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브런치 시작 4)
회귀라고 적어놓고 적잖은 글을 썼다가 지웠다
힘으로 밀고 나가자니 힘이 모자랐다. 쉬었다 다시 쓰자니 힘이 차오르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브런치라는 곳에 같이 매거진을 적어보자는 '동지'들과의 약속이자 나도 동의했던 순차적인 주제였다.
동의했던 주제라는 것은 작가라고 불러주는 존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브런치를 접하고 느꼈던 기쁨과 거기에 힘입어 쏟아내었던 문장들, 그리고 고갈되어 가는 소재와
늘지 않는 구독자와 울리지 않는 '라이킷'과 더 근본적으로 내가 쓰는 글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의문,
기쁨과 고민과 정체와 그리고 시간을 두고 이런저런 미운 감정을 뚫고 오르는 다시 쓰고 싶은 열망과 거기서 잦아들어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상과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통찰까지.
긴 여정을 경험론에 입각하자니 경험이 모자랐고 그래서 소주제 '회귀'에서 멈춰 섰다.
아직은 쓰고픈 말이 많아서 정체를 넘어 회귀로 가는 과정을 써내기 쉽지 않은 거라고 말하고픈 핑계도 있었다.
나는 내일 심심산골에 간다. 양양군의 경계와 맞닿은 강원도 홍천의 산골로 간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사촌 동생이 있는 시골로 간다.
돌림자를 같이 쓰는 그와 나는 어릴 적엔 좋아서 죽고 못살았다. 한 해 걸러서 한 해쯤 사촌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다고 하면 나는 강가에서 놀다가
붓꽃, 할미꽃 따면서 동네 친구와 놀다가 서너 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너무 좋아서 같이 놀아주는 친구한테는
건성건성 "너는 사촌 누나 동생들 없지?" 이런 말을 해가면서 이제 조금 있으면 3시 차로 걔들이 오기로 했다고 하면서 산허리를 타고 오는 비포장길을 바라보며 멀리서
흰색 버스가 뿌연 황토를 말아 올리면서 올 거라고 자랑했다. 그 시간도 차마 참지 못하고 진설했던 소꿉놀이 걷어치우고 올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푯말도 하나 없는 정류장까지
겅중겅중 뛰어갔다. 지금은 누구를 만나서 그 사람 만나기 전 설레던 시간을 뚝배기 식어가는 만큼도 유지하기 힘들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한 해 위라고 형이라 부르며 따르는 그 애한테 어디서 들은 거 읽은 거 버무려서 이런저런 거짓말도 많이 하고 귀찮은 일이면 나 대신 갖고 오라고 하고 예쁜 거 있으면 달라고 하고
주머니에 라이터하나 넣고 가서 나무를 주워 강가에 불 해놓고 불을 더 높이 올려보자고 마른풀 꺾어오라고 하고 동그란 돌 주워오면 손난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면서, 내 말을 들으면
꼭 무슨 보상을 해줄 것처럼 굴었다. 그러면 그 애는 형이 하는 말은 다 맞다고 형이 최고라는 듯 말해주었고 나는 학교에서는 하지 못하는 위세를 떨치면서 나름 형노릇을 하려고 점잖아지기도 했었다.
족대를 받치고 돌을 들추며 고기를 잡자고 약속했었다. 십오 년도 더 된 얘기다. 내일 낮에 나는 그 약속을 지키러 간다. 내일 낮에 나는 개울에 있을 것이다.
소싯적에 물고기 잡던 얘기를 해보자.
개울에서 고기를 잡을 때는 거슬러 올라가며 잡는다. 위에서 아래로는 훑어 갈 수가 없다. 물고기는 보통 물을 거슬러 도망치는 경향이 있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흙탕물도 생기고 잔모래도 떠내려가고 무엇보다 사람이 발자국을 내면서 걸으면 그 냄새가 하류로 퍼져 물고기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족대의 좌측 우측 대나무를 잘 꽂아놓고 입을 벌리고 있는 그물이 가라앉은 최전방에 중량물로 달려있는 일정한 납들이 바닥에 잘
가라앉아 있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족대의 양쪽 대나무를 한 손으로 엑스교차시켜 단단히 쥐고는 다른 한 손으로 족대가 감싸고 있는 돌들을 인정사정없이 들춘다. 움직이는 돌들이 물속에서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내면 무언가
재빠르게 그물 쪽으로 휙 하고 달려든 것 같기도 하다. 반도를 들어 확인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돌을 들추는 작업을 멈출 때까지는 족대를 움켜쥔 손을 믿어야 한다. 마침내 족대를 일으키면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하늘로 치켜든 족대의 망속에 푸드덕푸드덕 에스곡선으로 몸부림치는 물고기들이 있다.
