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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는 한 번 읽었어요

책에 미친 시절

by 열목어


자석 글자판

입학하기 전이니 아마 다섯이나 여섯 살쯤 되었을 무렵이겠지. 그때 엄마는 아이보리색 자석판에 기역 니은을 붙여가면서 한글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입학 전에 글을 깨치고야 말았고 요즘의 선행학습 측면으로 볼 때는 에이비씨도, 손가락 수를 초과하는 기초 산수 같은 것도 하나 모르면서 마을에서는 거의 신동 소리를 들을뻔했던 것이다.

그 자석판은 집의 한 구석에 오래도록 있었다. 아마 동생도 글을 배워야 했으니까. 그 자석판에 자음과 모음을 붙여가면서 놀다가 자음과 모음 뒷면에 각각 두 개씩 있던 동그란 자석을 빼내어 여기저기 붙이면서 놀기도 하고 어디 가서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주변에 널브러져 이제는 판에 붙지도 못하는 그런 음소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어 판을 바닥에 수평으로 깔아놓고 줄을 맞춰 이것저것 만들어보기도 하다가 문득 심술이 불어닥쳐 갑자기 판을 수직으로 세워 버린다. 어차피 기능의 일부를 상실한 자음 모음들이 버티지 못하고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보면서 약간의 페이소스도 느꼈다.

읽고 쓴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렇다. 감자를 보면서 감자라고 쓸 수 있다는 것은 감자라고 말하면 공기 중에 흩어지는 감자를 종이든 흙바닥이든 붙잡아 앉힐 수 있는 최강의 신공을 득한 것이었는데 그 감자는 땅속 저장고에 저장된 것처럼 나의 뇌리에 저장된 감자로써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감자에 대한 이미지와 연상을 언제든 꺼내고 싶을 때 꺼낼 수 있는 하나의 열쇠 같은 기호로 다가왔다.


집에 몇 권 없는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과 현실은 유사하나 각각 다른 세계에 위치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면서-- 이런 느낌을 나중에 '미래소년 코난'을 보면서 구체화하였는데 나는 아직 그 만화영화에서 포비와 코난이 뜯어먹는 뼈다귀 하나에 붙어있는 커다랗고 쫄깃한 고기만큼 맛있는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 그림책에 쓰여있는 글자들은 흡수했다고 말해야 적절할 것 같다.

우리 집은 kbs1 하나만 간신히 나오는 테레비 한 대만 있었을 뿐이니까 뉴스 밖에 안 나오는 이런 뉴 미디어에 정신 팔릴 일도 없었고 그래서 일기처럼 뭘 써보자는 엄마의 제안을 순순히도 따랐던 것 같다. 입학 전에 썼던 무척이나 작위적인 문장을 내내 기억한다. 이건 엄마도 속이고 나도 속이는 의뭉스러운 짓이었지만 결국 나는 내 의도대로 엄마의 미소를 보았다.

그 문장, 대략 이러하다.


"눈이왓다. 걸어가는대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낫다. 나는 누가 나를 따라오는주 알앗다. 어 아니네. 눈 밤는 소리엿구나. 아이쿠, 나는 내 머리에 꿀밤을 주엇다."


눈 밟는 소리는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작 알고 있었다.

그걸 뽀드득이라고 써야 하는 줄은 몰랐지만, 그리고 뽀드득이라고 쓰니까 나중에는 그 소리가 진짜 뽀드득하고 들릴 줄은 몰랐지만.




학급문고

내가 나를 속이는 문장까지 구사하는 영재 소년이 드디어 입학을 했다.

우리 학교는 십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괜히 얄미운 어떤 더 큰 학교의 분교였다.

예뻤던 우리 학교.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잣나무들이 성기고 흐릿한 울타리를 만들고 그 나무와 나무 사이로는 황토색의 운동장이 단정히 가라앉아 있었다.

