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지 않은 시간들에 대하여
충분한 삶, 불안한 마음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간다.
집이 있고, 차가 있고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속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더 채워야 할 것처럼
앞으로만 서두른다.
40년 전만 해도 이 땅은 가난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무껍질을 씹어서라도 버텨야 했다.
그 시절은 분명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웃었다.
저녁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배를 채울 수 있으면
하루가 고마웠다.
지금은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자주 불안해하고
더 쉽게 지치고
더 깊이 외로워진다.
나는 오랫동안 이유를 몰랐다.
우리는 열심히 물질의 집을 지어왔다.
더 좋은 집, 더 안정적인 삶
남들 보기에 부족하지 않은 조건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마음의 집은 방치해 두었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돌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마음의 집에는 잡초가 무성해졌고
불안은 일상이 되었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원한다.
돈을 벌면 행복해질 거라 믿지만....
사랑을 찾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고
사랑을 얻고 나니
상처받을 일도 함께 늘어났다.
가정을 이루면 안정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도
사소한 일들에 흔들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제야 질문이 바뀌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왜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비워두고 있었는가.
삶은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을 알고
아픔이 있어야 건강을 안다.
밤이 있기에 낮이 선명해진다.
우리는 이 이중적인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단계 너머로 데려가기 위해 존재한다.
순조로울 때는
삶을 누리면 된다.
그러나 역경 속에서는
삶이 나를 단련한다.
돌이켜보면
나를 가장 크게 성장시킨 순간들은
모두 견딜 수 없다고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느꼈던 날들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밤들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길 기다렸지만
끝내 손을 내민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금의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나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 의해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조용히 다짐한다.
나는
나의 구원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