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말을 하면서 뛰는 건 힘든 일이다. 리듬을 놓치고, 호흡에 실패하면 혀를 깨문다. 튀어나온 돌을 밟거나 피하려다가 혀가 잘린다. 꽉 다물지 못한 하관이 느슨해지고, 결국 늘어났다. 언제부터였을까. 글이 손끝에서 펼쳐지는 짓을 해오면서, 삶의 한구석에서 보기 싫고, 무서워하던 개구리 한 마리를 조금 가까이 보겠노라 허락한다. 개구리 한 마리가 구석에서 끈적끈적 바닥에 들러붙어 있다. 쳐다보는 시선이 기괴하다. 개구리의 눈꺼풀은 감는다는 표현보다, 열리며 닫힌다. 어디를 쳐다볼지 두려운, 나를 쳐다보며 확 뛰어들 것 같은 두려움. 접혀있는 긴 다리가 스프링처럼 튕겨지며, 소름의 방아쇠 위에 힘이 얹힌다. 난, 두려움과 불안으로 글들을 적어내려 갔다. 글을 멈추면 달려들 개구리를 마주하고, 개구리의 시선을 피해 오들오들 떨며, 불안을 증폭시켰다. 상상도 하기 싫은 공기폭탄을 머금은 개구리의 입안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터트릴까. 가둘까. 죽일까. 타일러 볼까.
불러놓고 애가 타는 마음.
글 간의 간격이 길어졌다. 글을 하나 쓰고 난 후의 휴식시간에 키보드 위엔, 다리를 꼰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길어진 간격 사이, 하루의 시간에 쓸모없거나, 찾아 헤매었던 자음과 모음들이 개구리의 혀에 달라붙는 걸 본다. 이제 난, 목표를 놓치지 않는 저 개구리혀를 잡아채려 웅크리고 있다. 눈 꽉 감고, 만져보려 한다. 아픔보다 싫은 개구리 껍질을. 혀를. 기괴한 질겅임을 상상처럼 목구멍 안에 걸려 팔딱거릴 간격의 팔딱임을 맛본다.
5월 1일부터 매일 1000자의 글을 쓴다. 돈 내고 하는 미션이다. 그래서 글을 이곳 브런치에 옮기지 않고 있다. 매일 아침 8시에 문자가 온다. 보통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다. 하루를 단어와 마주하며 시작한다. 양치를 하며 우물거려 본다. 쉽게 느껴지는 글제에 칫솔의 몸짓이 가볍다. 막막한 날의 시작에 세수시간이 길어진다.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에 변기에서 파묻힘을 맛본다. 매일 글을 쓰는 것 같은데, 누군가 글을 쫙 그어버리고, 이렇게는 어떨까요 라는 지적을 해주길 기대했다. 돈을 쓴 마음을 헤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일까. 천만의 말씀처럼 나의 글만 굳은 채 쌓인다. 글의 길이는 공백포함 1000글자로 제한이 되는데, 그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하고 싶은 말을 쓰다가 버릇처럼 글자 수 세기를 체크해 본다. 생각보다 모자라다. 나의 말은, 전쟁의 시작을 시작을 알리는 급박한 상황에 맞지 않을 만큼, 장황했다. 곧 비행기를 타고 떠날 여인에게 고백할 만큼 찐하고 간결하지 못했다. 글들을 잘라본다. 중간의 문장들을 통째로 꺼내도 본다. 1000글자는 어렵지 않고, 1000글자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재밌다. 심각하게 부족함을 알려주는 큐브 안의 훈련이다. 1000글자 이내로 쓰려면,
매우 뜨거운 심장은, 그저 뜨거운 심장이 돼야 할 때가 있고, 누군가 건네준 사람의 손때가 가득한 지폐는 바로 공장에서 나온 지폐가 되어야 했다. 빳빳하고 심심했다. 심심함을 채우고 싶은 열망이 1000글자 밖으로 삐죽거렸다. 더 말하고 싶고, 더 그리고 싶은 마음을 바라보며, 칼을 간다. 처음의 칼질은 너무 서툴렀다. 잘못 그은 글자가 다른 글자들을 데리고 같이 부러지듯이 사라진다. 다친 글자의 말들이 웅얼거리며 방해하고, 질투했다. 이것들은 나의 말하기와 이어졌다. 오랜 세월 소리를 내는 기관들의 촌스러움과 잘못됨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혼자 재밌어했고, 팔리지 않는 인형을 만드는 외로운 공장장이었다. 이 짓의 끝은 5월 말에 끝난다. 나는 파만 썰고, 양파만 깔 생각이다. 마늘만 다져야 한다. 물의 양에 대해 실험을 한다. 손 끝에 거머쥔 몇 알의 고춧가루를 세어본다. 미원의 맛을 본다. 더 나아가 그것을 잉태한 어머님의 부푼 배 같은, 땅을 매만져본다.
고작 한 달의 시간으로 아카데미 졸업을 꿈꾸는 이 우매함 속에, 행운처럼 터질 말의 재구성을 꿈꾼다. 가벼운 무게의 책을 받게 될 텐데, 그것을 만져보며, 하나의 마침표를 찍고 다른 문장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음.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