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새우타령

by 최연수

칠하고 덧칠하고

알록달록 갖가지 색깔로

빈 틈 없이 가득 채웠네.


먹물만으로

몇 차례 붓놀림 하는데,

화선지의 손사래에

이내 붓을 놓았네.


눈밭 같은 여백에.

내 마음을 넉넉히 채웠네.

버리고 비우니까

이렇게 가득 차는 걸.




어렸을 적에는 뭔가 늘 허전했다. 철들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빈 곳을 메우 고 모자란 것을 채우겠다고 빈 주먹을 힘껏 쥐었다. 아닌게아니라 채울수록 가슴은 대양처럼 넓어지고 머리는 태산처럼 커진 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 내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예수를 영접했다. 이젠 가득 채워질까 하고. 그런데 많은 것을 부어 주어도 넘치는 것은, 내 그릇이 작거나 밑 빠진 독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①빈 손이 복이 있나니 구원의 밧줄을 잡을 것이요, ②빈 머리가 복이 있나니 진리로 채울 것이요, ③빈 가슴이 복이 있나니 은혜로 메울 것임이라. 빈 채로 자족하고, 있는 것조차 바치며 나누라는 逆說(역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 않는가?

학창 시절 목.팔.다리가 없는 조각품 토르소(torso)를 미술 책에서 보면서 슈우벨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연상했다. 한편 동양화의 여백을 보면서도 왜 꽉 채우지 않은 것인지 늘 의아했다. 그런데 신앙 때문인지 나이 탓인지 갤러리에 가면 한국화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개 된다. 빈틈없이 차있는 서양화보다 비어둔 餘白(여백)이 더 韻致(운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허전하고 쓸쓸해야 하거늘, 오히려 가슴이 탁 트이고 마음이 넉넉해진다. 꽃꽂이도 서양은 다양한 종류의 꽃을 360도 꽉꽉 채우지만, 동양은 꽃과 꽃 사이의 여백을 통해 자연의 신비를 전하는데 주력한다고 한다. 瞑想(명상)도 그렇다. 삶의 의미나 가치를 다지기 위한 정신적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 자체를 지우고 머리를 텅 비우는 것이 본질이라고 한다, 여백에 魅了(매료)되어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①여백의 미를 살려라②濃淡(농담)의 변화를 표현하라 ③번지는 효과를 넣어라. 水墨淡彩畵(수묵담채화)의 기본이다. 곧 여백은 외부의 것을 옮겨놓는 게 아니고, 지금 생겨난 思惟(사유)의 공간이라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비어둔 그 곳이 내 과거의 搖籃(요람)이었고, 내 현주소요, 절제와 생략이 내가 가야할 이상향이다. 채우고 메우느라 애쓰지 말고 아쉬울 때 붓을 놓자. 그리하여 멀찍이 물러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떠보자. 그 빈 곳에 내 얼과 혼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보물 창고로 삼자.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지향하는 현재 진행형의 그림이기에, 보는 이에게도 여기에 끼어들어 자신의 선과 색으로 채워보라고 하자.

여백이 나에게 4ㅂ을 속삭인다. 곧 치라. 리라. 리라. 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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