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삶
십일월의 어느 날, 오전 여덟 시 십 분의 메모
난 아이였다가, 어느 순간 한 번에 폭삭 늙는다.
그날의 나는 증발되었고, 난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천이십오년 십일월 이십일 오후, 아니 밤은 지금이다. 뭔가 이상하다. 그래, 지금은 밤이다. 오늘은 일곱 번째 주의 네 번째 날이고, 지난 여섯 개의 주가 흐르는 동안, 여섯 개의 글제가 주어졌다. 열한 명이 모였다. 열한 명이 모였고 육일을 여섯 번 지냈고, 오늘이 네 번째 날이니 사십 일째다. 비어 있는 날로 정한 일요일을 제외한 날로 곱씹자면, 그래, 오늘은 사십 일째다. 사십 일째에 마주한 일곱 번째의 글제를 남겨둔 채, 졸린 눈의 사람들이 모인 곳의 첫 번째 불침번인 마음가짐으로, 적당한 허기짐을 몸으로 느끼며 노트북을 켠다. 첫 번째 썼던 글이 방아쇠의 자리에 얌전하게 앉아 있음을 느낀다. 이어진 다섯 개의 글들이, 얌전하게 앉아 툭 툭 당겨 대충 쏘아 만든 탄착군의 모양새를 본다.
공감을 바라는 마음보다, 공감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건 그렇게 되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마음이었을까, 그런 마음으로 찍어댄 움푹 패인 글의 상흔을 보며, 조금 부끄러움을 가져 본다. 아주 표면적이고, 그래야 할 것처럼 느껴본다. 괜히 그래 보고, 사실은 아니지만 그런 척하는 밤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을 이렇게 울퉁불퉁, 굴리다가, 사십 일째 밤 불침번이 되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억지로 더 건드려 본다,
지금의 난 잠시, 내게 지겨움을 느껴 본다. 좀 더 친절한 손 끝으로, 뚜렷한 노란색을 가리키며 노란색에 얽힌 츄파춥스사탕 같은 달콤함 대신, 끈적하고 시큼한 위액을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같이 맛보자고 쓴 것들에 혐오를 가져본다. 그건 생명 같은 친구와 마셨던 술의 잔해인데, 밖에서 보니, 따분하게 느껴진다. 하품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불침번의 손톱으로 벽을 긁어 본다.
잠의 시간이 웃었다.
꿈은 도망 왔고
난 아이였다가, 어느 순간 폭삭 늙기 시작한다.
사탕을 핥던 혀가 내뱉은
침묵이
늙어서 생긴 주름살의 강을 타고 흘렀다
사십 일 동안 쉬지 않은 바위의 허리가
떨어지는 단풍에 부서진다
빛나게 빛나는 빛의 덩어리를 향해
찡그리며 웃으면
난 아이였다가, 어느 순간 폭삭 늙기를 멈춘다
그래서,
서서히 늙기를 시작하면
바위의 허리에 단풍은
이제부터
꽂혀서 단단해졌으며
바람은 자갈처럼 단풍사이를 거닐었다
어느 날 아침
그렇게 잠에서 일어났다가
길거리에서 뛰어다니는
갓난아이의 늙음의 속도를 쳐다본다
지켜본다
매만져 본다
나는 잠깐 폭삭 늙어본다.
아이처럼
아! 생각이 나버렸다. 글을 쓰며, 글의 발자국을 밟다가, 메모의 처음을 찾아낸다. 그 별 것 없는 한 줄의 글은, 수영장을 향하는 길에서 보았던 갓난아이의 늙음이었다. 이런 식의 사고의 흐름이 내게 피곤함을 가져다준다. 잠깐 웃긴 했지만.
이런 붕괴적인 것이 누군가에겐 분개를 일으킬지 모르겠지만, 잠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우겨보는 밤이다. 혼자 읊은 숨소리였고, 받아 적었노라 써본다. 나의 마음을 냉철함을 담아 최대한 못생김을 더 자세하고 부끄러움의 벽을 넘어본다.
마지막 글제에 걸터앉아서, 내 글의 무게를 덜어내 본다. 같이 하는 열명에 기대어, 막춤을 춘다. 당신들의 글에 떠있는 해가 내 삶에 있는 그 해와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당신의 밤에 침대처럼 떠다니는 포근한 달빛이 내 눈에도 닿았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내 삶에서 보이는 사랑의 얼굴을 당신의 눈앞에 드리대며 소개해주고 싶을 뿐이다.
부족함을 흥미의 통로로 집어넣는다. 그것은 농염함의 곡선의 마사지를 받고, 망각과 자위의 주조를 거쳐, 천 개의 입술의 포옹을 받는다. 아침이 잠시 낮잠을 잘 때, 몰래 얼굴을 내민 첫 번째 마음을 난 오늘도 낚아 챈다. 멱살을 쥐고, 협박을 해서 얻어낸 재미없는 자백을, 알몸으로 받아낸다. 허물없음의 어색함으로 보이는 매력 없는 미소가 번진다. 도마를 꺼내지만, 그 표정의 기억은 없다.
난 아이로 돌아가, 엄마를 찾던 울음소리로 웃어 보고 싶다.
아빠의 두터운 손바닥이 되어, 폭삭 늙어버리는 벽을 막고 서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