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를 보고 걷자

새우타령

by 최연수

두 발로 일어서서

뒤뚱 뒤뚱 걸음마를 배우면서

나도 자랑스럽게 손뼉을 쳤겠지.


풀 죽어 고개 떨어뜨리며

아래 보고 걷는 것이

큰 슬픔임을 겪고,


두더지처럼 땅 헤집고 다니다가

해 바라보며 걷는 것이

큰 행복임을 깨달았기에.


도랑에 빠질지라도

좁은 가슴이나마 활짝 펴고

하늘 쳐다보며 걸었노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의 것만 생각하며 걷노라니

눈은 왜 어룽거리는지.


세 발로 걷지 않으려고

장딴지 잔뜩 힘을 줄수록

다리는 왜 후들거리는지.


돌부리에 치이고 가랑잎에 미끄러지면

이제 네 발로 걸어야 하기에

아래를 보고 걷자.




시골 중학 입시에 떨어졌다. 바깥나들이는커녕, 얼굴을 들고 다닐 수조차 없었다. 정부 수립 전, 좌우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右翼(우익) 딱지가 붙은 나는 左翼(좌익) 못자리라는 이 학교에서 떨어진 것이다. 切齒腐心(절치부심) 집에서 재수한 이듬해, 특차로 뽑는 師範學校(사범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복수했노라고 기뻐하였고, 주위 어른들도 轉禍爲福(전화위복)이라고 칭찬하였다. 어깻죽지를 펴고 고개를 쳐들며 학교에 다녔다.

이윽고 6.25 전쟁이 일어났다. 반동분자로 烙印(낙인) 찍힌 우리는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하늘을 향해 걷기는커녕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두더지처럼 은신하여 연명하고 있었다. 땅이라도 내려다보며 걷는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이며, 어디를 바라보건 걷는 다는 것이 큰 행복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하여 6,70년대 청년 시절 쓰나미처럼 닥쳐온 역경 속에서도, 당시 유행했던 사카모토 규(坂本 九)의 노래를 즐겨 부르며, 가슴을 편 채 위를 보고 걸었다.‘위를 보고 걷자. 눈물이 넘쳐 흐르지 않게/ 생각이 나는 봄 날 혼자 뿐인 밤... ’


그러나 이상을 향해 위만 쳐다보고 걷는 것이 뜬 구름 잡는 게 아닌가 생각이 미치면서, 철학자 탈레스를 생각했다. 별만 쳐다보고 깊은 생각에 잠겨 걷다가 도랑에 빠져 하녀의 웃음거리가 된 그가 바로 내가 아닌가? 눈은 하늘을 쳐다보지만 발은 땅을 딛고 서있는 게 인간이라면, 아래를 내려다보게 마련인데...


사람의 直立步行(직립보행) 기원에 관한 학설은 많다. 1천만년 전 樹上(수상) 생활에서 지상생활로 옮겨온 시점에서부터 출발한 모든 이론들은 진화론이다.그러나 창조론 쪽으로 기울어진 이후로는,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였으니, 다른 동물과 다른 고귀한 존재이며, 따라서 직립보행은 특별한 은사라고 믿는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1,2)는 것도,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한편, 불교에서는 ‘발 밑을 똑바로 보라’(照顧脚下)고 한다. 자기의 삶을 잘 살피고 돌아보라는 의미다. 나이가 들면서 이 또한 깊은 뜻으로 가슴에 새긴다 늘그막에 주위의 落傷(낙상)사고를 자주 보면서, 위를 쳐다보는 것 못지않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걷는 것이 지혜임을 깨닫고, 나도 모르게 땅 아래를 내려려다보며 걷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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