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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도 Sep 27. 2022

흔들리며 살아남을 용기 ④

친애하는 내 감정의 파도에게|Ep.9

1%에서 시작된 불안


나는 핸드폰 알림 창에 뜬 메일을 5분 동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그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5분이 너무나도 길었다. 나는 그 5분 동안 고민했다. 이 메일을 지금 바로 열어볼 것인지, 혹은 내일 진료를 가기 전까지 열어보지 않을 것인지. 메일을 여는 행위에 대해 고민한 이유는 하나였다. 메일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일 속의 이야기가 나를 실패로 만들 것인지, 성공으로 만들 것인지, 내 예측 안에 그 어떤 데이터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계획과 이행의 연속이었다.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계획은 실패한 계획이므로 바로 버려야만 했다. 내가 성공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는 계획만이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완벽을 추구했다. 인간이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완벽에 가까운 99%의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의 실패는 내가 감수해야 하는 페널티였다. 하지만 완벽해지기 위한 페널티는 내 숨통을 조여왔고, 결국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한 손으로는 차가운 음료 잔을, 다른 한 손으로는 메일 알람이 떠있는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고민은 길었지만 선택은 순간이었다. 나는 과외 수업을 10분 남겨둔 채로, 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일을 열었다.




99%의 가능성으로 바뀔 나


메일을 열고 몇 번을 읽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문장은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학생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는데 내 눈시울은 이미 붉어진 이후였다. 코가 훌쩍거렸고 눈치 없이 눈물이 고였다. 나는 흐르는 눈물과 감정을 급하게 막아보려 노력했다. 휴지로 눈과 코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한 번 쏟아진 감정은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일에는 여러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파도 씨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한 의사의 모습에도 마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완벽함에 대한 내려놓음이 포기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저와의 관계에서 잘 훈련해 주신 것 같아 이 또한 감사합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나를 잠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것, 때로는 당해주는 것. 그게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확신이 진료를 보는 소중한 원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환자분들이 그런 관점으로 치료를 바라보고, 치료자를 바라볼 때 치료의 효과가 가장 좋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파도 씨가 본인의 삶과 치료에 무너지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수년이 흐른 뒤에 훨씬 건강한 본인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긴장의 끈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이 사람은 나를 바꿔줄 수 있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 사람도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다, 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기에 늘 경계했고 나의 전부를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선생님은 내 삶에 있어서 소중한 존재였고 버팀목이었다. 나는 이미 그 버팀목의 그늘에 앉아 쉬고 있으면서도 이 나무가 언젠가 쓰러질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메일에는 이러한 우문에 대한 현답이 담겨 있었다. 내 마음을 모두 헤아려주지 못해서 속상했다는 원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잃지 않아 감사하다'라는 답을, 용기로 드렸던 쪽지를 '완벽함에 대한 내려놓음이 포기가 아니길 바란다'는 답을, 그리고 과연 내가 바뀔 수 있을지, 내가 선생님을 다시 한번만 붙잡는다면 선생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아 주실 수 있으신지에 대해서는 본인의 확신과 진료에 대한 원칙을 소개해주셨다.


나는 메일을 읽고 10분 여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참았던 감정들이 해일처럼 한꺼번에 밀려온 탓이었다. 나는 1%의 불안에 가려진 99%의 가능성을 보고 있지 못한 것이었다. '본인의 삶과 치료에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선생님의 응원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몇 번이고 읽으니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결국 나는 메일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방법


폭풍 같던 하루가 지나고 금요일이 찾아왔다. 아빠와 함께 병원에 내원하는 날이었다. 선생님은 특별히 자신의 점심시간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아빠를 만나주셨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아빠는 몇 번이고 내 상황에 대해 묻고, 설명하길 반복했다. 아빠는 여전히 불안해했고 나는 그런 아빠에게 완벽한 답을 줄 수 없는 딸이었다. 그것은 내가 완벽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내 상태와 치료를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온갖 고민과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병원으로 가고 있는 아빠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다 답해주실 거야."


나는 내 버팀목에 기대기를 선택했다. 아빠와 함께 탄 차가 병원 건물 앞에 주차될 때까지 호흡을 계속 진정시켰다.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선생님께 맡기는 방법뿐이었다. 아빠와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병원이 있는 층에 내렸다. 접수를 하고 마지막 환자의 상담이 끝나자 상담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어서 오세요. 파도 씨, 그리고 파도 씨 아버님."


선생님은 똑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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