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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감의 교집합

내가 사랑하는 문장, 작가

by 열목어

책을 가까이하고 지낸 압축적인 시절에 기인한 버릇인 모양인데 어디든 적혀있는 모든 것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못하는 편이다. 골목 전봇대에 붙어있는 세일 전단부터 부동산 월세, 사글세 얼마 얼마에 신장개업, 싼 이자 일수 달돈 등등.

문득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떠올리려니 싫어하는 문장이 별로 없어 선호하는 스타일을 골라내기 어렵다.

어느 한 시기엔 시와 소설이 너무 달달한 거 같아서 불공평한 세상과는 잘 맞지 않는 거 같았는데 그때는 내 주변에 사회과학 서적들이 널려있었다. 사람의 정신도 유물론적 작용의 산물일까를 고민하던 젊은 나는 무엇이든 논리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견고한 구조의 사상서들을 상당 부분 신뢰하였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절엔 따뜻한 느낌의 글은 동정받는 거 같아서 싫었고 신랄한 내용의 글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다시 아파서 싫었다. 사실 모두 삐딱한 은둔자의 심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읽게 되는 것은 지식과 정보 위주의 건조한 책들이었다.


어느 한 날, 이런 류의 책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우선 읽고 싶었던 것은 구어 중심의 향토적인 방언이 섞인 문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공통된 일화를 공유한 친구들과 그에 얽힌 말 한 두 마디 또는 거기서 명명된 별명 같은 것으로 그들과 무한한 연대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라는 것이 쓰이는 범위는 좁을 수도 넓을 수도 있으나 그 범위가 좁다고 느낄수록 그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의 친밀감은 더욱 커지는 듯했다. 거기에 내가 속하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을 엿보는 것도 물론 즐거운 일이다.

책장 한 칸 한 칸을 스캔하다가 멈추는 책은 김유정의 단편, 백석의 시집, 이문구의 소설들.

그것은 단지 고향에 대한 향수에서 온 것은 아니었고 모종의 비도시적인 농어촌의 삶과 우리나라 전통의 본류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만리타향 어느 큰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동향 사람의 어조가 들려오면 그 얼마나 기쁜가.

이는 성장의 서사를 공유한 듯한 마이너리티의 반가움이다.

어린 시절의 말투와 그 말투에 섞인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단어들은 나를 고향으로 데려간다.



바른생활에 나오는 맑은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아름다운 말을 배우던 어린 시절, 교과서 안의 철수와 영희가 살던 동네는 우리 동네와 달랐다. 빨갛고 파란 예쁜 옷을 입은 주인공들은 보통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기와지붕에 담장이 있는 주택에 살았는데 그 집은 초인종이란 것도 있었다. 바둑이랑 같이 도는 그 동네는 아마도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생겼길래 다 같이 돌 수 있었나 보다. 그런데 우리 동네는 보강지에 장작을 때며 겨울을 났고 산이 평지와 만나는 곳에 울타리 없는 집들이 일렬로 띄엄띄엄 놓여 있어 동네를 둥글게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를 하고 싶어 동네를 돌려고 하면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다. 동네에 맞게 정정하자면 그냥 길 따라 뛰어갔다가 길이 막히면 다시 올 수밖에, 굳이 돌려면 산비탈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든가 집들의 앞편에 놓인 밭의 둘레를 밟고 넓게 돌아야 했다. 그리나 무엇보다 동네 한 바퀴를 돌려니 담장도 없고 골목도 없고 같이 돌만한 애들도 없어서 영 신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철수와 영희 옆을 따르는 '바둑이'는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요.

우리 동네는 개 이름이 메리 밖에 없었다. 윗집 개도 메리, 우리 집 개도 메리, 아랫집 개도 메리, 여기로 가도 저기로 가도 윗동네로 가도 더 윗동네로 가도 메리였다. 우리 큰 집 개도 메리, 둘째 큰집 개도 메리, 아니 왜 개 이름은 다 메리였던 것인가. 나는 그때 개는 그냥 몽땅 메리라고 불러야 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집에 오니 우리 집 개가 없어서 사방팔방 찾다가 아부지가 개장수한테 팔아버린걸 뒤늦게 알고 사랑방을 걸어 잠그고 몇 시간을 메리야 메리야 그러면서 목소리와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 울다가 그래도 울음을 그치는 건 메리에 대한 의리가 아닌 거 같아서 슬픈 감정을 북돋워 올려가면서 또 울다가 해 질 때까지 억지로 울다가 결국 화를 못 참은 아부지의 성난 목소리를 들었지.

