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실의 보호자들은 처음 보는 내게
낯선 약봉지와 처방전을 내밀며 묻는다.
이 약 먹고도 안 나아서요,
이 약 먹고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 약 좀 봐주세요...
우리나라 소아응급실 이용 형태의 특성상
열에 아홉은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가벼운 감기나 장염 류의 경증이기 때문에
그 약들 또한 적당히 증상을 조절해주는 종류의
무난한 약인 경우가 많다.
어지간한 시골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병원 접근성은 좋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대개 적어도 2곳 이상,
많게는 대여섯 군데의 병원을 거쳐 오는데
(심지어 하루에 서너 곳의 소아과와 이비인후과를
들렀다 오는 경우도 있다!)
마음처럼 잘 낫는 것 같지 않고
아이가 불편해하니 답답한 마음이야 알겠으나
저런 의료 이용 방식은
정작 아픈 아이의 회복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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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질환이나 악성종양과 같이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한 병의 경우
명의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A병원의 Y교수님, S병원의 H교수님을
굳이 찾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죽을병은 아닌 걸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우리 다 아는 경증 질환에 있어서의 명의란
결코 ‘알려진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중병’의 기준이 모호할 수 있는데, 의사가 표정이 매우 안 좋으면서 자기 말고 더 큰 병원의 특정 의사 진료를 보라고 ‘먼저’ 추천하면 일단 큰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대로, 그 수준이 아니라면 대개는 그 병원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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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진료를 볼 때
보호자들이 못 미덥다는 얼굴로 처방전을 내밀면
많은 경우 “이 병원을 다시 가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1. 첫 번째는 대부분의 경우 정말 잘 쓴 약이기 때문이고
2. 두 번째는 응급실 원내처방으로 줄 수 있는 약들이 실제로 그 처방보다 디테일할 수 없기 때문이고
3. 세 번째는 그 약을 그렇게 썼을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며
4. 네 번째는 그러므로 지금 이 환자를 생판 처음 본 내가 기존의 소견을 거슬러 하루 이틀 만에 치료의 방향을 바꿀 이유가 없는 데다
5.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환자를 한 번 본 의사가 다시 봐야 현재와 미래의 질병과 환자 상태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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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를 처음부터 꾸준히 본 의사,
이 아이가 예전에 어떻게 아팠는지 아는 의사,
이 아이가 언제쯤 나빠지는지 기억하는 의사,
이 동네에 요즘 어떤 병이 유행하는지 아는 의사,
이 엄마가 약을 어떻게 먹이고 애를 어떻게 보는지 아는 의사,
그런 의사가 ‘나의 명의’가 되는 것이다.
얘는 콧물이 이 정도 가면 꼭 중이염 겹치더라 싶으면 조금 일찍 항생제를 시작할 수도 있다.
중이염이 남아있어도 충분한 기간 투약했고
더 이상은 어차피 시간문제다 싶은 판단이 서면
약을 끊을 수도 있다.
낮에 청진할 때는 괜찮지만,
밤만 되면 쌕쌕 대고 숨을 몰아쉬는 걸 아는 아이라면 멀쩡해 보여도 기관지 확장제를 처방할 수도 있고
아직은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보이지만
동네에 빨리 나빠지는 폐렴이 유행하고 있다면
약간의 조짐이 보이는 아이는 이틀 만에 다시 보도록
약을 일부러 짧게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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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처방을 믿지 못해
감기약 먹은 지 하루 만에 콧물이 ‘안 잡힌다’며
옆 건물 이비인후과로 득달같이 달려가 약을 바꾸고
이틀 만에 이비인후과 항생제가 ‘쎈 것 같다’며
또 앞 건물 한의원으로 가서 약을 끊고
사흘이나 약을 먹었는데 감기가 안 떨어진다며
한 밤 중에 응급실로 달려오면
이 아이를 아는 의사는 아무도 없고
이 아이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앞으로도 없고
엄마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치료받은 적 없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나는 ‘보호자가 보기에’ 마음에 안 들고
지지부진한 듯 느껴지는 진료일지라도
최소 5번까지는 가급적 ‘같은 의사’에게 아이를 보이시라고 강조하여 말한다.
내 아이를 잘 아는 의사가 명의다.
이미 한 번 본 의사가 조금이라도 더 정확할 확률이 높다.
100점짜리 의사를 찾아 헤매느라 낭비할 시간에
약간 덜 미더운 70점짜리 의사에게
나를 자꾸 보여주고 내 이야기를 자꾸 하면
그는 오직 나에게 있어 120점, 130점짜리 의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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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대학병원 응급실에 앉아 있는 나는
여러분이 그렇게 가 보고 싶어 하는
매머드급 병원에서 공부하고 일하다 온 사람인 동시에 다들 그렇게 못 미더워하는 ‘동네 의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꾸준히 당신 아이를 볼 의사가 아니므로 나의 동료이자 선배이자 강호의 고수인 그분들께 당신의 자녀이자 나의 환자인 이 아이를 보내는 것이 떳떳하고 안심되며 기쁘고 감사하다.
(내 아이들도 다 집 앞 병원을 다니며 꾸준히 진료받는다.)
의사들은 다 이해할 이야기.
전공의들은 제발 잘난 척하지 말고 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
(응, 니네 생각처럼 그거 몰라서 이상하게 막 쓴 처방 아니야. 이 얘길 왜 굳이 하냐면, 나도 그랬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부디 기억해 주시길 소망하는 이야기.
“당신의 주치의가 바로 명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