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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글 쓰는 삶

by 열목어

선생님은 안 계셨지만 누군가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 맡는 기분이었다.

아니지, 같이 시작한 분들과 또 글을 보아주는 모든 분들이 선생님이라고 봐야 옳겠구나.

밀린 일기를 쓰자면 대부분 시작은 '나는 오늘'로 시작하여 '참 재미있었다', 또는 '기분이 좋았다'로 끝을 맺었다. 날씨는 착실한 동무 것을 베끼면 그만. 흐림, 맑음, 비 옴, 흐리다 갬, 맑다 흐림. 맑다 비 옴.

어떤 글을 언제까지 어떻게 써 보자는 약속은 어렸을 적 일기 쓰기 이후에 처음이었고 나는 그 일기를 미루던 달콤함의 이면에 존재하던 가책과 시간이 닥쳐오면 어떻게든 써내기 위해서 골머리를 싸매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아셨겠지.

반복되는 패턴과 중첩되는 에피소드에 억지로 억지로 변화를 주어 가는 가련한 마감의 몸짓을.

그 시절에서 나는 얼마나 벗어난 걸까? 그 시절을 건너서 어느덧 그냥 어른이 되었고 그리고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 지금 여기에 있는 듯하다.

해당 주의 주제를 캡처해 놓고 메모지에도 써보면서 어떤 생각이 올라오는지 지켜보다가 마른 흙처럼 푸석푸석한 날에는 어떤 싹도 돋지 않는 표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올봄에도 同志들과 같이 이런 글쓰기 계획에 동참하였다가 어떤 주제에 막혀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중간에 쓰기를 중단했던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시, 7주에 걸친 주제는 주어졌다.

쓰는 형식에 대한 제한은 없었기에 내용의 측면으로 나름의 파격, 또 방언을 사용하기도 했고 주제별로 시와 산문과 시조의 형식을 택하기도 했다.

잠시 되돌아 본다면,


제1 주제. 글 쓰는 마음

글을 쓴다는 것은 유한한 인생에서 어떤 의미라도 더 오래 남기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인류 변천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기록의 유무에 따라 역사라는 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어느 단계부터 생존의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예술 행위가 끼어든 것일까. 인류의 뇌가 커지고 도구가 발달해 가면서 동굴에, 벽에 기억과 감정을 그림으로 남기는 개체는 있었고 그것을 그릴 때 그의 뇌리에 머물렀던 환희를 상상하면서 반구대 암각화를 떠올렸다. 소통과 보전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형이상과 추상에 대한 구체화의 욕망도 문자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


제2 주제. 기대는 책

주제의 설명에 들어있던 마중물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였다.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닌데 땅속에 깊이 박힌 펌프로 물을 올릴 때 거기서 쏟아지던 맑은 물과 사람의 노동,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퍼올린다', '길어 올린다'라는 동사의 느낌을 잠재된 내면의 것을 문장으로 표현하려는 노력과 동일시하면서 그 움직임의 결말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창작의 희망을 '시'라는 것에 투영하였다.

그리고 단숨에 건너뛴 비약으로 백석의 시와 박진성의 시를 끌고 왔다. 어색한 전개로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효과는 어떨까 라는 핑계로 밀어붙인 듯하다. 시의 생략이 그러하듯이.

시는 어느 날 마중물처럼 나의 정서를 건드려 무어든 축약하여 그 정수를 추출하려는 듯이, 방앗간에서 들깨로 들기름을, 참깨로 참기름을 짜내듯이 깻묵에 몰려드는 물고기 비늘처럼 고소한 향기로 나의 마음도 살랑거리게 만들었다. 풀어내자면 말이 안 되는 말들이 직관의 공통으로 생략된 부분들을 그려내었고 시적 허용은 숨기 좋은 수풀처럼 안락하였다. 이런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제3 주제. 내가 사랑하는 문장, 작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려니 몇 명의 작가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범위는 자연스럽게 확대되어 해외의 작가들도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시점에서 번역에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이 번 주제에서 사랑하는 작가를 골라내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래서 작가에 천착하지 않고 내가 이즈음 어떤 문장과 어떤 말들에 무장 해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았고 그런 건 다름 아닌 향토성을 띤 방언들임을 발견했다. 그 동질감의 범위는 고향 마을과고향 사람들에서 지역과 지역 사람들로, 나아가 국가와 국가를 경계로 퍼져나가다가 점차 흐릿해져 지구상의 온 사람들이 인류애로 하나 되는 어떤 동심원을 생각하였으나 그걸 다룰만한 능력이 되지 않아 제목에 교집합이라는 말을 넣고 범위를 좁혀 글을 마무리하였다. 이 주제에서는 일부러 우리 고향의 방언을 많이 넣어보는 시도를 하였다.


제4 주제. 책에 미친 시절

그냥 있었던 일을 풀어내면 되었기에 내게는 가장 쉬운 주제였다. 그래서 내용도 길어졌나 보다.