"거 참, 남자 섀끼가 뭘 그런 거 갖고 계속 울고 앉아있어. 빨랑 문 열고 나와서 밥 먹어."

그래서 대세가 기울었다는 걸 판단하고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밥상에 앉아서 옥시기밥을 꾹꾹 먹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제였나 한 오 학년 때쯤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하고 처음 전학이라는 걸 갔을 때 같은 반 영덕이는 우리 집 바로 위에 살았는데 그 집에 잘생기고 멋진 진돗개 한 마리가 있었다. 걔는 그 개와 들과 산을 뛰댕기면서 놀았는데 영덕이가 "뛰어! 가자! 앉아!" 이렇게 멋진 구령을 하면 개는 그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어느 날 개가 멀리 가서 저 혼자 돌아댕기고 있으니까 "똘아 일루 와! 똘아!"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름이 메리가 아닌 개를 실제로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덕이의 옆모습이 무척이나 창의적으로 보였었다.


시골에서는 몇 안 되는 동네 애들 모여서 돌아치민 칼쌈 한다고 산 비얄에 낭구도 꺾고 길 예가리에 먹을 수 있다고 누가 알려주었는지 서로서로 모르는 정체불명의 풀들을 뜯어먹었다. 그 풀들의 이름도 참 이상했는데 어떤 건 풍선처럼 여무는 주머니를 터뜨리면 쌀처럼 흰 알갱이들이 나와서 쌀 꽃, 다른 건 이파리가 넓고 긴, 그냥 위로 길게 자라는 풀인데 그 대궁을 꺾어 먹으면 시금시금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나서 시금치, 그리고 가시가 연할 때는 가시까지 째로 먹을 수 있는 찔롱 등등. 그 외에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더 많은 풀과 나무열매들이 있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 댕기면서 낮 시간을 보내면서 그 와중에 지들끼리 또 웃다가 싸우다가 욕하다가 다시 친해지고 그러고 있노라면 밭에 일하러 오가던 어른들이 우리를 보고 말했다.

"니들 여서 잭패질하지 말고 저 앞에 버덩에 가서 놀아라"

그러면 또 그래야 되는가 보다 해갖고 전수 다 쭈뼛쭈뼛 버덩에 나와서는 펀펀하니 넓은 풀밭에서 별로 할 것도 없이 돌멩이 멀리 던지기나 견주어 보다가 것도 심심하긴 매한가지니 누가 솔방울을 들고 제안한다.

"야 내가 천천히 던질 테니까 피해 볼 사람? "

피해보겠다고 누가 나서면 처음엔 심을 안 주고 슨슨히 던지다가 요리조리 잘 피하니까 다시 쪼끄만 돌을 집어 들고 씨끈 던지는데 그러다보면 허벅지나 종아리에 되우 한 방 맞게 되어있고 그러면 또 바닥에 주저앉아서 악악 울기 시작한다.

"야 너 왜 내 동생 맞혔어!"

"뭐 내가 뭐 부러 그랬냐. 지가 피해본대매."

"야이 간나야. 니가 살살 던진다 그랬잖아."

이래가면서 또 싸운다. 집에서는 형제자매끼리 서로 아웅다웅하다가도 밖에서 누구한테 읃어터지거나 하면은 같은 식구라고 건사하느라 야단이다.

이때, 이 형제 저 남매와 관계없는 제삼자가 나타나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야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너 쟤한테 먼저 미안하다고 그래."

그러면 찔리는 애가 먼저 "미안해"라고 말하고 상대방이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받게 마련인데 그걸로 모두 다 끝난 듯이 딴 데 가서 다른 걸로 재밌게 놀자고 분위기 바꿔서 놀기에 돌입한다.