탱가리, 꺽지, 버들치, 기름종개들이 망 중간의 중력의 초점에 모여서 몸통을 희번덕이고 있다.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 들추는 것보다는 한 명이 두 손으로 족대를 마크하고 다른 한 명이
돌들을 들추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민물고기 잡기는 2인 1조의 효율이 빛나는 작업 중에 꼭 들어가는 일이다.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동쪽으로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산들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도로의 높이도 높아져 이쪽저쪽 산의 7부 능선 중간을 가르며 달리면 초록의 산봉우리들이 솟았다 밀려나고 그 뒤로 진하고 흐린 산능선들이 첩첩이 펼쳐지면서 멀리 산비탈에 섰는 벤츠 엠블럼 같은 기다란 삼각형들은 끊임없이 돌아가며 전기를 생산하느라 바쁘다.
평창 IC에서 내려 봉평읍으로 접어든다. '메밀꽃 필 무렵'의 시작은 얼마나 가슴 벅찼나. 달빛에 비친 메밀꽃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뭇하였다면 내 가슴도 그만큼 부풀어 흐뭇해지고 있었다. 다 큰 어른들이 모여서 개울에 간다고 이렇게 설렐 일은 아니다만 그 배경엔 지키지 못한 약속과 물에서 자랐던 추억과 함께하면 거칠 것 없었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어서 직장의 걱정과 사업의 부침을 발바닥 아래로 눌러놓고 오늘은 아이처럼 놀고 싶다고 같이 놀자고 부른 자리에 달려가는 심정을 싣고 자동차의 네 바퀴는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촌동생의 목소리도 살짝 들떠있었다. 족대 두 개와 지렛대, 그리고 솥단지를 하나 싣고 왔다고, 개울에 돌을 일으켜 솥을 걸어놓고 닭이나 오리를 삶을 준비를 해왔다고, 거기에 화력이 좋도록 마른 장작을 네 포대나 준비했다고 한다. 홍천군 쪽으로 뚫린 터널로 접어들며 터널 끝의 출구에서 오는 하얀빛으로 가면서 고향의 추억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비탈은 온톤 감자밭, 붉고 푸른 지붕의 집들이 듬성듬성 엎드려 있는 곳. 진초록의 산들은 풍경의 전체 조도를 낮추어 한 낮이 오히려 한 톤 낮은 무채색으로 변하는 곳. 하늘이 좁은 곳. 저기 어디메 산등성이엔 노루도 토끼도 뛰놀며 돌배를 줍고 머루순과 다래를 훑어 먹는 곳.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곳. 여름에도 솜이불을 덮고 자며 겨울에는 아이들의 허리까지 눈이 오는 곳. 그 추운 겨울이 되면 개천은 온통 꽝꽝 얼고 아이들의 손은 트고 뺨은 얼어 죄다 빨갛게 되며 어른들은 옥수수를 뻥 튀겨 광에 넣어놓고 한 겨울을 잠자면서 견뎌내는 곳.
나는 빌딩과 매연과 조명의 숲에서 고향으로 왔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산소 포화도가 높은 연초록의 시원한 공기가 폐에 스며들어온다.
깊은 호흡으로, 익숙한 내음으로 시골의 기운을 느낀다.
"어! 형 왔어!"
조금은 쑥스럽고 멋쩍지만 아주 환한 미소로 동생이 나를 반겨준다. 나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서 마을에서 하천을 진입하는 난간 없는 시멘트 다리 아래에 짐들을 부려놓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천렵을 하기에는 최고의 명당을 잡아 놓았구나!
동생이 야심 차게 준비한 것들 중의 최고는 단연 '솥단지'다.
5월의 하순임에도 을씨년스럽게 추운 날씨다. 물에 들어가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온도에 바람도 세고 게다가 간헐적인 빗방울이 비치다 말다 오락가락이다. 날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였으나 크게 실망스럽진 않았는데 어떤 날씨의 고향도 반가웠기 때문이리라.
"솥부터 걸자 형."
