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브런치 작가 제도가 아니었어도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막 글쓰기를 시작할 무렵엔 '네'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요' 쪽에 가깝다는 걸 안다. 인정 욕구가 글쓰기의 숨은 동력이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의 대리 만족을 바랐을 수도 있다. 폼나 보이는 출간 작가를 목표로 삼은 것도 의식 밑에 숨어있던 인정 욕구의 자연스러운 발로(發露)였다.
그다지 간절하지도 않고 제대로 글을 쓰지도 않던 사람이 글 몇 개 쓴다고 갑자기 잘 쓰게 될리는 만무하다. 지칠밖에. 충만하다고 생각했던 의욕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흐지부지. 브런치 글 발행 간격이 하루에서 몇 주로 듬성해졌다.
비록 글은 가뭄에 콩 나듯 간헐적으로 썼지만 글쓰기에 관련된 책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치 못했다.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각오 같은 건 없었고 무협지의 무림비급처럼 신비로운 실력 향상을 바랐던 것 같긴 하다. 특히 현역 작가의 인터뷰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프로들의 엄살이겠지만 글쓰기의 어려움, 첫 문장의 막막함, 본인 글에 대한 불만, 재능의 의심 같은 말을 토로하는 대목에선, 절대 동료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 혼자 괜한 동료 의식 같은 걸 느끼고 그랬다. 그때 내게 글쓰기는 애인과 친구 사이 어디쯤의 뜨뜻미지근한 관계 같았다. 끌어안지도 밀어내지도 못하는 미련한 미련(未練).
어떤 경로로 거기에 도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만취한 밤에 휩쓸려 다니다가 과정은 삭제된 채 홀연히 어떤 술집에 앉아 술잔을 부딪히던 장면만 기억나는 것처럼, 나는 '읽다 익다'란 동네 서점 블로그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어느 초겨울 오후였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여서 글쓰기 클래스를 온라인으로 연다는 공지를 보고 있었다. 휴일과 공휴일 빼고 매일 3줄 이상 쓰라는 규칙과 한 달에 이만 원이라는 요금 안내였다. 뭘 배우는 것도 없는데 왜 돈을 내기로 결심했는지 모르겠다. 온순한 초등학생처럼 작성하라는 가입 신청서 써 보내고 지정한 계좌로 송금을 했다. 암만 큰 금액이 아니라도 사기당하면 바보 된 기분에 마음 엄청 상할 텐데, 어쩌려고 돈부터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런 북카페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도 않고 돈을 보내다니.
그냥, 그렇게, 각별한 결심의 순간 따위도 없이, 어느 한적한 오후에 인터넷 서핑하다가 갑자기 나는 다시 뭐라도 매일 쓰는 사람이 돼버렸다. 브런치 작가 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서너 달 동안 책방에서 만든 카카오 단톡방에 매일 글을 올렸다. 3줄 이상이면 된다는데 나는 브런치에 제법 긴 글을 쓰고 링크 공유로 인증했다. 정해진 주제는 없었다. 책 읽다 만난 문장에 생각을 보태 쓰고, 차를 몰고 오가는 출장길 잡생각을 쓰고, 친구와 술자리 얘기를 썼다. 무엇에 홀린 듯 돈을 내고 마감을 사고서야 나는 겨우 다시 글 쓰는 사람이 됐다. 100일 정도 그 상태로 글을 썼다. 쓰니 또 써진다. 심지어 재미와 보람도 조금씩 생겼다. 살살 시건방이 자라났다.
그리고 봄이 오던 무렵, 나는 미친놈처럼 제 주제도 모르는 거창한 결심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