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인

플롯과 구조

by 열목어


갈아입은 옷에 진물이 조금 묻으면 금세 마음이 불편해서 다시 새 옷을 갈아입으려고 한다.

마치 손톱 옆에 삐져나온 거스러미를 뜯어내고 싶은 마음처럼 정돈하고 싶은 본능이 일어나는 걸까.

이제는 그리 귀히 여기던 손자 손녀 이름도 기억을 못 하면서, 눈을 마주치고 "아이고 왔나!" 웃어주지도 않으면서 방금 갈아입은 옷을 다시 갈아입고 싶어 좌우를 살피고 천장을 바라봤다가 다시 옷을 만져보면서 초조해하는 모습이다.

한탄강 물길 옆을 걸어 양평 홍천의 산길로 행군하던 젊은 날, 허기와 갈증에 눈을 뭉쳐 삼켜가며 긴긴 훈련을 버텨냈다던 경상도 사나이 김병장의 한 생이, 도시의 어느 골목,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따로 하나 더 있는 팔십 년대 스타일의 붉은 벽돌집 구석방 침대 위에서 사그라들고 있다.


'항상 깔끔하셨지. 정돈된 걸 좋아하셨고.'


식사를 할 때도 국에 밥을 마는 것을 본 적이 없고 항상 한 숟가락 정도의 밥을 남겼다.

이 집 삼 남매가 학창 시절에 무릎을 꿇고 새벽까지 들은 얘기 또 듣고 그 얘기 다시 듣고 할 때 그가 술김에 하는 일장훈시의 발단은 현관에 신발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장인은 요즘 아기처럼 잠을 많이 잔다.

그 방의 꺼질 줄 모르는 TV는 머물렀던 누군가가 선택한 채널대로 뉴스와 광고를 반복하고 있을 뿐.

거친 숨이 이어지다 어쩌다 문득 무호흡이 길어지면 "크헉!" 하며 크게 숨을 쉬고는 잠시 눈을 떠 무엇을 보는지 모를 시선으로 나와 잠시 눈을 맞추었다가 이내 다시 눈을 감고 잠 속으로 빠져든다.


'무슨 꿈을 꿀까......'


예전엔 의사 말고는 입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발사의 흰 가운을 걸치고 종업원을 대여섯씩 두어가며 빗과 가위로 종횡무진 손님들의 머리카락을 사각사각 잘라내던 꿈, 그렇게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함박눈이 내리는 속도와 같이 느리게 바닥에 쌓였고...... 그리고 공간 뒤 켠에 여러 명의 점심 준비로 바쁜 젊은 장모의 손, 월급이 몇 푼 안 되던 시절, 기술 배워 독립하겠다고 어깨너머로 치열한 시선을 꽂는 약은 도제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옅은 비누 냄새와...... 장인의 흰 가운...... 흰 가운의 아랫자락은 산들산들 흔들렸을 것이다.

그날 받은 지폐가 주머니에 두둑이 쌓였다면 저녁답에 어느 대폿집에서의 흥겨웠던 젓가락 장단도 꿈에 스몄을까.


"멋쟁이였지. 인물은 또 얼마나 좋았는지!"


사진첩을 펴고 옛날로 돌아가보면 헌칠하고 반듯한 장인의 사진들이 있다.

백칠십이 휙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 현재의 눈으로 옛날을 보아도 눈에 띄는 청년이다.

장인과 장모가 결혼을 할 때 신랑에 비해 각시가 외모는 좀 쳐진다는 얘기를 누가 누가 했다더라는 되돌아오는 말을 귓바람으로 들었던 장모는 요즘에도 가끔 그 섭섭함을 불러일으켜 기본적으로 시댁 쪽 사람들이 경우가 덜되었다든가 그 동네가 원래 양반 동네는 아니었다든가 하며 싸잡아 안주로 버무리지만 그때도 장모의 표정이나 말투가 그리 분하거나 노엽지 않은 걸 보면 사람 인물 파먹고 사는 거 아니라지만 장인의 인물에 흔들렸던 나팔바지 처녀 시절의 그 감흥이 아직은 완전히 삭아 없어지지 않았는가 보다 하는 것이다.


