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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도 Sep 14. 2022

흔들리며 살아남을 용기 ①

친애하는 내 감정의 파도에게|Ep.6

의심의 가면을 쓴 불안


명절을 보내고 오랜만에 병원에 내원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공식적으로 2주 후에 볼 것을 제안했으나 순간을 참지 못한 나는 예고 없이 병원에 찾아가곤 했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불안정한 나를 알아보고 붙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 발로 선생님을 찾아간 것과 달리 나는 선생님을 보며 별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사라지던 불안이, 선생님을 마주하면 가라앉던 흥분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타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게 그러는 것처럼 타인을 검열했다. 제멋대로 사람을 나누고 내 마음을 알아봐 줄 사람만을 찾았다. 그 사람마저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나는 모든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버렸다. 이런 행동들을 반복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선생님만큼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기계치료를 권고하면서부터 나는 나의 마지막 보류였던 선생님마저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과 나의 만남은 이제야 갓 15번을 넘었다. 보통의 내담자들이라면 10번 정도에 방어가 무너지고 신뢰가 쌓인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신뢰가 쌓이는 듯하면 다시 허물고, 또 신뢰가 쌓이는 듯하면 허물었다. 스스로 선을 그었고 넘을지 말지 고민했다. 한 번 넘었다가 다시 선을 직 그어 없애버리며 되돌아오는 행동을 반복했다. 선생님은 6개월을 기다렸지만 내 불안은 잦아들지 않았다. 선생님이 기계치료를 권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나는 내가 믿고 있던 마지막 보류까지 무너졌다는 생각에 잠겨버린 후였다.




타오르는 촛불처럼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진료실에서도 터지지 않았던 울음이 버스라는 개방적인 공간에서 터지니 당황스러웠다. 생각을 갈무리하고 나를 달래 보려 해도 눈물이 잦아들지 않았다.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은 나를 보다 모른 척 지나가길 반복했다. 안경을 벗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내가 느낀 감정은 정확했다. '서운함' 그리고 '배신감'이었다.


마치 불을 붙인 촛불에 적당한 숨을 분 것처럼, 불안은 활활 타올랐다. '설마'라는 생각으로 쌓아온 의심은 마치 젠가처럼 잘못된 조각 하나를 빼내는 순간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나는 진료 내내 선생님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고, 선생님은 진료 시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일방적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목 끝까지 차오르는 이야기를 다시 꾹꾹 눌러 담기 바빴다. 그 감정이 뒤늦게 버스에서야 터져 나온 것이었다. 선생님은 두 차례의 진료 동안 부모님을 뵙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질문이었고 다음에는 제안을 가장한 부탁이었다. 나는 두 번째 부탁을 들으면서도 '설마'라는 방어기제로 의심을 막아내려 노력했다. 그럴 리 없다며 나를 다독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다독이려는 노력의 손짓이 바람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오늘 진료를 들어가는 순간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와 다른 부분을 짚는 선생님이 미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닌데, 치료를 위해 한쪽으로만 이야기를 몰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슬펐다. 이틀 뒤는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내원하기로 한 날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요"라고 웃으며 답한 뒤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버스에서 서글프게 울면서 몇 번이고 내뱉지 못한 답을 곱씹었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나를 포기하는 것이었다고. 나는 결국 내 마지막 희망인 당신(선생님)마저도 놓아버리기로 결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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