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복판에서 건네받은 작은 구원들
모든 삶에는 위로가 필요하다.
힘들지 않은 삶은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청년도, 장년도, 노인도 저마다의 무게를 안고 하루를 건넌다.
우리는 살아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를 만들어낸다.
첫 번째 위로는 '나'에게서 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단계이다. 그렇게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며 오늘을 버텨내는 힘. 아무도 몰라도 내 마음이 나를 붙잡아 주게 하는 위로의 방식이다.
두 번째 위로는 '비교'에서 온다.
비교라는 말은 어딘가불편하게 들리지만, 인간이기에 숨구멍이 필요해지는 순간에는 뜻밖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저 사람보다는 괜찮아.'라는 생각.
조금은 못된 마음이지만, 나보다 더 불쌍하고 짠한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 하루를 견뎌내는 용기를 다시 주워 담는다. 그렇게라도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위로라 부른다.
세 번째 위로는 '찾아가는 위로'다.
마치 찾아가는 이동식 도서관처럼, 오늘의 나에게 맞는 위로를 직접 골라 나서는 단계다.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나를 웃게 하는 물건을 사고, 짧은 여행을 떠나며,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되찾는 선택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위로가 잘 먹히지 않는 날이 온다. 아무리 애써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여기까지가 한계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날.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위로란 어느 한 가지 방법이
나를 구해내는 일이 아니라,
삶 전체가 천천히 나를 끌어안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샤워,
출근길에 마신 커피 한 잔,
창밖으로 스친 빛 한 조각,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의 설렘,
카페에서 문득, 좋아하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의 기쁨.
이처럼 위로는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예전에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에 떨어지고, 앞길이 막막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만히 방에 있으면 마음이 더 가라앉을 것 같아 괜히 밖으로 나섰다. 그날 나는 위로를 받겠다는 생각도 없이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젖은 바닥 위를 바삐 오가는 손과 발,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먼저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 그곳에서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나보다 더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조금 가볍게 했다.
'아, 나만 멈춰 있는 건 아니구나.'
'오늘을 버티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위로는 다정한 말이나 손길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복판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건네받는 순간으로도 다가온다는 것을.
그 사소한 순간들이 조용히 다음 날의 나를 일으키는 천연 자양강장제가 된다.
그래서 위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단 한 모금의 위로라도 건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당신의 하루가 어제보다 1밀리미터만큼 더 가벼워지기를.
출근길 위로 한 스푼은 여기서 잠시 멈춘다.
하지만 당신의 하루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조용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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