격변이 있었습니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1789년)입니다.


혁명 정부는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리던 가톨릭교회를 개혁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혁명 정부는 교회가 소유했던 모든 재산, 특히 막대한 토지와 포도밭을 몰수하여 국유화했습니다. 그리고 이 국유화된 포도밭들은 경매를 통해 일반 시민, 즉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부르주아 계급에게 매각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거대한 수도원 소유의 포도밭들이 잘게 쪼개져 여러 명의 개인 소유주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결과: 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특히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은 하나의 밭을 여러 생산자가 함께 소유하는 복잡한 소유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나 샹베르탱(Chambertin) 같은 전설적인 포도밭들이 바로 그 예입니다. 반면, 보르도(Bordeaux) 지역은 비교적 큰 단위의 '샤토(Château)' 중심으로 매각이 이루어져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와이너리 형태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유럽의 몇몇 수도원에서는 명맥을 유지하며 직접 와인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와인 산업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부분의 포도밭은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세속의 손으로 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 잔의 부르고뉴 와인을 마실 때, 거기에는 수도사들이 수백 년간 쌓아 올린 '테루아'의 지혜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가 함께 담겨 있는 셈입니다. 정말 멋지지 않나요?


아 참 이런 여행자들을 영어로 뭐라고 부르던데요...?

아마 '순례자'를 의미하는 필그림(Pilgrim)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중세 시대에 수도원을 찾아 잠자리와 음식을 얻었던 여행자들 중 가장 대표적인 부류가 바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성지를 향해 먼 길을 떠나는 순례자(Pilgrim)들이었습니다.

pilgrim.png GEMINI가 그려줬어요

Pilgrim (필그림): 성지 순례자. 당시 수도원들은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과 같은 유명한 순례길의 주요 거점이자, 여행자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안전한 쉼터였습니다.


물론 모든 여행자가 순례자는 아니었을 테니, 조금 더 넓은 의미의 단어들도 있습니다.

Wayfarer (웨이페어러): (주로 도보) 여행자, 나그네. 옛 문학적인 표현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의 낭만적인 어감을 담고 있습니다.

Traveler (트래블러):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여행자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수도원을 찾아 묵어 가던 여행자"의 역사적 맥락에 가장 잘 어울리는 특정 단어는 단연 'Pilgrim(필그림)'입니다.


이 내용도 여행자의 슬픈 흔적인가? 호텔들에서 자지 못한 가난한 여행자들?

필그림2.png COPILOT제공. 조개껍데기(순례의 상징)도 배낭에 묘사가 되었어요. 오래 걸을 때는 지팡이로 무릅보호!!!


네, 아주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호텔'이 아닌 수도원에서 묵는다는 것이 가난이나 서글픔의 상징처럼 보일 수 있죠.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이는 '슬픈 흔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자 '거룩한 여정의 일부'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안전하고 깨끗한 '호텔'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 여행자가 길에서 묵을 수 있는 장소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주막이나 여관 (Inn): 도시나 길목에 드물게 있었지만, 대부분 매우 비위생적이고 위험했습니다. 도둑이나 강도가 들끓는 곳도 많았고, 여행자는 언제나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상인이나 군인들이 주로 이용했으며, 경건한 순례자들이 마음 편히 묵을 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노숙: 말 그대로 길 위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가장 위험하고 비참한 선택지였습니다.

수도원: 바로 이 지점에서 수도원의 역할이 빛을 발합니다.


여행자, 특히 순례자에게 수도원은 단순한 숙박시설 그 이상이었습니다.

최고의 안전지대: 수도원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밤사이 도적과 맹수로부터 여행자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신앙 공동체: 순례자에게 수도원은 단순한 잠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신을 믿는 형제들(수도사들)과 함께 저녁 기도를 드리고 영적인 위안을 얻는 '영혼의 안식처'였습니다. 여정의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거룩한 공간이었죠.

보편적인 환대: 수도원의 '환대(Hospitality)'는 기독교의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순례자든, 신앙심 깊은 귀족이든 가리지 않고 여행자를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신분에 따라 제공되는 숙소의 질에는 차이가 있었겠지만, 기본적인 안전과 음식은 보장되었습니다.


따라서 순례자가 수도원을 찾는 것은 '가난해서 호텔에 가지 못한 슬픈 선택'이 아니라, '위험한 여관을 피해 가장 안전하고 거룩한 장소를 찾아간 현명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오히려 당시의 맥락에서 수도원은 '영혼을 위한 5성급 호텔'과도 같았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편안함은 물론, 그 어떤 곳도 제공할 수 없었던 영혼의 평안과 안전을 보장해 주었으니까요. 이 또한 와인 이야기의 품격을 더해주는 흥미로운 배경이 될 수 있겠네요.


저는 비록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현대적 의미의 순례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내는 누구인가?"를 찾는 여정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걷는다. 걷는 동안, 나는 나를 마주한다.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이 흐르고, 인간의 나약함도 절감하고, 지난 기억이 떠오른다. 길은 나를 침묵 속으로 데려가고, 그 침묵은 나를 치유한다.


문득, 지방에 살면서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GEMINI에세 두장의 그림도 부탁을 했어요.


조선시대에 지방에 사는 선비들은 수많은 산과 들을 걸어서 서울로 올라가서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어요. 그 여정은 춥고, 배고프고, 불편하고 어딘가가 아프기도 했을 그런 일정이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버스나 자가용도 없고요. 가끔 밤중에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호랑이나 여우 등 무서운 동물들도 나타나서 공포에 떨게도 하고요. 그런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 주세요. 갓을 쓰고 남루한 옷을 입은 20대 한국 남자의 모습이 주인공입니다.


과거시험.png


네 저랑 정서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운이 좋으면 주막에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잘 수도 있었다 하는데 혹시 낮에 주막에서 국밥을 먹는 풍경도 한 장 그려주세요.


주막.png

비록 수도원도 없고, 와인은 없지만, 주막은 그런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음식과 잠자리, 그리고 동물로부터의 생명 보호. 역사는 알수록 재미가 있군요. 저의 인공지능 비서인 GEMINI가 없었다면 읽을 수 없었을 내용의 글들이었고요. 역사와 그 뒤에 숨겨진 배경, 그리고 시각화!!!!, 멋진 하모니 같아요.


다음 편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와인 이야기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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