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어젯밤 불던 세찬 바람에
낙엽이 수북이 쌓였는데,
짐짓 시치미떼며
제 자리 지키고 있네요.
쉬운 일은 삭정이 꺾듯 한다지만
어지간한 바람 따위 아랑곳없으니,
오랜 비바람 눈보라에
질기고 단단해졌나봐요.
푸른 잎사귀 하나 없이
희끗희끗 검버섯만 피어,
멧새 한 마리 앉지 않은데
아직 생나무에 붙어있네요.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 두 가지 별명을 가진 형이 있었다. 나무를 잘 타서 ‘잔나비(원숭이)’와, 감을 따다가 삭정이를 잘못 밟아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 한쪽 다리를 다쳐 ‘절뚝발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도 나무를 잘 탔는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을 등에 달고 다녔다.
젊은 시절 辭職(사직)을 하고 공부에 專念(전념)할 때 일이다. 아버지를 여의고 家率(가솔)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獨學(독학)하는 일은 너무 힘겨웠다. 강냉 이 죽을 쑤어야 하는데 연탄 살 돈이 없어, 삭정이를 꺾어다가 땔감으로 써야만 했다. 아침 끼니를 때운 후 책을 끼고 뒷산(현 국립현충원)으로 올라가 화장사(현 지장사) 근처에서 공부를 하고, 해가 설핏하면 삭정이를 꺾어가지고 하산한 일이 일과였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닌 일도 있어서 자칭 ‘우리는 거지 형제’라 하였다.
산에 오르면 유달리 삭정이가 눈에 띈다. 추억 때문일 것이다. ‘삭정이 꺾듯 쉬운 일이 아니다’는 말처럼 생나무에 붙어있는 말라 죽은 가지이므로 수월하게 꺾을 수 있다. 까맣게 變色(변색)이 된 삭정이는 희끗희끗 검버섯 같은 게 붙어있고, 이끼나 곰팡이가 나서 한눈에 죽은 가지임을 알 수 있다. 센바람이 불면 힘없이 꺾여 땅바닥에 어지럽게 너부러져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삭정이를 보면 임종을 앞둔 중환자가 연상된다. 차라리 꺾여져 땅에 너부러져있으면 죽은 나무 같지만, 아직 생나무에 붙어있어서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 병자 같아 측은하기 짝이 없다. 이런 환자를 문병 가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기도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더 고통 없이 召天(소천)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인데, 生死禍福(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高齡化(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萬壽無疆(만수무강)이 福(복)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요즘 尊嚴死(존엄사) 문제가 사회 이슈(issue)가 되어있다. 좀 더 살자고 생나무에 붙어 아등바등하는 삭정이 신세가 되면 어찌하랴. ‘병색 짙은 추한 모습으로 오래 병석에 누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거나, 자녀손들에게 廢(폐)를 끼치지 않고, 잠자는 듯 내 靈魂(영혼)을 불러가 주소서’하는 기도가 요즘의 가장 절실한 기도다. 삭정이가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