십 년도 더 되었는지.

누가 왜 제안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처가 식구들과 김천의 직지사 나들이를 갔었다.

장인은 그날도 깨끗한 복장을 고른 후 어김없이 외출용 금테안경을 쓰고 손목에는 금시계를...... 아니 금빛 시계, 큰 사위가 도지사에게 근속기념으로 받았다나 표창으로 받았다나 하는 골드 도금 시계를 착용했었지.

직지사를 오르는 완만한 언덕길을 걷던 발걸음.

자동차가 몇 대 없던 시절에 끗발을 날렸다던 택시운전사만큼이나 하얀 가운의 이발사가 의사처럼 대접받았던 시절은 금방 지나갔단다. 배웠던 기술이 평범해지고 장인은 현장 노가다판으로, 호황이었던 그 시절의 건설 경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이고 무슨 놈의 사고가 끝이 없는지."


직지사를 오르는 언덕길, 까불락 대는 아이들이랑 놀멍놀멍 가면서 내 앞을 걷던 장인의 걸음걸이가 유독 내 눈을 찌르던 날, 균형이 기울어 한쪽 다리를 절며 일정한 박자를 찍어내는 안쓰러운 리듬이 늦은 봄기운에 섞여 들었다.

현장 사고가 있었고,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다.

반듯했던 눈썹은 왼쪽이 꿈틀 하며 흉터와 함께 어그러졌고 한쪽 어깨는 관절의 활동 범위가 좁아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다리, 다리에 철심 몇 개를 박아 넣고 긴 시간 동안 한 남자를 옴쭉달싹 못하도록 만든 횡단보도 차량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는 장인을 오십 대부터 묶어놓았고 경제 활동은 중단되었다. 장인의 말 수는 더욱 줄었고 장모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활동을 못하는 답답함에 욱여넣은 자존심을 매일매일 마시는 술로 풀어내어서인지 육십 대 초반에 장인은 위암선고를 받고 위를 전절제 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때도 의사는 완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말을 했고 장모는 일하랴 간병하랴 몸고생 마음고생이 더욱 심했으나 그 시기를 슬기롭고도 정성껏 넘겨 수술 후 오 년 경과의 암 완치 판정을 끌어내었던 일도 있었더랬다.


"잘 보면 애기 동자 하나 있데이."


천년 고찰의 풍모가 느껴지는 반듯한 직지사를 둘러보았다. 비로전 안에 빽빽한 천 개의 불상 틈에는 동자상이 하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니가 먼저 찾았니 내가 찾았니 애기 동자 고추를 봤니 못 봤니 조잘대면서 절을 내려왔다.

직지사 앞의 식당가에서 크지도 작지도, 깨끗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식당의 비닐 장막 옆 평상에 앉아서 산채비빔밥과 더덕구이를 시켜놓고 먼저 올라온 밑반찬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따랐다.


장인의 고향은 김천이다.

평소에 과묵한 그는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옛날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런 이야기의 주제는 거의 어린 시절, 가난의 기억, 군대의 추억, 옛 대통령 칭찬 등이 주를 이루는데 그날은 좀 달랐다. 오랜만에 고향 산천인 김천의 골짜기에 왔기 때문에 이에 얽혀있던 희미한 기억 하나가 선명하게 살아 올라왔던 것이다.

"저기 저쪽 비탈로 더 올라가면 그 골짝 안에 집들이 있었어여."

장인이 장가가기 전, 그러니까 지금 앉았는 이곳에 식당도 없었고 신작로라고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시절에 장인은 동행 한 명과 함께 직지사 나들이를 왔다가 문득 어린 시절 넘나들던 골짜기 안쪽이 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온 김에 가보자고 동행과 산길을 오르게 된 것이다. 한참을 올라 인가를 접하여 그 마당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화들짝 놀라면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감추려는지 얼굴은 벌게져서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이었다.

