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멧새>
해방이 되어 ‘문예부’라는 낯선 특별활동 부서에 들어갔다. 뭘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문학 작품을 낭독(朗讀)해주는 것이 좋았다. 그 때 쓴 글 가운데 ‘가로수’와 ‘병아리’가 있었는데, 특히 ‘가로수’는 지도 교사로부터 극찬(極讚)을 받았다. 가로수들이 신작로에 두 줄로 서서 산으로 원족(遠足)을 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 받은 칭찬은 나로 하여금 문학에 대한 꿈을 잉태(孕胎)하도록 하였다.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하여 교지(校誌) ‘護國’에, ‘나는 문학의 품에서’라는 시가 실렸다. 이것도 국어 선생님의 시선과, 학우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로 인해 M라는 문학소년과 친해졌는데, 습작(習作) 시를 서로 돌려보며, 그의 시평(詩評)을 듣기도 했다. 그는 독서광(讀書狂)으로서 달변(達辯)이었다. 그런데 그는 반정부적인 말을 곧잘 했으며, 심지어 ‘빨간 벽돌은 구울수록 더 단단해진다’ 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기도 했다. 어렴풋이 카프(KAPF)문학에 심취(心醉)해 있는 낌새를 느꼈다. 그리하여 반공(反共)으로 굳어있는 나는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중학을 졸업하고 사범학교로 진급하면서부터는, 수필․논문 같은 산문(散文)이 보다 내 적성에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시작(詩作)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시를 쓰는 일은 뜨음해지고, 일기장 등이 곳 저 곳에 몇 편씩 흩어져 남아 있을 뿐이었다. 1976년이 되어서야, 흩어져 있는 30편의 시들을 한 자리에 모아, typewrighter를 이용해서 시집을 만들어보았다. 이것이 모체(母體)가 되어 그 후에 쓴 30여 편의 시를 더 해서 엮은 것이 이 시집이다. 그리고 시작의 배경(背景)을 ‘시작노우트’로 덧붙였으며, 삽화(揷畵)도 곁들여 시화집(詩畵集)이 된 셈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상(詩想)이 떠오르면서도 얼른 붓을 들지 못한 것은 역시 시작(詩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시집은 ‘시를 통한 자서전’ 이란 말이 어울린다. 사적(私的)인 신변(身邊)내용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다양(多樣)한 소재(素材)로 보다 정감(情感)있는 내용(內容)으로 쓴 시는, 동시집(童詩集) ‘집보는 날’에 수록(收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