"그래 어디쯤이 좋을까"
다리 옆쪽으로 대략 열댓 걸음 옆쪽으로 솥을 걸 자리를 마련한다. 어른 남자가 일으켜서 굴릴 수 있을 정도의 큰 돌 두 개가 솥의 날개를 걸어 받칠 기둥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기둥을 지탱할 그보다 조금 작은 돌들을 옆으로 배치하고 솥의 뒤쪽을 받치는 부분은 담장을 쌓듯이 만들고 어느 정도 통기가 되면서도 연기가 배출되도록 적당한 틈을 만들어준다. 개울의 비탈에 기둥을 세웠기 때문에 자연히 장작이 들어가는 아랫부분에 제법 높은 공간이 생겼다. 이렇게 되면 장작을 때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궁이에 돌들을 깔아 장작이 들어가기에 적당한 높이를 만들어 주었다.
마침내 최종적으로 솥을 앉혀보니 마치맞게 들어가며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다.
돌과 모래와 살던 시절의 어린 기억이, 어린 감각이 살아난다. 시골을 지킨 동생의 손놀림은 거침없다. 눈대중 몇 번에 뚝딱뚝딱 해치운다. 나는 그 옆에서 서투른 아이처럼 필요할 만한 돌들을 갖다 주면서 큰 돌들 사이에 잔돌을 끼워 넣거나 되똑되똑 움직이는 돌들을 받쳐가면서 충실한 조수 역할을 하였다.
큰 통에 준비해 온 물을 솥에 붓고는 거기에 황기, 표고를 넣고 대파 뿌리를 뚝뚝 잘라 넣고 마지막을 큼지막한 통오리를 넣었다. 그리고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다. 장작은 우선 얇고도 작은 것들을 얼기설기 놓는데 놓을 때 그 간격이 너무 넓거나 너무 좁아도 안된다. 여린 밑불을 받아 제 몸에 옮겨 붙여야 하므로 살아나는 불길을 어느 정도 머금었다 뱉어야 하는 알맞은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장작을 하나 집어 준비해 온 조선낫으로 젓가락 크기만큼 몇 개, 또 그보다 좀 크게 몇 개를 쪼개놓고 박스 귀퉁이를 찢어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쌓아놓은 장작 밑으로 불을 넣고 그 둘 사이의 공간에 얇게 쪼개놓은 불쏘시개를 올려 살살 옮겨 붙는 것을 지켜본다.
빗방울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잘 마른 장작은 비를 이기고 활활 타니까. 솥단지가 우산이 되고 지붕이 되니 비에 젖을 염려가 없다. 과연 숙련된 동생의 손에 지휘된 장작들은 갑자기 볼륨을 높이는 오케스트라처럼 불꽃을 전체로 퍼뜨리며 꺼질 염려 없는 든든한 불길로 피어난다.
자 이제 우리가 물고기를 잡는 동안 이 오리는 아주 푹푹 고아질 것이다. 고기가 얼마나 잡히느냐에 달려있지만 족히 두 시간 이상은 푹푹 삶아질 것이다. 다리 아래서 부르스타로 고기를 구워 먹자고 나온 다른 팀의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연신 우리를 쳐다보면서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면서 한 마디씩 한다.
"와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하네. 제대로 해."
"아니 어디서 왔어요? 요즘에도 이렇게 천렵하는 사람들이 있네!"
심드렁한 척 듣고 있다가 내가 못 참고 먼저 한마디 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이렇게 촌스러운 것을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 무척 센 기운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 우리는 여기서 나고 여기서 컸어요."
이랬더니 저쪽서 두런두런 그럼 그렇지 날씨도 쌀쌀한데 우리도 옆에 곁불이나 좀 놓고 놀면 좋겠다고, 저렇게 솥에 삶아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고, 그런 말들이 들려온다.
하나의 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면 숨 돌릴 틈 없이 다른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왜냐. 그것이 말없는 시골 사람들의 멋이다.
족대와 쇠지렛대를 움켜쥐고 개울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멀쩡히 뽀송한 운동화를 적셔버리면서 물속에 첫 발을 딛는 것은 심리적으로 꺼려진다. 동생의 뒤를 따라 물에 들어가면서 동생의 걸음을 보면서 그 발걸음에는 일종의 기대와 흥분이 존재함을 느낀다.
