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치를 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딱히 악랄한 빌런도 보이지 않고, 희망적인 분위기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2화까지 보고 나서 너무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단정 짓고 말았다.
드라마 '우영우'는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소재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법률적인 문제'에 대해 꽤나 정확한 고증으로 전개해 나간다. 더구나 실제로 미국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존재한다는 기사도 접할 수 있었다. 동화가 아닌 현실 기반의 드라마인 것이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처음의 판단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인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의 하드 캐리급 활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를 향한 차별적인 시선들은 남아있었다. 법이 있음에도 약자들이 보호받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작가가 아주 섬세하고 따뜻하게 대사를 만들어준 덕분에 그 현실의 차가움이 덜 느껴질 뿐이다.
특별히, 지난주 방영분이었던 7, 8화 '소덕동 이야기'편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선해 보이든 대놓고 악해 보이든, 키워준 부모든 버린 부모든, 친절한 동료든 적대적인 동료든, '사람은 모두 정치적이다.'라는 주제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익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인간'임을 보여준다.
소덕동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건설 계획으로 생긴 행정소송에서 우영우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 한바다와 라이벌인 최강의 법무법인 태산이 한판 붙게 된다. 여느 드라마 같았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함과 감성을 앞세운 한바다가 소덕동 주민들의 간절함을 등에 업고 극적으로 재판에서 이기는 그림으로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감성을 앞세운 한바다는 오히려 상대편 태산에 크게 한방 먹게 된다.
자신들에게 더 많은 보상금을 줄 것처럼 말하는 태산 쪽으로 주민들 대다수의 마음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감성적으로 접근한 한바다와 달리 태산은 철저히 정치적으로 움직였다. 세상 순수해 보였지만, 주민들은 보상금을 더 받고자 하는 마음이 내심 강했는데 태산이 이를 간파한 것이다.
이익 앞에 장사 없다. 앞장서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재판에 발 벗고 나선 이장님도 가장 순수한 의도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치적인 행동을 충실히 한 것뿐이었다. 그가 좇는 이익이 돈이 아니었을 뿐, 그 역시 자신이 얻고 싶은 것 이를테면 마을 고유의 모습을 지켜내어 자부심과 안정감을 얻기 위해 행동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을을 지키고자 한 이장님의 의도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폄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판사의 말처럼 그 역시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이 얻고 싶은 일종의 이익을 좇느라 다른 주민들의 필요에 귀 기울지 못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장님은 이미 가진 재산이 많았기에 다른 주민들처럼 돈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주민들의 형편을 헤아리지 못했다.
결국, 주민들 대다수의 의견이 도로 건설을 찬성하는 쪽으로 모이게 된다. 패색이 짙을 무렵, 늘 그렇듯 고래가 등장하고 우영우는 묘수를 찾아낸다. 판사가 소덕동 현장 방문 때 그 마을의 개발과 관련된 회사의 우산(그냥 고래가 아닌, 남방큰돌고래 로고가 있는)을 가지고 왔었다는 것을 이유로 재판 기피 신청을 해버린 것이다. 그냥 우연히 얻게 된 우산일 수도 있는데 판사 입장에서는 꽤나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다.
원고나 피고가 아닌 판사가 제일 억울한 재판이라니, 역시 우영우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영우가 생각해 낸 이 묘수 또한 굉장히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개발을 원했던 주민들과 마을을 지키고 싶어 했던 주민들 양쪽의 가치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가장 순수하게 묘사되는 인물인 우영우가 이러한 방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내는 것을 보니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나 이익이 다르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행동하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이익과 가치를 찾아감에 있어서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고려해야 함을 이 드라마는 알려주고 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가치나 이익을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의 것을 침해하지는 않는지, 한 발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의 가치를 함께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정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우 현실적인 동화 같은 이상한 드라마 우영우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