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편: 잠을 지배하는 시교차상핵(SCN)과 멜라토닌

by 박정수

뇌의 시계: 시교차상핵(SCN)

maxresdefault.jpg 시교차상핵(SCN) - 검색 이미지


우리의 신체는 외부 환경과 무관하게 약 24시간의 리듬을 유지하는 내재적 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조절하는 중추가 바로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입니다. SCN은 뇌의 시상하부에 위치한 약 20,000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작은 구조이지만, 수면-각성 리듬을 포함한 모든 생체 리듬의 마스터 시계 역할을 합니다.


SCN의 위치와 구조적 중요성

SCN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시신경교차(optic chiasm) 바로 위에 위치합니다. 이 위치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SCN은 망막으로부터 직접 빛 정보를 받는 유일한 뇌 부위입니다. 망막의 특수한 광수용체 세포들(intrinsically photosensitive retinal ganglion cells)은 빛의 밝기를 감지하고, 이 정보를 시신경을 통해 SCN으로 전달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배치는 SCN이 외부 환경의 빛-어두움 주기와 내부 생체 시계를 동기화(일치시키는 행위)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SCN의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

SCN은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서로 통신합니다. SCN 내의 신경세포들은 약 24시간의 자동 리듬을 생성하는 유전자 발현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분자 시계(Molecular Clock)'라고 부르며, 특정 유전자들(CLOCK, BMAL1, PER, CRY 등)의 발현이 약 24시간 주기로 진동합니다.

SCN은 또한 뇌의 다른 부위들과 광범위한 신경 연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송과체(Pineal Gland)와의 연결은 수면 조절에 매우 중요합니다. SCN은 송과체에 신호를 보내 멜라토닌의 분비를 조절합니다.


멜라토닌: 수면의 호르몬

멜라토닌(Melatonin)은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수면-각성 리듬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화학 신호입니다. 멜라토닌의 분비는 빛에 의해 직접 억제되고, 어둠에 의해 촉진됩니다.

멜라토닌의 분비 패턴: 정상적인 조건에서 멜라토닌은 저녁 시간(대략 오후 8-9시경)부터 분비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밤 중간(대략 오전 2-3시경)에 최고조에 도달합니다. 그 후 새벽으로 진행하면서 감소하여, 아침 시간에는 거의 분비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일 변동을 멜라토닌 리듬(Melatonin Rhythm)이라고 합니다.

멜라토닌의 작용 메커니즘: 멜라토닌은 혈액을 통해 전신에 분포하며, 뇌와 신체의 여러 부위에 있는 멜라토닌 수용체(MT1, MT2)에 결합합니다. 특히 뇌의 수면 조절 중추인 배 측 시상(Dorsal Raphe Nucleus)과 시상(Thalamus)에 작용하여 수면을 유도합니다.

멜라토닌은 단순히 '수면 유도 호르몬'이 아닙니다. 이는 신체의 여러 생리 기능을 조절합니다:

체온 저하촉진

면역 기능강화

항산화 작용

혈압 조절

소화 기능조절


SCN과 멜라토닌의 상호작용

SCN은 멜라토닌 분비의 최고 조절자입니다. 낮 동안 밝은 빛이 망막을 자극하면, 이 정보가 SCN으로 전달되고, SCN은 송과체에 신호를 보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합니다. 저녁이 되어 빛이 감소하면, SCN의 신호가 변화하여 송과체는 멜라토닌 분비를 증가시킵니다.


이 시스템은 매우 민감합니다. 현대의 인공조명, 특히 청색광(Blue Light)을 많이 방출하는 전자기기(스마트폰, 컴퓨터, LED 조명)의 사용은 저녁 시간의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여 수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SCN의 신경 출력 경로

SCN은 수면-각성 리듬을 조절하기 위해 여러 신경 경로를 통해 신호를 보냅니다:

송과체 경로: SCN → 교감신경계 → 송과체 (멜라토닌 분비 조절)

시상 경로: SCN → 시상 (각성 신호 조절)

시상하부 경로: SCN → 시상하부의 다른 핵 (체온, 호르몬 조절)

뇌간경로: SCN → 뇌간의 각성 중추 (각성 유지 조절)


17920_2.jpg


생체 시계 & 수면 - 검색 이미지


저녁 9시부터 아침 7시 반까지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를 보시면 사람의 몸에 생체시계가 움직인다는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generated.jpg


멜라토닌과 수면변화(보강)

60세가 되면서 새벽 2~3시쯤 눈이 떠지는 현상은 사실 노화에 따른 아주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내가 불면증인가?" 하고 걱정하시지만, 의학적으로는 몸의 시계가 바뀌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그 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1. '수면 호르몬' 탱크가 작아졌어요 (멜라토닌 감소)

젊을 때는 잠을 자게 해주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밤새 콸콸 쏟아져서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60세가 넘어가면 이 멜라토닌 분비량이 20대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쉽게 말해, '수면 배터리'의 용량이 줄어든 셈입니다. 저녁 10시에 잠들어도 새벽 3시쯤 되면 준비된 배터리가 다 닳아서 눈이 떠지는 것이죠.

2. 깊은 잠이 줄고, 얕은 잠이 늘었어요

젊을 때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깊은 잠'을 잤다면, 나이가 들면 '얕은 잠'의 비율이 늘어납니다.

수면 뇌파가 달라져서 작은 소리, 배우자의 뒤척임, 혹은 방 안의 온도 변화 같은 아주 미세한 자극에도 뇌가 "어? 무슨 일이지?" 하고 반응하며 깨어나게 됩니다.

3. 생체 시계가 앞당겨졌어요 (수면 위상 전진)

나이가 들면 우리 몸의 생체 시계가 아침형으로 바뀝니다. 초저녁에 졸음이 쏟아지고, 그만큼 새벽에 일찍 깨는 패턴으로 시간표가 전체적으로 앞으로 당겨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4. 왜 하필 '새벽 3시'일까요?

소변 신호: 이 시간대는 신장의 기능이 약해지면서 화장실을 가고 싶은 요의를 느끼기 가장 쉬운 때입니다.

체온 저하: 새벽 3~4시는 하루 중 체온이 가장 떨어지는 시간입니다. 나이가 들면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서, 추위를 느끼며 잠에서 깨기도 합니다.

� 꿀잠을 위한 작은 조언

새벽에 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우시다면 아래 방법들이 도움이 됩니다.

낮에 햇볕 쬐기: 낮 12시~2시 사이에 30분 정도 산책하세요. 멜라토닌 '충전'에 가장 좋습니다.

초저녁잠 참기: 저녁 7~8시에 쏟아지는 졸음을 참고, 취침 시간을 조금만 늦춰보세요.

깨도 시계 보지 않기: "아이고 벌써 3시네, 큰일 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뇌가 각성해서 다시 잠들기 어려워집니다. 그냥 '눈이 떠졌구나' 하고 편안히 누워계시는 게 좋습니다.

혹시 새벽에 깨신 후에 다시 잠드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시나요, 아니면 금방 다시 주무시나요? 그에 따라 대처법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편_수면주기의 이해 및 REM수면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