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놓은 적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도 꼭, 실패를 하나 겪고 오거라.”
딸이 정말로 실패를 한아름 안고 돌아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걱정보다 먼저 환하게 웃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 이상하고도 다정한 응원 덕분에
그녀에게 실패는 두려운 끝맺음이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겹쳐 보였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내 밑천이 들통날까 봐 숨고 싶었던,
잘 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던 나.
나는 그 두려움에 쫓겨 스스로를 쉼 없이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곤 했다.
대학생 시절, 나의 중간고사와
강사로 가르치던 아이들의 시험 기간이 겹쳤을 때였다.
무조건 다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결국 몸을 무너뜨렸고,
나는 40도에 육박하는 고열 속에서 뇌수막염 판정을 받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팔에 링거 바늘을 꽂은 채 수업을 강행했다.
그중 하나라도 놓치면, 내 인생이 통째로 실패작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억지로 버티던 몸이 한계를 넘어서자
결국 섬망 증상이 찾아왔고 남의 집 현관문을 내 집인 양 착각한 채
비밀번호를 여러 차례 눌러댔다.
그 길로 몸에 이상을 느낀 나는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나에게 학원 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선생, 아프지 않는 것도 실력이야.”
그 서늘하고 비정한 한마디가 심장에 박히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꽉 막혀 있던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의 시험을 모두 마친 후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 곧 실패라는,
그 지독한 강박을 이제는 정말 놓아주기로.
막상 꽉 쥐고 있던 힘을 빼고 나니
실수 좀 했다고,
완벽히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내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둘러보면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완벽하게만 살아온 사람은 없다.
단단하게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조차,
남몰래 수없이 비틀거리고 길을 잃으며
그 상처 위로 새살을 틔워가며 살아간다.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매번 나의 작은 실수 앞에서는 좀처럼 관대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조금은 안다.
그만큼 내 삶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싶었다는 것을.
그러니 나를 찌르는 그 자책의 자리에
너무 오래 웅크려 있지는 않기를 바란다.
크게 숨 한 번 내쉬고
나 자신에게 용서를 내어주는 일.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비겁한 포기가 아닌,
다시 걸어가기 위해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는
가장 큰 용기.
실수해도 괜찮다.
실패해도 괜찮다.
그것은 내 삶을 무너뜨리는 파멸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묻는 작은 흙먼지일 뿐이니까.
그러므로 완벽하지 못했던 오늘의 나를
더는 매몰차게 벼랑 끝으로 등 떠밀지 말자.
내가 나에게 실패를 허락하는 순간,
삶이 비로소 깊은 숨을 내쉬며
나를 다시 힘껏 껴안을 준비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