단층짜리 하얀 일자 구조의 건물에는 옥상에 태극기가 있는 중앙현관을 중심으로 좌측은 교실 두 개가 있었고 오른쪽은 교실하나와 교실 하나를 다시 반으로 쪼개 비커, 플라스크, 인체모형등이 캐스터네츠와 심벌즈, 트라이앵글, 축구공과 줄다리기 줄이랑 더불어 쌓여있던 교보재실, 거기에 나머지 하나인 교무실이 잇대어 있었다.

교실은 총 세 개.

엄연히 육 학년까지 존재하는 우리의 교육체계에서 어떻게 교실이 세 개 일수 있느냐 하는 물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1, 2학년, 3, 4학년, 5, 6학년으로 묶여 이렇게 한 교실에서 20분씩 수업을 해가면서 배웠다.

그 세 개의 교실엔 칠판과 교탁처럼 많은 공통적인 것들 가운데 어엿하게 학급문고의 책장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학급 문고의 책장엔 많은 동화책들이 빼곡하였는데 어디서 어떻게 이 산골의 학교에까지 와서 모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모양이 시리즈처럼 보이는 책들엔 2권과 3권 다음엔 7권과 12권이 있다거나 나머지 다른 책들도 키와 폭이 제 각각이었고 겉표지가 떨어져 나간 책들, 속 페이지들이 실오라기 몇 개에 겨우 버티고 있는 책들도 제법 섞여있었다.


읽고 쓰는 걸 조금 먼저 알았던 터라 학교의 진도는 매우 느리게 느껴졌을 것이다.

선생님은 칠판에 정말 ㄱ을 그려놓고 기역부터 가르쳐주시기 시작했고 이런 글 배우기는 한참 계속되었다.

이 동안 나는 교실 뒤편, 갈색 마루에 햇빛이 내리는 학급문고 책장 옆에 앉아있기를 좋아했다.

그때 마치 시간은 거기서 멈추었고 오직 나와 책의 그림자만이 방향을 바꾸었다.

이솝우화도 읽고 안데르센도 읽었다.

꽃잎 속을 열어보면 엄지공주가 있을 거 같았고 풀섶을 헤쳐갈 땐 엉겅퀴로 스웨터를 짜던 소녀의 따가운 손끝이 떠올랐고 산과 산을 넘어가던 흰 새는 백조가 되어 높이높이 날아오른 미운오리새끼로 보였다.

그 모든 학급문고와 나는 친하였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되는대로 집어 하나를 읽고 못다 읽으면 집에 가져가서 읽고 다음날 다시 돌려두고 다른 책 하나를 빼서 또 읽었다.

어느 한 날 우리 반 학급문고에 더이상 읽을게 없어졌을 때 나는 옆 교실 학급문고를 뒤지러 갔다.

그 시절 학급 문고는 동무들의 무관심 속에 오직 나 혼자 발견, 독점하였던 보물 창고인양 느껴졌다.


훗날 직장 초년 시절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 춘천에서 어릴 적 친구들 몇을 보았을 때 기화가 내게 얘기해 줬다. 기화는 교회 옆집에 살던 우리 반 여자애였는데 나는 걔네 집에서 문을 열고 닫는, 전원을 내리면 화면이 작은 동그라미로 점점 작아지면서 완전히 꺼지는 테레비를 처음 보았었다.

"너는 어릴 때 교실 뒤에 앉아서 책을 보고 넣어 놓고 또 가서 보고 하더니만 지금도 책 많이 읽니? 여하튼 그때 너 되게 신기했는데."

내 모습을 이렇게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데서 밀려오는 아련한 친밀감을 느꼈다. 느꼈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분기 목표 달성이 내 삶의 주요 목표였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글에서 학급문고 설치 운동을 주도하셨다는 분의 일생을 기리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나는 잠시 그분에게 짧은 감사의 묵념을 바쳤다.




배추작업

홍천군 내면은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고랭지.

사람들이 집 짓고 사는 기본 해발이 대략 칠백정도 되는 곳으로 배추 무를 비탈마다 꽉꽉 기르던 곳이다.

여기는 매미가 한창 귀 따갑게 우는 시절을 제외하면 서늘함이 늘 더위를 이기는 동네여서 한 여름에도 밤에는 사람들이 솜이불을 덮고 자는 곳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산에서 뿜은 냉기에 어깨가 한 번 부르르 떨리는 곳이다.

