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에 백번 찬성한다. 왜냐하면 내가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똥똥했었다. 엄지손가락 따봉 모양으로 살짝 힘주면 관절 부분이 배 모양 마냥 불룩 튀어나오는데, 내 몸매를 형상화한 줄 알았다.
맞다. 짧고 배불뚝이 그게 바로 나였다. 엄지 손가락을 닮은 나의 몸매는 무슨 옷을 걸치든 소위 태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30대 초반까지 비만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 일이 나에게 다가왔다.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가 내 위를 망쳐놓은 것이다.
약을 복용하면서 의사의 권고대로 식단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먹지 말라는 건 철저하게 먹지 않았다. 매운 것, 짠 것, 밀가루 들어간 것, 기름진 것 등등
이때 깨달았다. 위에 적혀 있는 것을 빼면 이 땅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는 것을.
세상 먹을 것이 없으니 당연히 식사량이 줄었다. 거기에 소화를 위해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어 먹기 시작했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어느 날 회사에 옷을 무료 나눔 하는 바자회 행사가 열렸다.
마지막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바지 하나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성용 '스키니진'(몸에 딱 붙는 슬림핏의 청바지)이었다.
맞다. 당시 가요계를 씹어먹던 아이돌 소녀시대가 "지지지지 베베베 베베베" 하며 무대를 휩쓸고 다닐 때 입었던 바로, 그 바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엄청 핫한 바지였다.
워낙 타이트했던 이 옷을 감히 회사 내 남녀노소 어느 누구도 성공적으로 착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사람들 무리틈에서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손에 바지를 들고 있던 담당자가 갑자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씩 웃는 것이 아닌가?
-천세곡 대리님 한 번 입어보시는 거 어때요?
-롸??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 느낌의 상황이거나, 다소 충격적인 순간을 경험했을 때 사용하는 감탄사 느낌의 신조어 - 나무위키, 물론 당시에는 이 말이 없었던 시절이다.)
그렇다. 이건 분명 나를 놀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남자인데...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아니, 왜 기대하는 눈빛인 건데??
나는 용기를 내어 바지를 받아 들었다.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입어보기 시작했다.
-쏙~쏙~
-응???? 뭐지?
당연히 종아리 정도만 넣어도 심한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추측과는 달리 바지는 너무 쉽게 내게 입혀졌다. 단추까지 아주 잘 잠겼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위풍당당하게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나갔다. 마치, 딱 맞는 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그래도 설마설마했었던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가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버렸고, 제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담당자 역시 허탈한 표정으로 그냥 입고 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식단조절을 철저히 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중이 확 줄었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아이돌급 몸무게에 해당될 정도로.
그날만큼은 나는 천세곡이 아닌 천세렐라였으며, 소녀시대였다.
내 몸은 이제 더 이상 엄지 손가락이 아닌 새끼손가락이었다. 기럭지도 좀 늘어나서 검지 정도만 돼도 좋았겠지만, 이번 생에서는 불가능하니 패스.
어쨌든, 그날 이후 전에 없던 옷 입는 재미가 생겼다. 내 경험상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가 맞다.
*사진출처: Photo by Laura Chouett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