책을 좋아하던 시절의 기억들이 자꾸자꾸 튀어나왔다. 글을 쓰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오랜만에 주위를 날아다니는 생각들을 붙들어 앉히느라 이 구석 저 구석에 메모도 남겨가면서 반짝이며 날아오르는 소재에 비해 타수가 느리다는 생각을 아주 오랜만에 해 보았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좀 되었다는 식의 관조의 눈으로 유년을 보니 그 시절의 내가 살짝 기특하고도 우스워보여 이 주제의 글은 비애롭기 보다는 어느 정도 유머러스하게 쓰인 듯하다.

이 주제로 인해 어쩌면 한 두해 이냥저냥 지나갔으면 아예 기억의 창고에서 삭아 없어질 뻔했던 여러 기억들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 들어 제시된 주제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제5 주제. 당신의 인생 책

진솔한 글에 힘이 있고 독자를 붙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자기 고백적인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것이 기억이든, 취향이든, 성향이든, 터부든, 뒤늦게 깨달은 어리석음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아마도 부끄럼을 타는 모양인지 아니면 언제든 컬러를 바꾸고 위장할 수 있는 카멜레온처럼 보호색 속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러다 평생 '햇살은 따시고 바람은 부드럽고 강물은 맑았다'는 글이나 쓰다가 인생 종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약간의 용기를 냈다고 해야겠다. 일종의 변형된 주의에 가까운 것이 나의 한 때를 지배했던 시절의 분명하고 강렬했던 경험의 에피소드로.

어떤 사람의 멋진 말과 경험을 다른 그룹에서 내 것인 양 거짓말하며 청중의 주목에 도취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실제로 뛰어들어 보고자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적었다.


제6 주제. 내가 쓸 책

지금 나는 한 권의 책을 쓰고 싶다기보다는 단 하나의 시라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어 어떤 식의 울림이든 공명하고 싶다는 마음, 공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 과연 그 가능성이 얼마큼 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인가. 한 권의 책 안에 단 하나의 시.

예전에 어떤 시인이 썼던, '원을 그려봐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이런 류의 시를 봤을 때 감동도 했다가 유치도 했다가 뒤죽박죽이었지만 아직도 그 시가 내게 남아있는 것처럼 어느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해석되든 상관없이 아무 때나 어디서 어느 누구에게 무시로 떠오르는 그런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맘으로 세상을 보자니 나는 이미 구겨져서 시로는 살 수 없고 우리에게 한 없이 아득하고 기꺼운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동심의 순수로, 사람의 순수와 공동체의 지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은 마음, 시인이 되고픈 마음을 시조의 형식으로 써 보았다.


제7 주제. 글 쓰는 삶

이 번 쓰기 과정과 그 참여에 대한 소회로써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다.


일주일에 한 개의 글을 쓰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꾸준하게 무엇이든 써야 쓰는 속도가 늘고 글의 양이 늘고 주제와 그를 받치는 소재, 그에 따라 펼치는 문장들의 상호 작용, 탄력의 긴도가 팽팽해지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인데 지금껏 간헐적으로 글을 쓰던 버릇으로 지정된 주제와 시간에 맞추려니 멀리 바라보며 첫 주제와 마지막 주제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생각할 틈도 없이 당면한 주제를 쳐내려는 생각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치 우연처럼 일곱 편의 글이 유기체적으로 이어진 움직임을 갖기를 원하였던 욕심.

월요일부터 생각해서 목요일까지 틈틈이 세웠던 구조에 단어를 엮어 붙여보다가 도저히 무얼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전면 폐기하고 새로 쓴 적도 있고 예전에 수첩 어느 면에 짧게 적어놓았던 몇 개의 단어에 착안하여 거기에 의존해서 쓰면서 견강부회로 주제를 끌어들인 적도 있다.

그래도 나는 최종적으로 이 번 쓰기 계획을 함께한 것이 참 재미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번엔 진짜로.


옛날의 제출용 일기처럼 '참 재미있었다'와 '기분이 좋았다'로 마무리하면서 달여간의 여정을 생각한다.

작문의 영감은 때로 황소를 비끄러 맨 밧줄처럼 팽팽한 힘으로 나를 잠시 요동치다 주저앉히기도 하였지만 겨우 바늘귀에 걸린 가느다란 실이 길게도 풀려나오듯이 그렇게 느리게라도 써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주기도 하였다.

글감을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며 알게 되었다. 속도가 붙으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풍경과 바람을 즐길 수 있듯이 꾸준히 쓰다 보면 무의식의 리듬이 도움의 손길을 주어 어떤 순간 자유로워진다는 것.

조소를 다듬는 최후의 진흙칼은 버릇처럼 움직이는 펜 끝에도, qwer 식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에도 있다는 것.

글이란, 혼자 쓰지만 혼자 쓰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쓰는 인생.

이렇게 써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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