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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도 Sep 04. 2022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세는 일

친애하는 내 감정의 파도에게|Ep.3

피노키오의 코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내 증상에 관한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만 내원 사실을 이야기했다. 반응은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독특한 반응이 하나 기억에 남는다. 친한 친구였는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알고 있으니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네 감정은 네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 이 친구는 나름 자신이 생각한 해결책이라며 조언을 내어준 것이었다. 나는 이 친구가 나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안다. 그렇기에 상처로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에 웃으면서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아직 감당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야. 앞으로 병원에서 그 방법들을 배우고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친구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앞으로 잘 될 거라는 거짓된 희망이나, 네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빛바랜 거짓말은 없었다. 내가 이 친구를 계속 옆에 둘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솔직함을 닮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커지는 순간이 오면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나는 매번 어두운 감정의 심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숨도 쉬지 못한 채 꾸역꾸역 그것들을 삼켜버린다. 나는 그 불편함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나를 속였다. 이 모든 감정은 내가 겪는 것이 아니라고, 진짜 나에게 오는 감정이 아니고 껍데기에 불과한 '나'에게 오는 감정이므로 무너질 리 없다고. 하지만 나는 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순간마다 느낀 모든 감정들은 허상이 아닌 사실이었고, 내 외면이 아닌 내면을 천천히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동화 <피노키오>를 생각해보라. 제 아무리 진실이라고 자신을 속여봐도 코는 계속해서 길어진다. 마치 아무도 보지 못하게 심어 두었던 내 마음의 씨앗이, 결국 싹을 틔우고 자를 수 없는 나무로 자라 버린 것처럼 말이다. 나를 속이는 일은 반드시 들키게 되어있다. 사람마다 시기는 다를 수 있지만, 그 시기는 반드시 나, 그리고 나와 같은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세는 일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했던 첫날, 나는 내 나무를 베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의사) 앞에서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려버렸다는 것이 가장 속상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나무였는데 내 앞에 앉은 의사는 그 나무를 천천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의사를 만나며 이 나무를 보여주어야 한다면 나무를 베어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거쳐왔던 수많은 과거의 기억들을 되짚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 온 뒤, 나는 나의 수많은 거짓말로 키웠던 나무를 도끼로 찍어 베어버렸다.


하지만 나무를 베어버린다고 해서 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무를 베고 난 뒤에는 그루터기가 남는다.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단하게 박힌 뿌리를 품은 채로 박혀있는 그루터기를 제거할 방법은 알지 못했다. 당장 눈에만 보이는 것을 지우는 것에 급급해서 과거의 잔해를 어떻게 치워야 할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속해서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과의 만남 속에서 나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치료의 진전을 위해서 내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나무는 베어버린 뒤였다. 그래서 나는 그루터기에 앉아 나이테를 찬찬히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스물여섯 겹의 나이테 속에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그 아픔들로부터 어떤 감정들이 쌓였는지, 결국 그 감정들이 터져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나이테를 하나 씩 짚어가는 과정은 아플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손으로 내 나무를 베어냈던 그날만큼 고통스럽지는 않다. 나이테를 함께 짚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치료를 통해 그루터기에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무에 꽃을 피우는 법


놀랍겠지만, 내가 내 손으로 베어버린 나무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내 과거에 생각과 질문을 더할수록 그루터기 옆으로 나뭇가지가 자라났다. 나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정신건강의학과 내원이라는 경험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선생님은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한 가지는 꼭 약속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절대 환자인 나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나는 내 나무의 밑동이 이미 썩어 죽어가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나무에 어떤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베어버린 나무의 흔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던 나는, 나이테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그 위에 앉아도 보고, 새로 난 가지의 잎을 만져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들은 이 나무에 어떤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라는 기대로 자라나게 되었다. 나무를 베었던 도끼를 내려놓은 나의 손엔 물뿌리개가 들려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나를 올려다보며, 나는 오늘도 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쉽지 않다. 특히 없앨 각오로 베어버렸던 나무에 꽃을 피우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나무에 꽃을 피우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맺혀버린 꽃봉오리 하나가 피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버린 탓이다. 피노키오의 코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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