사실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어냐면 몇 호 되지 않는 이 동네에서 오늘 싸웠다고 얼굴을 안 보겠다면 내일은, 모레는, 글피는 누구랑 놀 것인가. 어차피 병수 아재네 고야가 익으면 돌담에 올라가서 같이 따먹고 망봐주기로 약속도 다 되어있었으니깐.

화해도 했으니 흙바닥에서 개울로 내려간다.

개울에는 놀 것이 많다. 물 가에 떼 지어 몰려다니는 송사리 떼를 움켜보거나 작은 돌을 들춰가면서 물 바닥에 꼬네 같은 벌레를 잡으면서 논다. 어쩌다 운으로 메기나 꺽지, 탱가리나 버드재이 같은 걸 잡으면 물 가에 따로 조그만 웅덩이를 파놓고 둘레를 돌로 쌓아 물고기들이 도망가지 못하는 저장 공간을 만들어둔다.

남자애들은 조금 거세게 노느라고 들기에 마치맞은 제법 무거운 돌을 찾아들고 물에 반쯤 잠긴 넓적한 돌을 내려친다.

"야 저 돌 좀 큰데 너랑 나랑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까보자. 대구 쪼끄만 돌만 까믄 큰 고기가 없어."

이른바 '돌땅'을 때리는 것인데 이렇게 돌을 들어 머리 위에서부터 힘차게 내리친 후 돌땅을 맞은 돌을 들추면

그 아래에 있던 물고기들은 그 충격에 배를 뒤집고 있거나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고 비실비실 거리는데 고기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잽싸게 고기를 건져내야 한다. 운이 없는 날은 한 마리를 잡기도 어렵지만 또 어떤 날은 스무 마리도 넘게 잡을 때도 있었다. 소금이랑 성냥을 미리 챙겨 온 날에는 나뭇가지를 줏어다가 불을 해놓고 참 맛있게도 궈먹었다.


도시로 도시로 집중하는 이 사회에서는 모두가 타향이고 모두가 이방인이다.

고향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고향의 숲에서 사는 즐거움을 모르고 타향에서 오래 머물다 고향에 돌아간 사람은 그리던 고향이 본인의 상상과 달라졌다고 비애를 느끼는 것인데 진정한 우리의 고향은 도무지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어릴 적 시골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고향 언저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도시 사람들 보다는 투박하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 자리에 없던 다른 친구의 이름이 나왔다. 산골짝에 살아도 약을 땐 약아서 자기 꺼 따로 감추기도 잘하고 맛있는 거 혼자 먹고 십원짜리 섯다를 해도 개평을 줄줄 모르던 친구였는데 걔가 음주운전으로 세 번 적발이 되어 쓰리 아웃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그런 말들이 오가는 중에 어느 한 친구가,

"그놈 그건 돌땅을 한 번 맞아야 정신 차린다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백 퍼센트 이상의 이해가 뇌리를 스친다. 고기 잡으려고 있는 힘껏 내리치던 돌들과 그 충격의 소리와 불꽃이 머릿속에서 튀었다. 그리고 그 단어를 알고 이 자리에 웃고 섰는 사람들 사이를 두르던 진득하고 따뜻한 동질감이 동글동글하게 우리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사전에 나오기도하고 안나오기도 하는 이런 단어들은 애고 어른이고 같은 뿌리를 가졌고 거슬러 올라가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랑도 얘기가 될 거 같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데 어차피 모두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므로 사회 속에서 서로 섞여가는 와중에 정체를 밝힐 하나의 열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하나의 원이 다른 하나의 원을 만나서 한 번 부대고 밀어 보면서 그 교집합이 어디까지인지 재보는 듯. 그래서 겹쳐진 부분의 세로 타원을 연필로 칠해가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것인데 그래, 이런 밴다이어 그램이 상당 부분 먹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질박한 단어와 수수한 생활의 흔적 한 줄이 눈에 들어오거나 귀에 들려올때면 나는 그지없이 흐막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가만 생각하면 우세보단 열세에, 주류보단 비주류에 있을 때 그 안의 사람들 끼리는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그 포용의 범위가 넓어지나 보다.

그럴려고 우정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 그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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