겨울을 나면 사람들은 배추를 심는다. 봄에 심은 배추가 퍼렇게 퍼렇게 자란다. 하늘을 향해 만세를 하고 자라다가 손을 움키는 것처럼 차츰 뭉쳐가면 사람들은 배추가 통이 진다고 했다. 배추를 출하하는 날이면 밭 예가리에 두 돈 반이나 너 돈 짜리 트럭이 서있고 아낙네들은 다들 몸빼를 입고 못쓰는 과도 같은걸 한 손에 들고 밭고랑을 타고 들어가서 배추를 따 제쳐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배추들을 트럭 옆으로 다들 합심해서 옮겨놓는다.

이제부터 배추작업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지금은 배추 한 포기를 싸는 전용 망이 있는가 본데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적재함 난간엔 신문지 묶음이 주욱 걸쳐있고 아래쪽의 장정들은 땅에서 배추를 적재함으로 올려 던지는데 위에서 받는 사람은 신문지를 쫙 펼쳐서 그 가운데로 배추를 척척 받아서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배추끼리 쌓아놓으면 배추가 서로 비벼대며 상처가 나게 되어 물건의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그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쪽저쪽서 던지고 받는 배추 상차의 리듬과 하늘을 나는 싱싱하고 탄탄한 배추의 뽀득한 탄력이 흰색과 초록색으로 사방팔방 튀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섰다가 집으로 향한 다음 날.

다음날의 하굣길에 나는 다시 텅 비고 어지러운 배추밭으로 간다. 거기엔 신문지들이 있다.

읽을거리가 있다.


물큰하게 배추가 물러가면 상하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온다. 배추 작업을 하던 곳엔 신문지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그런 신문지들을 뒤적이면서도 집에 빨리 갈 거라고 편하게 앉지도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서 만화 몇 칸을 뒤지다 보면 아주 가끔 월, 수, 목 같은 아는 한자라도 눈에 걸리면서, 스포츠 기사에 눈이 옮겨가기도 하고 뭔가 모르게 야릇한 연재소설에 걸려들었다가 그렇게 사진이고 그림이고 글이고 주야장천 보고 앉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오고 해도 서쪽산으로 넘어가는지 신문지의 글씨가 흐릿해지면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보려 하지만 한 자세로 구부리고 있던 터라 다리가 욱신욱신 저려온다. 발가락부터 종아리까지 밤송이 밭에 구르는 것처럼 온통 따끔따끔한 마비의 고통에 어쩔 수 없이 털썩 주저앉아서 주먹을 꼭 쥐고 고통이 없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지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면 어떤 아이가 밭 기슭에서 그렇게 얼굴을 찡그리고 으으 아아 하면서 앉아있으니 누가 봤다면 산골에는 으레 저런 멍청이가 하나씩은 있는 거라고 말할 정도가 되겠다.




아부지가 사준 책들

보통 시골 출신이 하는 말에는 읍내에 다녀온다는 표현이 많으나 나는 그보다 한 단계 격하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행정구역상 무슨 읍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윗단계는 면단위였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면에 갔다 온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아버지는 아주 가끔 면에서 책을 사다 주셨다.

나는 학교에 있는 학급 문고를 싹 다 읽어치우는 중이었기 때문에 손에는 늘 어떤 책이라도 들고 있었는데 아부지는 아마 그 모습을 살짝 대견하게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아부지가 가끔 사 오시는 책들은 주로 동화책들이었는데 집에는 책이 많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책들을 몇 차례씩이나 읽었다. 사실 그런 책들은 학급문고에서 많이 보았던 패턴이었지만 그래도 다시 보는 재미가 있었나 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젠가 사 오셨던 위인전류였다. 그중에서도 '한석봉'이라는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었는데 방의 불을 끈 후 석봉이는 글씨를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써는 장면은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떡이 짜잔 하고 무지하게 가지런히 썰려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는데 반대로 석봉이의 글씨는 이리저리 삐뚤빼뚤 하였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석봉이는 어떻게 되었느냐. 우리의 석봉이는 큰 교훈을 얻고 용맹정진하여 대 조선의 최고 명필이 되었던 것인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마르고 닳도록 보았으면서도 글씨를 잘 못쓰니 역시나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이 책을 통해서 배웠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겠다.