동생은 안전화를 신고 왔다고 한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왔다. 고기를 잡자고 나선 길에는 어설픈 슬리퍼나 크록스같은 것들은 아예 생각에서 지워야 한다. 물속을 걷다 보면 울퉁불퉁한 돌들을 밟거나 그 틈에 빠지거나 또는 밀어젖힌 돌들에 발등이 찍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슬리퍼 같은 것은 결국 발바닥과 발가락을 헛돌다가 결국 거꾸로 뒤집어져 발등에 거꾸로 붙어있기 십상이기 때문에, 어떨 때 돌들에 물이끼라도 끼어있으면 몇 발짝 들어가다가 질겁을 하면서 다시 물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족대를 들고 돌 들을 받쳤으나 이내 지렛대로 돌을 흔드는 것보다는 물고기가 나올 방향으로 그물이 뜨지 않게 잘 받치고 적당한 시점에 냉큼 족대를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동생과 교대. 돌들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빙산의 일각처럼 땅에 잠겨있는 박힌 돌이 있고 물살이 돌 아래로 슬렁슬렁 지나가는 뜬 돌이 있고 박혀있지도 너무 떠있지도 않아서 고기가 그 안에서 지느러미를 쉬이기 좋은 적당한 돌이 있다. 우리는 손으로 더듬어보고 발로 건드려보면서 적당한 돌들을 찾았다. 동생이 먼저 돌을 중심으로 물살이 흐르는 아랫쪽에 족대를 잘 받치면 나는 지렛대를 돌의 아랫부분에 꽂을 곳을 공략하고 신호와 동시에 지렛대로 돌들을 흔들 준비를 한다. 동생이 내 눈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임으로 큐사인을 준다. 동시에 나는 힘껏 지렛대질을 하는데 그러면 물에서는 흙탕물이 일면서 돌의 아랫부분에 걸려있던 나뭇잎등의 찌꺼기와 함께 뭔가 빠른 속도로 쉭쉭하면서 이쪽저쪽으로 튀는 것들이 보일 때도 있다.
동생이 잽싸게 족대를 든다.
"왔다, 왔다. 꺽지 크다."
오랜만에 보는 꺽지다. 만약 이놈을 확대해 본다면 생김새가 무섭다. 두터운 연갈색 몸통에 군인들이 위장한 것 같은 검푸른 얼룩이 몸 전체에 있고 동그란 유선형의 몸통에 눈이 왕방울처럼 툭 튀어나왔고 등지느러미가 뾰족하니 삐죽삐죽 돋아있다. 게다가 이 놈은 아가미 쪽에 눈처럼 검은 반점이 하나 툭하고 찍혀있다. 내 어릴 적 큰 장마로 마을 앞의 다리가 떠내려갔을 때 새로 다리를 놓느라고 동네 사람들 자갈과 모래를 날라서 콘크리트 다리를 놓는다고 개울에 늘상 연기가 피어오르고 모랫더미 자갈더미 그리고 넓은 판에는 시멘트 비비는 냄새가 나던 시절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어느 하굣길에 마을 아저씨 한 분이 나를 부른다.
"야 일로 와봐라."
그렇게 조용한 마을에 뭐 여럿 중에 누구를 부를 일이 없으니 아저씨가 부르는 게 나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나요?"
이러면서 쭈뼛쭈뼛 다가가니 그 아저씨가
"너 이런 거 못 먹어봤지. 와서 한 입 먹어봐라."
그의 손에는 대가리는 없어지고 지느러미가 거칠게 뜯겨진 초장이 찍혀있는 꺽지 몸통이 들려있었다.
"아 해봐라."
그때까지 나는 회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약간 꺼려지기도 하였지만 등굣길 하굣길에 시금치라고 부르면서 뜯어서 씹다 버리는 풀들도 있었고 찔레순 꺾어먹고 나무에 열매 비슷하게 생긴 거는 다 따먹고 다니던 시절이라 먹을 것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에 나의 입은 시키는 대로 크게 벌어질 수밖에.
초장의 시달큼한 맛이 먼저 느껴지고 그 이후 차츰차츰 씹어가니 꺽지의 쫄깃한 육질과 초장이 버무려져 날것이 주는 생생한 감각이 고소함으로 변해간다. 내 생애 최초의 회, 익히지 않은 다른 물고기의 살을 처음으로 먹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꺽지다. 옛 동무를 만난 듯이 반갑다. 나는 족대 아래로 그물을 움켜 동생이 허리에 찬 비료포대로 만든 고기 통으로 꺽지를 집어넣었다.
차례로 다른 돌을 들 일으킨다. 무리 지어 다니는, 옆구리에 검은 줄이 주욱 그어져 있는 예쁘게 생긴 날렵한 돌고기들이 족대에 들어와 푸득거린다.
나와 동생 옆에는 나의 아들이 따른다. 근래에 키가 부쩍 커서 제 아비와 아재보다 비죽이 큰 놈이 고기잡이 옆 한쪽에 어정어정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서성대고 있다. 족대에 고기가 들었다고 하면 와서 같이 들여다보며 와와 소리를 내면서 신기해한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집을 나와 학교에 갔다가 다시 집에 올 때까지 마음만 먹으면 흙을 한 번도 밟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밀봉된 도시의 한 구석을 쇠 지렛대로 꽂아 들썩이고 싶었던 것이다.
