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좋은 생각 안 난다고
머리에 군밤.
생각이 어수선하다고
머리를 쥐어박고.
그럼 올바른 생각일 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나?
애꿎은 내 머리.
마음이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고,
분통이 터진다고
가슴을 쥐어뜯고.
그럼 착한 마음일 땐
가슴을 보듬어주었나?
애꿎은 내 가슴.
월계관은 머리에 씌우고
훈장은 가슴에 달아주는데,
내 평생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하늘을 쳐다보라 한다.
올바른 생각 착한 마음이
별이 되어 촘촘히 박힌
눈부신 면류관을
뉘게 씌우겠느냐고 한다.
‘사람은 갈대보다 약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말을 우리는 곧잘 쓴다. 그러나 돌잡이 하는 어린 아기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일까?
마음대로 생각대로 집으라지만, 아직은 젖꼭지를 문 채 본능대로, 천성대로 행동할 뿐,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깊은 생각으로 갖고 싶은 것을 고른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교직에 있을 때 제 이름도 쓰지 못한 발달장애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자랑이다. ‘눈 먼 자식이 효자 노릇한다’는 속담대로, 제 아빠 제삿상을 정성껏 차리는 효자라는 것이다. 과연 아들의 깊은 思慮(사려)가 그토록 嘉賞(가상)했던지 몹시 안쓰러웠다.
로댕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지옥문을 바라보며 무엇을 고뇌하고 있는지, 나도 덩달아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런데 우스갯소리지만 벗겨진 팬티가 어디로 갔는지를 생각한다는 둥, 어깨 통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볼 때마다 108 번뇌로부터 解脫(해탈)한 그 미소를 공유하고 싶다. 그런데 오른쪽 볼에 살짝 닿은 두 손가락은 ‘공짜가 어디있어? 2천만 원만 내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사물을 보는데도 이렇게 各人各樣(각인각양)이다 .
‘생각’에 관한 한자를 보아도 종류가 무척 많고, 그 쓰임도 각양각색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복잡한 개념일 것이다. 한편 ‘마음’은 어떤가? 쉽게 쓰는 말이지만, 생각과 마음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가려 써야하는지 헷갈린다. 예를 들면 이 글을 쓰는 것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가슴(심장)에서 우러나온 마음인지...
아무튼 인간이야말로 ‘생각’ 때문에 위대하지만 복잡한 존재다. 학창 시절 시험지를 앞에 놓고 얼마나 머리를 짜내었던가? 젊은 시절 역경에 처할 때 밤을 새우며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몸부림쳤던가? 특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한 애꿎은 머리를 주먹으로 치지않았던가? 카뮈가 ‘선택의 종합이 인생이다’했고, 싸르트르는 ‘인생은 탄생 B(birth)와 사망 D(death) 사이의 선택 C(choice)이다’고 하였다. 그만큼 선택 곧 생각 문제는 인생의 운명을 좌우한다.
나는 6.25 전쟁 때 내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사선을 헤매었다. 한편 생각, 선택의 잘못으로 삶의 의욕마저 꺾인 한계상황에 처하기도 했으며, 반면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여 그 늪에서 빠져나와 행복을 찾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공상과 잡념의 파편에 찔려 골치를 앓기도 하지만, 심사숙고 끝에 정답이나 묘안, 비책 같은 생각의 소나기를 맞고 생기가 용솟음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괴테․헤겔․야스퍼스와 함께 하이델베르그의 숲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기고, 니시다 키다로와 함께 교토의 철학의 숲길을 걸으며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어느 날 이렇게 숲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반추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AI로봇이 튀어나온다.
“안녕하세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거 알고 계시죠?”
“그런데?”
“프로타고라스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했죠? 아직 그걸 믿나요?”
“.........”
불쑥 던지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나에게 AI에 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기계가 인간보다 우월하므로, 미래는 기계가 인간을 다스리며, 따라서 만물의 척도는 AI라 하지 않은가? 순간 내가 갈대보다 약하고 새끼손가락보다 더 왜소해진 것을 느꼈다. ‘네 생각과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도...
네가 얼마만큼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고 행복하게 해줄지 몰라도...’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처럼 되고자 하는 잘못된 생각이 곧 타락이요 비극의 시작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은가? 소외․비윤리․재앙․말세라는 단어들이 머리에 포화 상태다.
“널 만든 건 인간이야. 널 작동하게 하는 것도...건방진 녀석, 겸손과 염치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인간의 피조물이...네가 초상집에서 내 대신 울어주고, 잔칫집에서 내 대신 웃어줄 수 있어? 내 짙은 병을 고쳐줄 수 있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체면이 구겨진 알레르기 반응인지, 저항하므로 난 존재한다는 카뮈의 말대로 저항인지, 화풀이처럼 마구 쏘아댔더니 눈은 깜작이는데, 영혼없는 표정으로 뭐라고 내뱉으며 곁길로 휙 사라진다. ‘꼰대!’라 했던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전사들은 연구실에서 머리를 싸멘 채 연구에 골몰하고 있는데, 나는 뒤쪽 골방에 앉아 이 글을 쓰고있으니 넋두리일까, 푸념일까? “난 못난이!”
*제6회 2019 세대통합 방배문학제 차하 ‘늘솔길’ p.24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