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의 소아응급실.
다섯 살 여자 아이가 눈썹 옆이 찢어져 왔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사뿐사뿐 걸어와
가만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는다.
우아한 옷차림의 엄마는 말끔히 손질된 손톱으로
딸아이의 눈썹을 가리키며 속상해한다.
“선생님, 예쁘게 꿰매 주세요.”
다섯 살 남자아이가 이마가 찢어져서 왔다.
건물 모퉁이를 두 번은 돌아야 나오는 원무과에서부터 비명과, 고성과, 도망치는 발소리가 요란하다.
한 명만 입실할 수 있는 응급실로 부모가 다 따라 들어오고 간호사 두 명까지 합세하여 사지를 다 잡고서야 간신히 상처를 보는 것이 겨우 가능했다.
엄마는 옷이 다 풀어헤쳐지고 머리가 산발이 된 채
아이의 팔과 몸을 애써 누르고 있는 상태로
어떻게 다쳤는지를 내게 속사포처럼 소리치며 설명했다.
“제발 빨리빨리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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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거기서 거기고, 애 키우는 건 다 똑같다지만 그들의 육아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다.
순하고 쉬운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제발 내 자식이 아니었으면 싶도록 어려운 아이들도 있다.
아이가 바닥에서 뭘 주워 먹건 내버려 두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돋보기로 들여다 보아도 겨우 보일락 말락 한 발진 하나로 새벽 세 시에 응급실로 달려오는 부모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보통의 육아’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픈 아이들이 있고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있으며
몸이 피곤한 부모와
마음이 피곤한 부모들이 있다.
예민하고 특별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예민하고 특별한 부모도 있다.
본인이 수월한 육아를 하고 있다면, 그것에 감사하면 된다.
내 자식이 순탄하고 심지어 우수한 성장을 해 내고 있다면 잠잠히 그 순간 나의 행복과 운을 누리면 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든 키워 보겠다고 죽도록 애를 쓰는 타인의 육아에 대하여
우리보다 덜 노력했을 거라고,
심지어 아이를 잘못 키워 저렇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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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비슷하고도 다른 아이들이 연달아 짝을 지어 오는데, 진료실과 대기실이 소란해질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는
‘아주 럭키한 보통의 부모들’이 보내는 냉정하고도 쉬운 시선.
난동 부리며 들어온 아이를
상처 봉합을 위해 겨우 약으로 재운 뒤
아이 손톱에 온 팔과 손이 다 긁힌 채
기운이 빠져 앉아 있는 엄마에게
잘할 거예요, 한마디 건네며 밴드 몇 개를 내밀자
그녀가 ‘감사합니다’ 대신 ‘죄송하다’며 눈물을 툭 떨어뜨린다.
괜찮아요, 어머님께서 잘 도와주셨어요.
아이들이 다 그렇죠.
오늘 밤,
당신의 특별한 육아에 최선과 애씀을 눈치챈
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아 주기를.
그것이 당신의 고단함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