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무엇을 기준으로 투자, 유보, 배당을 결정할까?
대학교 다닐 때부터 Corporate Finance(기업 재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정해진 공식이나 logic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될 수가 없는 분야여서, 기업 재무가 마치 art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물론 대학교 1, 2학년 때는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했다. 2001~2002년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대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만약 잘못 체감했다면, 내가 철이 없었거나 눈치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복학을 했을 때, 딱히 친구들도 많지 않았고 해서 시간이 날 때면 항상 도서관으로 가서 유명한 서적들을 뒤져보곤 했다. 그때 찾아본 책들이 McKinsey에서 발간한 <Valuation> (3rd edition, 저자 Copeland 등), NYU 교수인 Damodaran이 저술한 <가치 평가론> 등의 책들이었다. 이 책들 이외에도 꽤나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이젠 제목과 저자들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특히 한국분이 쓰신 책 하나도 매우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너무 오래돼서 작가분 성함과 책 이름을 잊어버렸다.
사실 그 책들을 뒤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떤 절대적인 진리나 공식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현실에 근접한 수식이나 주요 변수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런 것은 없었다. 수많은 전제들과 가정들로 현실을 위장(?)하여, 도식화된 모델과 프레임이 위장된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수식이나 논리가 나올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책을 쓴 분들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말도 안 되게 복잡한 현실계를 설명하기 위한 그분들이 수많은 이론과 logic을 정립해주신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현실의 다양한 상황을 설명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분들이 최근에 저술하신 책들도 찾아보고 있으며, 트위터에서도 그분들을 following 하고 있다. (워낙 바쁜 분들이라 트위터에서 많이 활동 하시진 않는 듯하다. 그나마 Damodaran 교수님이 종종 주옥같은 글과 데이터들을 올려주신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지치면, 책을 가끔 보곤 한다. 며칠 전 회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펼쳐봤다. 어떤 트위터에서 추천해서 빌렸던 책인데 Karen Berman 등이 저술한 <Financial Intelligence>라는 책이었다. 솔직히 내용은 기업 재무에 거의 초보이신 분들을 위한 내용이어서, 나름 기업 재무 책 좀 뒤적여 봤다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 금방 덮어버렸다.
근데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 의문은 기업들이 투자나 배당, 유보 등의 재무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좀 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없을까였다. 기업들은 어떤 상황일 때, 투자를 하고, 유보를 하고, 배당을 하는지.
당연히 돈이 되는 것이 보이면 투자를 할 것이고, 딱히 투자할 만한 사업이 없거나 미래가 불확실하면 유보를 할 것이고, 대주주가 현금이 필요하면 배당을 할 것이다. (사실 대주주가 돈이 필요할 때 배당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될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엄격하게 분리되어있는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배당 의사결정에 대해 보다 확고한 논리와 철학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위의 내용을 좀 더 심플하고 logical 하게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EVA(Economic Value Added) 개념이 떠올랐다.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EVA의 개념과 산출 공식은 아래와 같다.
[그림 1.] EVA의 개념과 산출 공식
출처 : https://www.kao.com/global/en/investor-relations/management-information/economic-value-added/
위의 산식에서 여기서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한 부가가치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바로 'ROIC - WACC'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기업의 재무의사결정은 기업이 사업을 통해 창출하고 있는, 혹은 앞으로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는 부가가치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의 부가가치 개념인 ROIC - WACC의 산식을 가지고 기업들 내리는 재무의사결정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최근 수년간 기업들이 벌어들인, 혹은 보유한 현금을 추가로 투자하지 않고 유보만 하고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2020년에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과도하게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면, 지분율 80%가 넘는 대주주에게 과세를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정부의 발상이 있었을까. (시행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결국 ROIC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다. 기존 사업이 호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거나, 새로 발굴한 신규사업을 장밋빛으로 전망한다면 과감하게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물론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M&A도 이러한 투자에 포함될 것이다.
이는 거시 경제나 영업 환경이 향후 수년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거나, 기업의 자체적인 경쟁력이 높아져 수익이 의미 있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가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리고 그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미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렇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기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같은 논리로 이어 보면, 향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여 ROIC가 개선될지 여부가 미지수인 경우이다. 거기에 더해 WACC가 더 높아질 우려가 있다면, 기업들은 더더욱 현금을 쌓아두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배당을 해버리면 향후에 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높은 cost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후 최근까지는 ROIC 개선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다고 한다면, 2022년 최근에는 WACC 상승에 대한 걱정이 가중된 영향이 컸을 것 같다. 따라서 WACC이 먼저 안정되는 모습이 먼저 확인되어야만 기업들의 현금 쟁여놓기도 일단락되지 않을까.
대한민국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배당에 가장 인색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물론, 소문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배당성향(= 배당총액 ÷ 순이익)이나 배당수익률(투자자가 벌어들이는 배당수익 ÷ 기업의 시가총액) 등 어떤 배당 지표들을 봐도 이는 어지간한 선진국/중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임은 분명하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고, 전문가들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 자료들이 많아서 굳이 여기서 언급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업들이 배당하겠다는, 혹은 배당을 높이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은 결국, 돈을 잘 벌어들일 것 같은 사업이 딱히 보이지 않고(ROIC↓) 자본조달비용도 낮을 때 일 것이다. 그래야 추후에 자금이 필요할 때,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자본, 부채)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어떤 재무의사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경제 전반은 물론, 주가나 기업가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종 의사결정자(CEO나 CFO 등)의 판단이 최적화된 것인지, 당사자는 물론 외부에서도 모니터링되어야 한다.
재밌는 것은 위에서 기업의 재무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제시해본 'ROIC - WACC' 프레임이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혹은 외부(컨설팅 회사 등)의 도움을 받아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ROIC를 높이는 것뿐이다. WACC를 낮추는 것도 물론 일부는 가능하다. 가령, 자본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는 optimal 한 재무구조를 갖춘다던지, 금융기관의 네트워킹(IR 등)을 통해 조달비용을 일부 줄인다던지.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은 분명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WACC는 기업들의 자구적인 노력보다는 전체적인 금융시장의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론은 기업들의 재무의사결정에 대해서 기업이 1차적으로 책임을 지고 결과를 부담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분명 기업 입장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까지 떠안고 재무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기업들의 재무의사결정에 대해서 기업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기보다는, 전체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들을 지원해주고 있는지, 개선해야 할 점들은 없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도산을 앞둔, 방만하게 경영한 회사를 살리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소액으로 주식을 투자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재무의사결정을 적절하게 내리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ROIC - WACC' 틀에서 바라보면 가끔은 정말 의외의 결정을 하는 회사들도 많을 것 같다.
복잡한 기업들의 재무의사결정을 너무 단순화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솔직히 ROIC나 WACC라는 개념 안에 이미 수많은 가정과 변수들이 이미 들어가 있다. ROIC나 WACC를 제대로 산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최근의 수치들이 아니라, 미래의 수치를 추정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프레임으로 기업들의 재무의사결정을 바라보고, 거기서 투자기회나 판단 근거를 마련해보려고 한다. 엑셀로 모델링도 해야 하는데, 그건 좀 귀찮다. 주요 변수들을 중심으로 체크하면서 기업들을 바라보는, 나아가서 경제와 금융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도록 노력해야겠다.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 듯한 느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