다른 어느 날 아부지가 새로운 책 두어 권을 사 오셨을 때 그중에 '플란다스의 개'라는 책이 들어있었다.

사건의 시작이었지.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네로와 파트라슈를 만났다. 우유를 배달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네로에게 나타난 파트라슈, 파트라슈는 화가를 꿈꾸는 아이 네로의 곁에 늘 함께한다. 네로는 순수하고 거짓 없지만 할아버지는 아파서 돌아가시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게다가 누명까지 쓰게 된다. 무엇을 예감한 것인지 성당을 찾은 네로는 평소에 단 한 번이라도 보고자 소원했던 그가 존경하는 화가 루벤스의 그림 아래에 쓰러져 얼어 죽는다. 파트라슈도 네로의 옆에서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아 진짜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코가 매워지면서 눈뿌리가 시큰 뻑뻑하였다. 목이 콱콱 메어왔다. 몇 개 모르던 욕도 했을 것이다. 평생 마음 시리게 살아온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슬픈데 하필 크리스마스날인지에 성당에서 친구 파트라슈와 얼어서 죽는다니! 그것도 위대한 그림을 드디어 눈에 담았다는 만족감 속에서, 누명은 벗지도 못 한 채로.

네로의 꿈은 흩어졌고 파트라슈의 우정도 사라졌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오직 둘 뿐이었던 채로.

이 억울함과 불쌍함에 같이 잠겨보니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결국 네로의 진정성은 죽은 이후에야 밝혀지고 그 바보 같은 마을사람들도 그제야 네로와 파트라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구한테 내가 지금 슬프고 화난다고 표현하려는 울음이 아니라서 눈물이 막 흘러내려도 소리도 못 내고 혼자 끅끅대면서 울었다. 슬퍼도 슬퍼도 너무 슬펐다.


아 그날, 내가 마침내 울음을 그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 허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이 마음을 아부지 엄마한테 얘기해 볼까 하니 이건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순간이 바로 내 감수성이 껍질을 깨고 승천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이 헛헛해서 방안에 못 있고 밖을 돌아다니게 되어있는 날이 있는 법인데 그때가 언제 처음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짓을 처음 한 것은 바로 이 날, 이 빌어먹을 '플란다스의 개'를 처음 읽은 날이었다.

책은 이후에도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었지만 절대로 다시 펼쳐보지 않았다. 너덜너덜해지도록 사랑받은 한석봉과는 전혀 상반된, 싫어한다기보다는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기분을 알려준, 바로 그 책, '플란다스의 개'는 내 인생에 단 한 번만 읽은 책이다.

심지어 나중에 테레비에서 동명의 만화가 나올 때도 그 만화는 고작 몇 번 정도만 슬쩍슬쩍 보았다. 그때는 착한 아이들이 핍박당하는 만화들도 참 많았는데 그런 만화들은 그래도 그냥저냥 보았다.

왜? 그 주인공들은 죽지 않으니까. 역경을 이겨내고 다 해피해지니까. 그런데 네로는 어떠냐구. 결국 그 성당, 그 그림 아래서 파트라슈랑 얼어 죽는 걸 아니까.

천국에 갔다는 말도 없었으니까.




여선생님과 얄개전

교과서를 받아서 헌 달력 뒷면으로 겉을 다 싸기도 전에 나는 바른생활이나 국어책을 붙잡고 스토리가 있는 건 죄다 읽어치웠다. 그 무렵이었나. 고학년 반에 있는 그림도 없이 글씨만 빽빽한 책까지 읽어치웠다. 그러다 보니 애가 점점 성숙해졌는지 어른들이 막 얘기하는 와중에 애들은 못 알아듣겠거니 하는 말까지 대충 알아듣게 되었다. 살짝살짝 점점 애어른이 되어간달까.