"저기...... 그냥 맛만 좀 볼라꼬요. 세무서에서 나오싰어예?"

인적이라고는 없는 심심산골에 꼿꼿한 가다마이 쫙 빼입고 들어올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엔 민가에서 술을 담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절이라 밀주 단속이라는 것이 있었고 산비탈 일궈서 콩이랑 옥수수 심어먹던 촌에서는 관에서 무슨 높은 순사 같은 사람들이 단속을 한다면 어디 철창에라도 바로 달려들어가는 줄 알고 벌벌 떨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장인과 동행은 속으로는 우스우면서도 괜히 장난으로 눙쳐보려고,

"하 이거 이라마 안되는데 참 나!" 해가면서 짐짓 유세를 부려보는 고관대작의 심리에 올라탔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쪽은 저쪽대로 미안합니데이, 잘몬했습니데이, 고마 함 봐주이소 해가면서 쪽마루에 두 사람을 붙잡아 앉혔다.

"골짜기 올라오시느라꼬 시장하시지예"

순식간에 밥 짓는 연기가 오르고 그 집에서 아껴먹던 반찬들이랑 김치랑 그 문제의 밀주가 소반에 차려 나오는데 집 옆에서는 그 바깥양반이 벌써 물을 끓여놓고 닭 모가지를 비틀고 있었다나.

그저 몰래 담아둔 술 맛이나 좀 보고 싶어서 시작한 장난이 이렇게 점입가경이 되어가자 장인과 동행은 안 되겠다 싶어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냥 직지사 구경온 사람들이라고 이실직고를 하였는데 도무지 저쪽에서 믿지를 않더란다. 그 집 남편과 아내는 부엌 아궁이 옆에서 귓속말을 나눴겠지.

'차려입은 걸 봐라 분명히 어디 관청에서 온 사람들이 맞다. 그라고 아니라손 치더라도 저 이들이 시내에 나가서 어데 고발이라도 하게 되믄 우짜노. 그래도 같이 묵고 같이 마시믄 나가서 발설할 수 있겠나. 밀주를 같이 농가 무면 그것도 공범이라.'

농사짓는 집 중에서도 그 중 깨었다는 집들이 그랬듯이 장인의 집안은 재산이랄 것도 없는 것들까지 죄 끌어모아 장인의 큰 형님 교육에 부었기 때문에 그 아랫 동생들은 나란히 국민학교 졸업장이 최종학력이었다. 훗날 그 큰 형님은 지역의 경찰서장까지 올랐고 이것은 집안의 자랑이 되었고 분배 효율의 모범이 되었다지.

그렇게 장인은 그때 얻어먹은 술과 음식, 그리고 잠시나마 벼슬 높은 암행어사가 되어보았던 그 유쾌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서 작은 사위 앞에서 일 년에 한 번쯤 들어볼까 말까 한 그렇게 긴 얘기를 했던 것이다.

웃음소리가 식당 안으로 퍼져갈 만큼 재미있었던 장인과 사위의 말잔치였고 그날따라 장인의 표정은 생기가 넘쳤고 술에 취해 거나하게 더듬으면서 내려오던 그 저녁의 산길 위에 빛나던 별처럼 그의 눈빛은 빛났었다.


"안 되겠다. 아무래도 퇴원 씨기야겠다."


엊그제 입원 수속을 밟아 놓고서, 아무것도 먹지를 않으려고 하니 당신이 집에서 어쩔 방법이 없다고 내렸던 입원 결정을 장모는 이틀 만에 번복하였다. 장인은 지금 치매와 유사한 뇌 질환을 앓고 있고 거기에 예전의 위암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암 말기 판정이 겹친 소위 말하는 시한부 상태이다.