적당한 돌을 찾는다. 보다 보면 왠지 알맞고 예쁜 돌이 보이고 다섯 번에 네 번 정도는 빈 그물을 들어 올리는 슬슬 지쳐가는 작업 중에 다시 의지를 솟게 만드는 모양의 돌이다. 족대를 받치고 지렛대를 움직이는데 아래로 무게를 실으며 돌을 들어 올리려니 뭔가 각이 안 나온다. 이미 돌을 건드려 놓았으니 고기들이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전에 개울 바닥을 한 번 다시 찍으며 이번엔 지렛대를 세워서 앞쪽으로 밀어젖혀버린다. 돌이 움직이고 물아래 무슨 그림자들이 흩어지는 착시와 비슷한 움직임에 동생이 세워드는 족대 그물이 궁금해진다.
쏴아 하는 물이 빠지는 소리와 더불어 이 번엔 좀 다채로운 놈들이 잡혔다.
이쁘장한 돌고기 무리 속에 붉은 빛이 도는 누런 탱가리와 검은 듯 얼룩덜룩한 빠가사리가 동시에 주인공이 되었다. 탱가리는 탱수라고도 불렀는데 어떤 것이 표준어인지 모르겠고 사실 이 두 명칭도 표준어가 아닐 수 있지만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빠가사리는 어릴 때 이 마을에서는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세월이 가는 동안에 어종이 다양해졌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탱가리와 빠가사리의 공통점은 날개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에 무척 강하고 뾰족한 침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잡을 때는 움켜잡듯이 잡으면 그 찔림의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데 단순히 어디에 찔려서 아픈 것보다 아마도 일정 부분 독성분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될 정도로 찔린 고통이 오래간다. 그래서 음식으로 조리하기 전에 고기를 손질할 때도 탱가리와 빠가사리는 내장을 훑어낼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골손님처럼 들망에 드는 든든한 미꾸리와 종개류가 정겹다. 미끌미끌하여 통에 담을 때 조심해야 하며 이런 놈들은 생명력이 끈질겨 고기잡이 후에 손질을 위해 통에서 쏟아놓을 때까지 살아있을 때가 많다.
피라미처럼 길쭉한 유선형을 그리는 예쁜 물고기들은 잡히면 보통 금방금방 죽어버리는데 반면에 미꾸리, 탱가리, 빠가사리등의 고기들은 그 생명력이 강하다. 생명력이 강한 놈들이 씹는 맛도 있고 그 본연의 맛도 더 좋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급작스런 변화에 제 성질을 못 이겨 죽는 놈들보다 버티는 놈들이 맛있다는 것. 그냥 잠깐잠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두 시간이 되는 시간이 이렇게 고기 잡는 재미에 어찌 가는지 모르던 때, 예년의 5월 하순 같지 않게 날씨가 차서 물속에 담겨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점점 몸이 떨려오면서 춥다. 슬몃 사촌동생을 보니 이 친구는 말을 안 하면 앞으로도 서너 시간은 더 잡을 수 있는 눈치다.
"솥에 불도 더 넣어야 하고 고기도 이 정도면 여럿이 매운탕 두 번 정도는 끓일 거 같은데 돌 몇 개 더 뒤집고 고만 돌아갈까?"
동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더분하다.
"응 그래 형."
"이 돌 한번 흔들어보자."
돌 하나를 다시 정하고 살금살금 족대를 받치고 다시 지렛대질을 장전하고 처음으로 돌을 일으키는데 지금껏 보던 그림자보다 훨씬 큰 움직임이 족대 쪽으로 꽂힌다.
"들어갔다. 들어갔어! 큰 거 같은데!"
나는 소리치면서 몇 차례 더 돌을 들썩였고 동생이 들어 올리는 족대를 조바심을 내며 주목하였다. 안에서는 유난히 푸득푸득 하는 소리가 세차다.
어떤 놈이 잡혔을까 먼저 그물을 들여다보는 동생의 눈빛에 망설임과 아쉬움이 스친다.
"왜?"
"형, 어름치야......"
어른 한 뼘 반쯤 되는 큼직한 어름치 두 마리가 족대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어름치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천연기념물이다. 열목어와 더불어 포획이 금지된 물고기이다.
내 고향은 내린천의 발원지. 물이 맑고 깨끗하고 차다. 이런 조건에서만 살아가는 물고기들이 있다.
어름치 두 마리를 다시 물에 방생하며 십 년 이상을 별러온 고기잡이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솥을 걸어놓은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