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
글꼴을 본다. 그러니까, 글들이 모여있는 생김새를 관찰해 보고, 그것들의 이야기의 형태와, 톤을 본다. 내가 쓴 글들의 냄새를 맡아본다. 운동을 할 때에 각종 정보를 통해 얻을 때엔, 나와 닮은 체형의 사람이 하는 말에 좀 더 집중해서 보는 편이다. 팔이 옆구리에서 시작해서 등이나 귓가를 스칠 때의 모습들이던가, 힘이 가해지는 포인트, 각 관절의 가동범위들의 이해관계들을 내 몸 닮은 사람의 움직임이 좀 더 정확하고 올바른 길을 알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 힘든 경험의 이야기가 반갑게 느껴지고 아픔이 되살아나는 건, 겪어서이다, 그것을.
나의 글의 형체를 보아하니, 부족함이 빼곡히 주석처럼 달려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빨간 색연필이 그어지고, 읽히지 않은 책장처럼 뻣뻣하고 처음처럼 서툴다. 더 나아가 내가 지닌 각종 증후군을 발견했다. 그것의 의학적인 이름을 붙일 순 없지만, 삐걱거리는 패턴이 있음을 본다. 순서가 맞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마음대로 오가는 논리에 맞지 않는 글과, 연계성 없이 뻗는 어색한 주먹질을 본다. 정제되지 않은 것이 자연과 섞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아쉬움을 열심히 모으는 중이라 여겨본다.
글버릇이란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버릇들이 생겼다. 음식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듯, 사고의 길은 결국 버릇의 흔적이 만든 길로 이어진다. 비 오는 날 우산의 색상을 쳐다보다가도, 나는 그렇게 흘러갔고, 자동차의 라이트 모양을 재밌게 보다가도 그 길로 향한다. 경제에 대한 글을 읽다가도 혼자 그러한 생각에 빠지게 되고, 유언의 엽서에 붙어있는 우표에 닿았던 혀끝의 침처럼, 그렇게 끈적이며 도무지 떼어지지 않는다. 뚜렷하지 않은 그런 리듬으로, 희미함의 반복이, 뚜렷한 희미함의 도장을 새겨버렸다. 이런 것이 시그니처가 되면, 나는 누구에게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전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어떻게 할 수가 있을지에 대한 , 철저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본다. 바로 그 길로 이어지는 사거리 앞에서.
짧은 문장 쓰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 1000글자이내의 글을 쓰고 있고, 그것의 효과를 얻고 있다. 달리기를 할 때 나에게 맞는 자세를 테스트해보기 위한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있다. 움직임을 최대한 오버해서 그것의 장단점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렇게 내게 적절한 범위와 움직임을 설정할 수가 있다. 1000글자 이내의 글 과정이 일주일을 남겨둔 상황이다. 첫째 주는 재미있었고, 두 번째 주부터는 어려움을 느꼈다. 어려움의 시작은 마무리였다. 하고 싶은 말을 자르는 과정이 재밌었다. 뒤에서부터 잘라내는 1000글자이내로만 맞추려는 어리석은 행동이, 점점 필요 없는 두 개의 단어를 하나의 단어로 합치기를 시작했고, 볼만했지만,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없애는 일도 생겼으며, 황태 꼬리 자르듯, 책임감 없고 귀찮음의 글도 만들었다. 글줄이기를 퇴고로 생각했던 치명적인 실수를 알았다. 끝부터가 아닌, 첫 글의 중요함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인지의 경험으로 변화의 기대는 없다. 매번 글버릇으로 인해, 다시 인지하고, 아주 조금 한두 글자가 깎이는 것에 의미를 둔다. 나이를 먹고, 말을 새로 배우는 것의 어려움이다. 내가 살았던 삶을 되새기고, 필요 없는 추억을 버릴 때, 잊고 싶은 것을 마주할 때, 즐거운 고통으로 기억될 글이 한 문장 나올 거라 고대한다. 즐겁고도 기이하다. 글을 쓴다는 건.
꾸준함이 주는 선물은 기대를 멈춘 후에 찾아오곤 했다. 매일 열심히 수치를 가늠하는 일이 소용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진 꾸준함이야 말로, 우리의 일상에서 묵묵함과 같은 무게의 기본 소양이다. 100년의 삶을 산 남자가 하루동안에 하는 이야기와 50년을 산 사람의 일주일 이야기가 있다면, 당신들은 누구의 이야기를 택할 것인가.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더 살고 싶은 사람과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생을 마감하려는 자가 있다면 당신은 누구의 이야기를 택할 것인가. 스테이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이와 빈소주병을 핥으며 골목에 누운 자가 있다면 당신의 누구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 과정 속의 글과, 우연히 빛을 받은 글 사이에 수많은 글들이 있다. 지금도 책은 펼쳐지고, 덮인다. 글을 쓰는 자의 의자가 삐걱대고, 창밖엔 삶을 즐기는 자의 땀냄새가 짙다. 글을 읽지 않아도 쓰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삶이 계속되는 한 글은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난 남기고 싶은 마음을 발견했다. 글 안에.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