삼 학년 때 읽었음이 분명하다. 얄개전이라는 책은.

왜냐하면 사 학년 일 학기에 벌어진 사건이 얄개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선생님이 전근 오신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 인생 최초의 여선생님이고 그 선생님이 사 학년을 담임하신다니 나는 여선생님을 처음 만난다는 설렘에 들떠 있었다. 누나가 없는 나는 친구의 누나들이 친구들을 이것저것 살펴주고 챙겨주고 하는 것이 무척 부러웠는데 아마도 취학 전에 교회에서 성경학교 같은 걸 했을 때 내 손을 잡고 부드럽게 얘기해 주던 시집 안 간 처녀선생님의 따뜻한 웃음이 그리웠던 것일까.

얄개전의 주인공은 중고생 정도 되는 사고뭉치였으나 어른들은 '허허 그놈 참 맹랑할세' 정도로 넘어가준다. 등장인물들은 활기 넘쳤고 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어른들의 이해와 관용 속에 성장한다. 그 안에는 사춘기의 어지러움과 열병, 풋풋한 정의감과 좌충우돌의 성장기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에 낭만을 느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춘기, 그 부푸는 감정을 그대로 느꼈던 것이다. 나도 주인공처럼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선생님께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얄개전에 나오는 주인공의 장난을 그대로 현실에 옮겨놓을 계획을 도모했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얄개전의 낭만을 이야기하니 친구들은 호기심에 반짝한 눈빛으로 나를 봐주었다. 도시 사람들은 다 이렇게 노는 거라고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내가 그동안 읽은 책이 얼마인가. 구라를 치려니 구라가 아주 아름답게 술술 풀려나왔다.


계획은 이랬다.

선생님이 3월 2일에 우리와의 첫 만남을 위해 3, 4학년의 교실문을 열 때 그 문은 아주 꽉 닫혀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 문과 문틀의 가장 위쪽, 그 사이엔 칠판을 잔뜩 지운 분필지우개가 허연 가루를 아래로 한 채 꼭 끼워져 있어서 선생님이 가로로 문을 여는 순간 아래로 낙하하여 아마도 고운 머릿결 위에서 폭파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면 교실은 폭소로 가득하고 선생님은 "요 녀석들!" 하시면서 고운 치열을 보여주면서 호호호 웃으실 거고 그 웃음이 진정되고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조용히 쳐다보면 선생님은 간단한 몇 마디를 하시고 분필곽을 열어 당신의 이름을 칠판에 쓰실 것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분필곽에는 어쨌든 께름직하다든가 징그럽다든가 하는 어떤 벌레라도 들어있을 테니까. 소설에서처럼 개구리를 구하기가 힘들어 벌레로 대체하였지만 효과는 분명히 있을 거란 단호한 판단이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도시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꺅!" 하는 소리를 지르시게 되어있고 교실은 다시 한번 웃음바다에 빠지고 어떤 아이는 포복절도할 것이다. 이렇게 되게 되어있다.

짧은 소동이 지나고 선생님은 물으시겠지. 이런 깜찍한 환영식은 누가 준비했냐고. 그러면 친구들이 일제히 검지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킬 거고 선생님은 나의 이름을 우리 반에서 제일 먼저 물어보게 될 것이다. 독서에 기인한 나의 천재성은 선생님께 그렇게 각인되고 나는 선생님의 끊임없는 따뜻한 사랑을 한 학년 내내 받게 될 것이다.


들려온다.

선생님이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가.

문이 열렸다.

투하를 기다리던 분필지우개는 낙하하였다.

그런데 계획과는 다르게 선생님의 오른쪽 어깨 쪽으로 맥아리 없이 툭! 그것도 바깥쪽 세로로 떨어져서 분필 가루의 큰 폭발 없이 스르르 굴러 내렸다. 아이들이 키득이는 소리가 잠시 들렸던 것도 같다. 선생님은 순간 미동이 없으시더니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반 아이들의 표정도 얼어붙었다.

