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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Sep 25. 2023

넌 나에게 글감을 줬어.

100일의 글쓰기 - 20번째

늦은 밤, 글을 쓰려고 거실 식탁에 앉았다. 벌써부터 월요병이 스멀스멀 올라오는지 영 몰입이 안 된다. 집중력이 저하되고 컨디션도 별로다.    


  애꿎은 노트북만 노려보길 벌써 30분. 이때 귓가를 맴돌며 소름 끼치게 만드는 그놈 목소리.    


  왜~애~애~애~앵.

  왜~애~애~애~앵.    


  에~이 설마? 지금 이 날씨에 모기? 하지만, 분명 모기 소리였다.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모두 닫았다. 녀석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챈 이상, 너와 나 끝을 봐야 한다.    


  아무리 레이더를 돌려도 놈이 보이 지를 않았다. 문득, 어디선가 봤던 게 떠올랐다. 모기는 빛에 약하기 때문에 불을 껐다가 갑자기 켜면 벽에 붙는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클럽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거실 불을 깜박이길 여러 번. 영리한 놈은 그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 어쩌란 말이냐. 나는 얼른 글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무한정 놈과 대치국면을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놈의 사살을 포기한다면 오늘 밤 잠은 다 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글부터 얼른 쓰고, 다시 잡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모기가 언제 다시 출현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감을 집중하다 보니 글은 더더욱 써지지 않았다.    


  순간, 그놈 목소리가 또 들렸다. 왜 하필 지금 나타나고 지랄이야.


  왜~애~애~애~애!!!

  왜~애~애~애~애!!!


  나도 모기처럼 울부짖었다.    


  바로 그때, 오른쪽 무릎 바깥쪽 관절 부근에서 미세한 간지러움이 감지됐다. 본능적으로 나는 온몸의 모든 기를 그곳에 집중해 힘을 꽉 주었다. 쥐가 나기 일보 직전까지.    


  살짝 고개를 숙여 현장을 자세히 보았다. 왕모기 한 마리가 다리에 빨대를 꽂고 있다. 회사에서도 빨대 꽂혀서 일주일 내내 기를 빨렸는데, 네 놈까지 날 무시하는구나.    


  내가 힘을 주고 있으니 녀석은 도망가지 못했다. 그놈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던 나는 잠시 숨까지 죽이고 오른손으로 힘껏 내리쳤다. 흥건한 피가 무릎과 손바닥에 묻어났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기는 내 피를 빼앗아간 대신 미치도록 간지러운 부작용과 함께 글감 하나를 주고 장렬히 전사했다.    


  가뜩이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가 아팠는데, 피까지 뽑히니 현기증까지 난다. 오늘 출혈이 크다 보니 글이 영 더 써지지가 않는다.  


  라고, 마치려고 했는데 또 한 마리 잡았다. 이미 몇 군데 물린 뒤였다. 네 놈이 내 피를 먹었으니, 나도 오늘은 네 놈 이야기로 글쓰기를 좀 날로 먹어야겠다.    


  이상 처서가 한참 지났음에도 살아남은 모기를 쳐서 죽인 자의 궤변이었다.




*사진출처: Photo by Shubham Dhag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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