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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Dec 03. 2023

봄날은 오고 있는가? - 영화 ‘서울의 봄’ 리뷰

<한국영화> ‘서울의 봄’ 스포없는 리뷰, 100일의 글쓰기 88번째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큰 재미를 주기가 어렵다. 역사 자체가 스포이기에 이미 결말을 다 알고 보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김 빠진 콜라만큼이나 시시한 그저 그런 영화가 되기 십상이다.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거나 가상의 인물을 추가한다고 해도 큰 줄기는 바뀔 리 없으므로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긴장감을 주기도 쉽지 않다.


  역사 영화가 흥행할 수 있는 그나마 가장 안전한 방법은 영웅을 다뤄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처럼 호불호가 없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성웅 정도 되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수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뤘기에 차별점을 두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서울의 봄’이 불어 일으키고 있는 흥행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는 역사 드라마 장르인 데다가 영웅이나 성웅은커녕 독재자 전두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중심 줄거리인 12.12사태는 이미 드라마에서 꽤 여러 번 다뤄졌던 식상한 소재였다.


  결코 유리하지 않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연출과 연기력에 있지 않았나 싶다. 김성수 감독은 실화의 바탕 위에 상상력과 새로운 해석을 덧입혀 냈다. 전혀 위화감 없이 역사적 사실과 어우러지면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이러한 촘촘한 연출 위에 배우들은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 전두광(전두환)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는 말모말모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다. 그동안 황정민 배우의 연기를 보면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솔직히 무슨 배역을 맡든 다 황정민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대머리 가발만 썼을 뿐 전과 비슷한 황정민스러운 연기에 가깝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가 폭발시켜 내는 광기를 보고 있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떤 배역을 맡든 같은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를 자신에게 완전히 흡수시켜 버리는 찐 배우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탐욕스러운 웃음은 영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 못지않았다.


  이태신 장군 역의 정우성 배우의 연기는 황정민 배우에 비해 임팩트가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연기력의 부족으로 본다면 곤란하다. 오히려 캐릭터를 더 완벽하게 구현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태신 캐릭터야말로 상상력이 가장 많이 가미된 인물이라고 한다. 실존 인물이지만 가상의 인물에 가깝기에 어찌 보면 제일 어려운 난이도의 역할을 정우성 배우가 소화해 낸 것이다. 그동안 정우성 배우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잘생겨서 얼굴만 보였는데, 언제부턴가 스크린 속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은 배우상 그 자체다.


  감각적인 연출과 미친 연기력은 뻔한 이야기를 FUN한 영화로 만들어 주었다. 근래 보기 드문 몰입도는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빨아들여 1979년 12월 12일 서울 한복판에 서 있게 만든다. 141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순삭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봄’은 올 겨울 강력 추천하는 영화다. 올해 본 영화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재밌게 보았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봄날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계절뿐 아니라 국내외 정세적으로도 연일 추위가 몰아치는 때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이럴 때 지나간 역사를 잘 담아낸 영화 한 편으로 몸을 달궈보자. 그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봄날은 오고 있는지 확인해 보면서 말이다.



*사진출처: 영화 ‘서울의 봄’ 예고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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