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세곡 Aug 03. 2023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임을 증명하려고 스키니진을 입었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에 백번 찬성한다. 왜냐하면 내가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똥똥했었다. 엄지손가락 따봉 모양으로 살짝 힘주면 관절 부분이 배 모양 마냥 불룩 튀어나오는데, 내 몸매를 형상화한 줄 알았다. 


  맞다. 짧고 배불뚝이 그게 바로 나였다. 엄지 손가락을 닮은 나의 몸매는 무슨 옷을 걸치든 소위 태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30대 초반까지 비만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 일이 나에게 다가왔다.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가 내 위를 망쳐놓은 것이다. 


  약을 복용하면서 의사의 권고대로 식단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먹지 말라는 건 철저하게 먹지 않았다. 매운 것, 짠 것, 밀가루 들어간 것, 기름진 것 등등


  이때 깨달았다. 위에 적혀 있는 것을 빼면 이 땅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는 것을. 


  세상 먹을 것이 없으니 당연히 식사량이 줄었다. 거기에 소화를 위해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어 먹기 시작했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어느 날 회사에 옷을 무료 나눔 하는 바자회 행사가 열렸다. 


  마지막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바지 하나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성용 '스키니진'(몸에 딱 붙는 슬림핏의 청바지)이었다. 


  맞다. 당시 가요계를 씹어먹던 아이돌 소녀시대가 "지지지지 베베베 베베베" 하며 무대를 휩쓸고 다닐 때 입었던 바로, 그 바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엄청 핫한 바지였다.


  워낙 타이트했던 이 옷을 감히 회사 내 남녀노소 어느 누구도 성공적으로 착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사람들 무리틈에서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손에 바지를 들고 있던 담당자가 갑자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씩 웃는 것이 아닌가?



  -천세곡 대리님 한 번 입어보시는 거 어때요?


  -롸??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 느낌의 상황이거나, 다소 충격적인 순간을 경험했을 때 사용하는 감탄사 느낌의 신조어 - 나무위키, 물론 당시에는 이 말이 없었던 시절이다.)



  그렇다. 이건 분명 나를 놀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남자인데...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아니, 왜 기대하는 눈빛인 건데??



  나는 용기를 내어 바지를 받아 들었다.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입어보기 시작했다.



 -쏙~쏙~



 -응???? 뭐지?


  당연히 종아리 정도만 넣어도 심한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추측과는 달리 바지는 너무 쉽게 내게 입혀졌다. 단추까지 아주 잘 잠겼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위풍당당하게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나갔다. 마치, 딱 맞는 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그래도 설마설마했었던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가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버렸고, 제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담당자 역시 허탈한 표정으로 그냥 입고 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식단조절을 철저히 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중이 확 줄었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아이돌급 몸무게에 해당될 정도로.


  그날만큼은 나는 천세곡이 아닌 천세렐라였으며, 소녀시대였다.


  내 몸은 이제 더 이상 엄지 손가락이 아닌 새끼손가락이었다. 기럭지도 좀 늘어나서 검지 정도만 돼도 좋았겠지만, 이번 생에서는 불가능하니 패스.


  어쨌든, 그날 이후 전에 없던 옷 입는 재미가 생겼다. 내 경험상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가 맞다. 




*사진출처: Photo by Laura Chouette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