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 스포일러 리뷰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접근성에서는 드라마만 한 게 없으니 시청하기 시작했다. 일타 스캔들 첫 회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굳이 내가 이걸 더 봐야 하나? 였다. 예측 가능한 뻔한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된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순한 맛 덕분이었다. 자극적인 연출의 드라마가 넘쳐나는 요즘, 이런 슴슴한 맛의 전개는 다음회를 찾아보게 만드는 매력으로 충분했다. 거기에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더해지니 감칠맛이 돌아서 자꾸 찾게 되는 평양냉면 같은 드라마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역시나 마지막 회였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캐릭터들의 갈등을 최종화에서 너무 우싸인 볼트 급의 속도로 풀어내버렸기 때문이다. 작가가 극 중에서 죽은 지실장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행복하게 만들어버리려는 굳은 마음을 먹은 것만 같았다.
해피엔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행복한 결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특히, 흑화 되었던 방수아가 갑자기 착해지고 심지어 건후와 연애 노선까지 타는 전개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나름 드라마의 한축을 담당하며 긴장감을 주는 역할이었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를 시전하면서 캐릭터를 순식간에 소모해 버리는 듯하여 무척이나 속상했다.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타 스캔들'이 꽤나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일타 강사와 반찬집 사장과의 로맨스라는 이야기 안에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 현실에 관해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짜임새 있게 마무리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지만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지나친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책임은 어른들 즉 기성세대에게 있음을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후반부 갈등 해결의 중심에는 여지없이 어른들의 각성이 있었다. 자녀들이 겪는 문제도 그 원인은 오롯이 부모나 교사에게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좋은 어른의 본보기는 바로 두 주인공인 남행선과 최치열이다. 둘은 사랑을 이뤄가는 연인의 모습은 물론, 각각 참된 부모와 교사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두 사람이 완벽한 어른이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이미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어진 교육 현장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게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듯 하다.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은 다른 부모들과 달리 지켜야 할 선을 지킨다. 과거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답게 절대 반칙을 하지 않는다. 선재 엄마와 수아 엄마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던 것과는 상반된다. 해이의 이모이자 엄마인 행선은 결과만 좋다면 과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현실에 저항한다.
일타 강사 최치열은 아이들의 성적 향상에만 관심이 있는 냉혈한처럼 나온다. 사교육의 가장 중심에 서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잘못된 교육 행태로 인한 큰 상처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 대한 나름의 반성과 함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이 보여준 저항과 반성은 순한 맛 드라마답게 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바로 이런 점이 '일타 스캔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저항과 반성이 거창하지 않기에 드라마 밖에서의 우리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는 '일타 스캔들'이 아니라 '입시 스캔들'이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제대로 숨 쉬지도 꿈꾸지도 못하면서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남행선, 최치열 같은 좋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제도의 개선과 같은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어른들의 작은 변화가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남행선 같은 부모님, 최치열 같은 선생님이 되어주기 위한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사진출처: 네이버 검색 "일타 스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