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

새우타령

by 최연수

온 세상을 훤히 밝히는

횃불 되겠노라 하더니만,

생 솔가지 되어

연기만 피우고 있구나.


변란을 재빨리 알리는

봉화가 되겠노라 하더니만,

불은 꺼진 채 빈 봉수대만

덩그렇게 서 있구나.


빛도 불꽃도 없이

잿속에 파묻혀,

얼어 갈퀴 된 손 녹여주던

화롯불이 그립구나.


자랑도 칭찬도 없이

잿속에 파묻혀,

쏘시개에 불 붙이던

불씨가 우러러보인구나.


가마 속에서 뜨겁게 구어져

검게 굳은 숯 덩이,

불꽃 없이 이글이글 타다가

사위는 숯불이 존귀하구나.




나에게는 불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다. 여․순 사건 전후, 밤에 먼 산에 봉화가 타오르면, 경찰서 가까운 친척 집으로 피신하곤 했다. 아니나다를까 밤이 깊어지면 어김없이 공비들의 습격이 있었다. 이 餘波(여파)로 우리 집이 全燒(전소)되었다. 중1때였다. 나는 타향에서 遊學(유학)중이었는데, 夜陰(야음)을 타고 下山(하산)한 공비들의 襲擊(습격)으로 시가전이 벌어졌는데, 드디어 우리 집은 재만 남았다. 식구들의 생명은 가까스로 건졌지만, 알거지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6.25전쟁 때 이산가족이 된 채 우리 3남매는 할아버지댁에서 3개월 은신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군․경의 반격이 시작되자, 공산당들은 외래자를 보고하라며, 대창을 들고 반동분자를 색출하러 다녔다. 그들은 관공서와 바로 뒷집을 비롯해서 많은 민가를 방화하였다. 뒷집의 불똥으로 할아버지 초가집도 불붙을 위급 상황에서, 공포에 떨며 뜬 눈의 악몽으로 밤을 새웠다.

취직하여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고향에서 悲報(비보)가 날아왔다. 세탁소 고용인의 失火(실화)로 집이 전소되고, 延燒(연소)된 이웃집의 행패와 고소로 아버지께서 음독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충격으로 실신할 정도였다. 다시 알거지가 된 식구들은 赤手空拳(적수공권)으로 나의 자취 방으로 이사를 왔다.

이런 火魔(화마)와의 惡緣(악연) 때문에 불이라면 신경이 곤두선다. 소위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정권은, 횃불잡이가 되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이루겠다고 큰 소리쳤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둡고 눈물만 나는가? 생 솔가지가 불이 붙어 연기만 피우고 있지 않나?

烽燧(봉수)군이 되어, 變亂(변란)이 일어나면 잽싸게 봉화를 올려 조정에 알린다고 큰 소리 쳤다. 그런데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쏘며 우리를 위협하고, 경제난으로 민생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불이 꺼진지 오래 된 빈 봉수대만 덩그렇게 서있지 않나?

그 옛날 화롯불이 그리워진다. 빛도 불꽃도 없이 잿속에 파묻혀 있어도, 얼어 갈퀴가 된 손을 녹여주고, 화롯불을 가운데 두고 온 가족들이 오순도순 이야기 꽃들을 피웠던 시절이 그립다. 아무 자랑도 없이 잿속에 파묻혀 있던 화로 속의 따스한 불. 이것이 불씨가 되어 쏘시개에 불을 붙여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폈으며, 이사할 때도 불씨를 담은 화로를 고이 모시고 갔었다.

숯 가마 속에서 뜨겁게 구워져 단단하게 굳어진 검은 숯덩이! 불꽃도 소리도 없이 이글이글 타다가 조용히 사위는 숯불이 존경스럽다. 지도자들이라면 가마 속에서 단단하고 까맣게 구워진 숯덩이가 되어, 숯불로 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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