선생님은 이내 상황을 파악하시고 오른쪽 어깨를 툭툭 터시더니 분필지우개를 주워 들면서 말씀하셨다.

"누구야, 누가 이거 이렇게 해놨어."

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나는 순간 땅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지만 그 대신에 그냥 오른손을 살포시 들었던 거 같다.

앞으로 불려 나갔다.

한 볼을 꼬집혀 고개는 오른쪽을 눕혀지고 다른 쪽 볼에는 분필지우개가 날아왔다. 분필 지우개는 선생님의 머리가 아니라 내 얼굴에서 폭발했다.

서너 대의 분필지우개 싸다구를 맞았나 보다.

나는 그날 분필의 냄새와 맛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캑캑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분필지우개로 뺨을 맞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분필곽 얘기는 할 것도 없다.

선생님은 곽을 열어보시더니 "칫!" 하는 한마디만 남기고 돌아섰던 것이다.

나의 낭만적이고도 거창한 계획은 이렇게 참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건진 것 없이,

시골애들이 더 되바라졌다는 얘기나 듣고 말았으니까.

내 계획 중에 성공한 것은 선생님이 나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아셨다는 것 단 하나였다.




야성의 부르짖음

나에겐 야성이 필요했나 보다.

도시에서 오신 선생님에게 계획에 없던 완패를 당하고 나는 나를 다독여야 했다.

'야성의 부르짖음'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내 기억에 나를 동물의 시점으로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도록 만든 첫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은 개다. 이 개는 주인과 안락한 생활을 하던 중 어떤 사건으로 인해 북극으로 끌려가게 되어 거기서 자기 속에 있는 야성의 본능을 알아차리면서 경쟁 구도에 있던 다른 개들을 이기고 또 사람의 욕심에도 맞서가면서 결국 늑대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장쾌한 스토리였다.

이런 책을 읽고 도저히 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개를 데리고 뒷산으로 간다.

보통은 산에서 나무 작대기나 하나 만들어서 마치 전쟁터 장군이나 된 마냥 뛰 댕기면서 산토끼 지나간 자리를 본다고 설쳐댔지만 이 책을 본 이후엔, 개는 바뀌지만 이름은 늘 같았던 그때의 우리집 메리도 늑대의 본성이 꿈틀거리는 듯 다시 보이는 것이었다. 개를 풀어놓고 작대기 대신 톱과 낫을 들고 출정하였다. 작대기는 야성과 맞지 않는 도구였기 때문에.

그런데 이 메리는 길가에서 자꾸 인분을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개와는 너무도 다른 품격을 지녔지만 일단 그런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엔 왜 밭이나 산 근처에 인분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 메리가 통칭되는 똥개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여하튼 나는 그날도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야성을 주체하지 못해서 산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요리조리 적군을 피하는 것처럼 몸을 낮추기도 하면서 산 능선을 타고 평상시보다 제법 멀리 갔는데 눈앞에 민둥산 하나가 건너다 보인다.

산판이 끝나 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고 남중생의 스포츠머리처럼 박박 깎여진 산 윗부분에 밑동이 굵은 나무 하나가 의젓하게 서 있었다. 산 하나에 딱 하나만 남은 나무 한 그루.

옳다구나 저것은 오늘 내 반나절의 목표다.

맞은편 산을 질러 오르려고 길 없는 비탈을 내려간다. 작은 나뭇가지들은 낫으로 탁탁 쳐내가면서.

