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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Apr 03. 2024

우리가 정말 파내야 할 것 - 영화 '파묘' 리뷰

<한국영화> '파묘' 스포일러 리뷰

영화 파묘가 천만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는 비주류인 오컬트 장르로 관람객을 모으기 쉽지 않은 비성수기에 달성한 기록이라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가 성공한 이유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 장재현 감독은 출연 배우들에게, 배우들은 장재현 감독에게 공을 돌리고 있어 그 모습마저도 훈훈하다.


  감독과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감독, 배우, 관객이 마치 삼위일체처럼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들이 돌고 돈다. 감독과 배우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을지 짐작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면서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떠나 그러한 지점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공감하고 있는 관객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흥행하게 된 진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단순히 제작자, 연기자, 소비자의 관점을 넘어 꽤 깊은 교감이 일어난 것 같다. 심지어 무대인사조차 화제가 되었는데 의례적으로 하는 마케팅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특히 가장 나이가 많은 최민식 배우가 보여 준 잔망스러운 모습은 압권이었다.


  관객들 앞이라면, 스크린 밖일지라도 망가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 소통에 최선을 다하는 사랑스럽고 멋진 배우의 모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파묘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중 하나는 교감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이익과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물론,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만큼 양극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현실을 향하여 영화 파묘는 함께 그 갈등을 파헤쳐 보자고 초청하고 있다.


  네 명의 주인공은 한국 사회 안에서 갈등의 여지가 있는 구성요소를 축소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기존쎄인 젊은 여성 무당 화림과 과묵하지만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봉길은 힙한 거리에서 만날 법한 MZ세대의 전형이다.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몸담아 온 상덕은 지관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고, 영근 역시 대통령의 장례를 맡을 정도로 알아주는 사람이다. 나이 지긋한 이 둘은 안정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조합은 사실 부자연스러워야 정상일 것이다. 올드맨들은 꼰대처럼 이래라저래라 할 것 같고, 영맨들은 그들이 뭐라 하든 자기들이 옳다고 여기며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급급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 속에서 두 그룹의 심각한 갈등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의견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나오기는 하지만, 의외로 쉽게 봉합된다. 처음에는 돈 말고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던 그들이었지만 영화의 후반부를 향해 갈수록 무덤에서 나온 진짜 험한 것을 물리치는 데 온전히 힘을 합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 정작 중요한 문제해결은 뒤로 한 채,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빴을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실상이 그러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성별, 세대, 정치적 입장에 이르기까지. 공격을 위한 비난에만 마음을 빼앗겨 서로를 힐난하기에 바쁘다. 정작 중요한, 파내 버려야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는 뒷전일 때가 많다.


  이 영화를 가지고도 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다투는 사람들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입에도 담기 힘든 험한 말들이 차고 넘쳐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일본이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는가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그것 자체에는 그다지 집중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쇠말뚝의 존재를 믿는 상덕과 믿지 않는 영근의 주장 중 어느 한쪽에도 무게를 실어주지 않는다.


  함께 파헤쳐낸 무덤 속에서 한 가문의 고통을 넘어서는 민족의 아픔을 마주한 그들이 험한 것을 해치우는 데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성별도 세대도 역사관도 다르지만 오니의 공격에 함께 맞서는 장면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은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을 갈라 서로에게 적이 되는 관계로 만드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할 때이다. 함께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아픔을 파내고 치유하는데 힘을 합쳐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처음부터 고상한 가치를 위해서 굿을 하고 파묘를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큰돈이 된다는 생각에 함께 모여 합을 이룬 것뿐이었다. 겉으로는 너스레를 떨며 서로의 비위를 맞춰 주었지만 너무 달랐기에 네 명이 함께하는 행보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맞서 싸운 그들은 끝내 이겼다.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상덕의 딸 결혼식에서 친구가 아닌 친척들 사진 찍는 순서에 나설 정도로 관계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큰 건수 하나 잡아 일을 성공시키고, 돈이나 나누던 관계에서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가족과 같이 의지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한 모습이었다. 서로 공감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감과 혐오는 파내어 버리자. 시민의식이 성숙하게 자라나지 못하도록 쇠말뚝을 박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었다. 보이지 않는 쇠말뚝을 뽑아내고 함께 치유에 힘쓰는 공동체가 되어가길. 영화 파묘가 관객들과의 교감에 힘쓰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아픔에 교감하기를 힘써야 할 때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검색 "파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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