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에이트 쇼 스포일러 리뷰
드라마의 첫 화를 보고 나니 왠지 에이트 게임이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았다. 화제작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보면 볼수록 다른 작품들도 떠올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에이트 쇼’를 보게 되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캐릭터도 그렇고, 막대한 부를 가진 누군가가 등장인물들이 게임을 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관람한다는 설정은 오징어게임과 똑 닮아 있었다.
참가자 총 8명이 각자 뽑은 숫자대로 1~8층까지 수직적으로 방배치가 된다는 점에서는 설국열차를. 넘어설 수 없는 계급 구조의 현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는 기생충과도 비슷했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그저 유명한 작품들의 이런저런 서사를 차용해 만든 짝퉁일까? 오마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둘도 아니고 여러 작품을, 그것도 글로벌 히트작의 느낌이 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더 에이트 쇼’다. 그렇다면 맛있다는 식재료를 모두 모아 한 솥에 끓여내 버린 짬뽕 같은 이 시리즈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고민할 필요 없다. 아니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재미와 긴장감을 주어 몰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거 아는 맛이잖아’라며 한 입 떠먹는 순간 너무 맛있어서 다시 찾게 되는 명인이 만든 짬뽕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익숙하다는 착각이 확신이 될 때쯤 나타나는 변주는 시청자로 하여금 다음 회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준다.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의 관전 포인트들이 존재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늘어지는가 싶어지면 적당히 반전이 치고 나왔다. 스토리 설계에 꽤나 공을 들인 티가 났고 통찰을 바탕으로 한 개성 있는 연출도 빛을 발했다.
이는 위에 언급한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점이 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더 에이트 쇼’의 최대 장점은 바로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세트에 모인 8명의 주인공들은 그 안에서 일종의 머니게임을 치르게 된다. 게임의 룰은 최소한만 주어졌고, 대부분은 참가자들의 자율성에 맡겨진다. 이것은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불확실함이 주는 긴장감은 영상 속 인물들은 물론 영상 밖에서 관찰하는 우리 모두에게 불안감과 불편함이 되어 다가온다. 각각의 인물들이 펼치는 게임 같은 쇼는 처음에 재미로 시작되지만 점점 선을 넘어 파국을 향해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하다. 극 후반을 향할수록 수위는 점점 더 높아져 상당히 선정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인해 ‘더 에이트 쇼’는 근래 공개된 넷플릭스의 시리들 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지 않을까 싶다.
왜 하필 제목에 show를 넣었을까? 원작 웹툰에서조차 게임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오징어 게임의 유사품이라는 오해를 벗어나기 위한 대비였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show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떠올려 보면 된다. 모두가 알듯 이 단어는 ‘보여주다’ 혹은 ‘증명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굳이 제목을 show라고 지은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이 하나의 단어가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는 것에 자유롭지 못하고, 끊임없이 증명해 내기를 요구받는 현대인의 삶과 잔혹한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시청자인 우리들이 사실은 show의 관람자가 아니라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층에 속해 있는 참가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 드라마 아니 show는 막을 내린다.
결론적으로 더에이트쇼를 보고 나면 찜찜함을 떨쳐내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지독하게 닮아있어 더 그렇다. 드러 내놓고 사람의 계급을 나누지 않을 뿐, 엄연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수평 사회를 향해 나아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직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지독한 현실 그 자체였다.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각자의 층에서 고군분투했을 모든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