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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Sep 20. 2023

내가 아이돌 노래를 습득하는 방법

100일의 글쓰기 - 15번째

나의 음악 플레이 리스트는 대략 2,000년 후반에 머물러 있다. 그 뒤로도 음악을 아예 안 들은 것은 아니지만, 노래를 꿰찰 정도로 열심히 듣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의 최신 가요는 꽤 오랫동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중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면 대충 흘려들었을 뿐, 품 안에 소중히 모아 듣지는 않았다. 가요계의 트렌드를 한번 놓치고 나니 거침없이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신인 가수들의 등장과 새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던 만큼, 내가 모르는 가수와 음악들 역시 엄청나게 쌓여만 갔다.

 

  그중 아주 취약한 부분은 당연 아이돌 음악이었다. 오랜만에 음악 어플에서 최신 음악차트를 재생했다. 아이돌이 강세다 보니 죄다 걸그룹, 보이그룹 노래였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모두 생전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도통 아는 노래가 없으니 최신 음악을 더욱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 그래도 BTS는 알지!


  각성의 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올해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인 조카가 놀러 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조카에게 힙한 이미지로 점수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럴 땐, K-POP 만 한 게 없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BTS를 좋아하는데 너도 좋아하지?라고 물었다.


  조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님, 지금 그 말 진심이세요?”라는 눈빛이다. 잠깐의 정적 후, 조카는 언제 적 BTS냐며 웃었고, 자기는 뉴진스를 좋아한고 말해 주었다. 뉴진스라. 그래 이름은 들어본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뉴진스를 검색해 듣기 시작했다. 오, 뭐지? 엄청 청량했다. 그런데 가사가 도무지 귀에 들리지가 않았다. 아, 어렸을 때, 서태지 노래 들으면 어른들이 도대체 뭔 말이지 모르겠다고 하셨던 게 떠올랐다. 젠장, 영락없이 아재 인증이다.


  그러다 전지전능한 유튜브 알고리즘께서 내게 무척 은혜로운 영상 하나를 추천해주셨으니. 그건 바로, 가수 윤도현 님 버전의 ‘디토’였다. 윤도현 님이 기타로 편곡해 뉴진스의 디토를 라디오 방송에서 부른 영상이었다. 끌리듯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형 뭐지? 자기 노래도 아니고, 그것도 걸그룹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른다고? 노래가 미친 듯이 좋았다. 심지어 가사도 다 들렸다. 게다가 여고생으로 착각할만한 헤어스타일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뉴진스의 디토에 어쿠스틱 한 편곡이 이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다. 마치 평행우주 저편 어딘가에 뉴진스가 아재 락가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더 검색해 보니 도현 형님은 아이돌 노래를 그것도 걸그룹 노래를 꽤 많이 커버하고 있었다. 이 형은 상습범이었다.


  아무튼, 나는 윤도현 형님 덕분에 훨씬 편하게 아이돌 노래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형님이 커버송으로 불러주는 만큼 나도 걸그룹 노래를 커버할 자신이 생겼다. 앞으로 이 형만 믿고 갈 거다. 그나저나 도현 형님, 디토는 이제 유행이 너무 지났는데 ‘ETA’ 좀 어떻게 안 될까?




*사진출처: 유튜브 채널 윤도현 Yoon Do Hyun 캡쳐



https://youtu.be/zL0vz_SWuZg?si=_k83is0qnaml1y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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