장인은 인지능력이 현저히 낮아져 이제는 기본적인 구조 자체의 이용 필요를 생략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요의가 느껴지니 간신히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병실 안쪽에 있는 화장실을 가려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링거 거치대에 주렁주렁 걸린 각종 수액들은 이미 장인의 팔에 바늘로 꽂혀 있었고 화장실을 스스로 가려는 의지만 있었지 그 링거 거치대를 끌고 움직여야 한다는 인식은 없었던 것이다.

휘적휘적 걸어 나가다 질질 끌려가는 링거 거치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소리를 치고 나서야 장인은 멀뚱히 서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남들한테 부탁 잘 못하고 천성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장인이 그 병실에서 낯선 침대, 낯선 사람들 틈에서 불안함에 잠 못 들고 눈을 깜빡깜빡거리고 있는 것을 본 장모는 어떻게 되든 그 유별났던 평소의 자존심이 그대로 그렇게 무너지도록 보고 있지는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요즘은 출장 간호라는, 상처를 드레싱 하거나 영양 공급을 위한 수액을 연결해 주기 위한 전문 인력이 가정을 방문하여 살펴주는 제도가 있다 하여 그걸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은 무척 다행이었다.

장인을 퇴원시키기 위해 병실 복도에 섰다가 장모가 끌고 나오는 휠체어를 받아 쥐려 하였으나 장모는 내게 손을 넘겨주지 않았다. 마치 가는 길 끝까지 당신 손으로 꼭 쥐고 같이 가겠다는 듯 휠체어를 움켜쥔 손이 단단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수목장? 나무도 다 낸중에는 늙어 죽고 병들어 죽는다카이."


한쪽 방에 장인이 고요히 누웠는데도, 목소리가 높아지면 이 얘기가 본인의 죽음 이후에 관한 얘기인 것도 눈치챌 정도의 거리인데도 거실에서는 장례 절차에 대한 얘기가 넌지시 흘러간다.

도시 근교 어디 조용하고 경치도 괜찮은 수목장 하는 곳이 있다기에 거기는 어떤가 말을 건네본다. 장모는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어디 큰 절에서 하는 추모원 납골당 한 칸에 모시는 것이 제일 깔끔하다고 말한다.

"화장하면 가루는 어데 산기슭에 뿌려뿌고 납골당 한 칸에는 안경이랑 그 시계랑 이렇게 두 개만 넣을라 칸다."

그래, 어디를 나서실 때는 꼭꼭 착용하시던 것들.

옷을 다 갈아입고 퇴원 휠체어를 밀고 나올 때 옆에 있던 손녀에게 안경이 없다고 손짓으로 말했단다. 그래서 살펴보니 병원침대 아래 한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고.


장인은 요즘 아기처럼 잠을 많이 잔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은 평화롭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 잠든 모습이 점점 불쌍해 보인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맘에 들 구석도 별로 없는 강원도 사위, 어디서 훌륭하다는 명성을 얻어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큰 부를 쌓지도 못한 그저 그런 작은 사위에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는 말씀 한 마디 없으셨던, 옛날로 치면 양반 같던 양반.

내가 처가에 인사 온다고 이 붉은 벽돌집 대문을 처음 열고 들어오는 날에도 마당은 벌써 떠들썩해서 처형, 처남이랑 동서 형님이랑 장모까지 나와서 반기고 웃어주는데도 끝까지 안방 TV앞에서 밖의 소란을 모른척하면서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

신발 벗고 안방에 들어가 "아버님 저 왔습니다." 하니 눈을 크게 뜨고는

"어이 그래 왔나!" 하면서 그제야 환하게 반겨주시던 그 체면 높던 양반.

장인의 인생이 바스락바스락 다 말라서 이제는 무게가 없어져 그만 하늘로 오르려 하고 있다.

고단 했던 한 사람의 삶이, 한 우주가 소멸하고 있다.


'감사했습니다. 장인어른.'


마음으로부터 이 인연에 고마움이 번진다.

티베트의 밀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 어느 임신한 여인의 탯속으로 들어가 환생한다는 믿음이 있단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직지사 천불상 속에 오도마니 서있던 애기 동자가 떠오르는 것은 어인 영문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모노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