그 와중에 앞쪽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면서 무언가 산 아래로 내닫는다. 토끼다 ! 산토끼 한 마리가 아래로 뛴다. 산토끼는 비탈을 좌측으로 뛰다가 다시 우측으로 뛰다가 하면서 우왕좌왕 내려 뛰는데 역시 늑대의 피가 흐르는 우리 집 메리도 그 낌새를 채고 토끼를 빠르게 뒤쫓기 시작한다. 토끼와의 간격이 거의 좁혀져 가는 그때 내 머릿속엔 벌써 토끼 귀를 움켜잡고 집 마당을 들어서는 보무도 당당한 멋진 모습이 상상되었지만 비탈을 다 내려와 다시 건너편의 산으로 오르는 경사를 만났을 때 토끼가 올려 뛰는 속도는 가공할만한 것으로 이쪽 비탈에서 구경하던 내 눈에 그 속도는 우리 집 개의 세배 정도는 빠른듯하여 내가 조금 느리게 턱을 치켜드는 속도로 산 하나를 넘어가 버렸다. 아부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서 아래쪽으로 몰면서 잡아야 한다고. 개는 반대편 비탈 중간에서 혀를 빼물고 헥헥대고 있고 나는 잠깐의 기대를 접고 원래 목표로 간다.


'온 산의 나무가 다 없어졌는데 이 나무는 운 좋게 남았네.'

나는 톱으로 썰기 시작한다. 기껏 초등학교 삼사학년이었으니 그 힘이 굵은 나무를 썰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겠지만 나는 각종 책들에서 이미 충분히 배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은 인내를 가지고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결국 어떤 성과와 보상을 받고 운이 좋으면 남은 인생을 아름다운 공주님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것.

나무에 톱질을 하기 시작했지만 속도가 너무 더디다. 싱싱한 나무의 속 냄새가 피어나고 주위엔 하얀 톱밥이 소복소복 쌓여간다. 꾸역꾸역 반 정도를 썰어내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나무가 톱날 쪽으로 살짝 주저앉으며 톱이 눌리기 시작하니 톱의 전진 후진이 너무 어려워졌다. 톱을 빼고 반대면의 사선 윗부분부터 공략해서 새로 톱질을 시작한다. 산의 이 편과 저 편에서 터널을 뚫으면 결국 만나듯이 먼저 톱질해 놓은 곳 근처까지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힘은 점점 빠지고 톱질의 속도는 느려지고 얼굴은 땀투성이가 되어간다. 메리도 재미없는지 어디로 없어진 지 오래다. 무념무상으로 썰던 어느 시점, 뚜두둑 하는 소리를 들었다. 혹은 진동을 느꼈던가. 나무를 살펴보니 썰었던 자리가 서로 만나간다. 조금 더 톱질을 지속한 후에 비탈의 위쪽으로 올라가 힘껏 나무를 밀었다. 우지끈 뚜둑뚝하는 소리와 함께 큰 나무가 아래쪽으로 느리게 넘어간다. 내가 본 슬로우 모션 중 가장 보람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땀을 훔치고 휘파람으로 메리를 부른 뒤에 지친 몸으로 귀가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하루를 보낸 것보다는 훨씬 기분이 좋았다. 산에서 그 나무가 혼자 쓰러졌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지만 나는 꼭 무얼 이뤄낸 사람 같았다. 마치 내 안의 야성의 부르짖음이 깨어나는 듯한.


며칠 뒤 조반을 먹는데 아부지가 내게 말하셨다.

"니가 저기 아랫동네 뒷산에서 톱으로 나무 비었냐?"

이건 메리랑 나만 아는 모험의 비밀인데 아부지가 어떻게 아시는 걸까 의아했다.

"니가 톱 들고 돌아댕기는거 영순이네 할아버지가 봤다는데."

산에서 나무 하나 벤 것이 무슨 큰 죄도 아니니까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야, 그거 이장님네 산판 할 때 이장님이 산에 몇 번씩 다니면서 그 돌배나무 하나는 꼭 남겨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나무라더라."

촉법소년.

나도 한 번 당사자가 되었었구나.

그 이후로 나는 이장님네 집을 빙빙 돌아서 다녔다.


5학년이 된 초여름에 우리 집은 비교적 번화한 도시의 근교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테레비 채널이 대여섯 개씩 잡히고 버스를 타고 얼마간 나가면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던 전자오락실에 갈 수도 있었다.

책을 미친 듯이 압축적으로 읽던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책을 읽는 관성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지만 지난 시절만큼은 아니었다.

그때 그 시절에서부터 나는 얼마큼 성장했는가.

아마도 뼘 가웃 남짓이나 자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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