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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Jan 09. 2024

병태는 복면을 벗고 외쳤다. - 소년시대 스포 리뷰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 스포 있는 리뷰

드라마 소년시대의 가장 큰 매력은 사이다 스토리라는 점이다. 맞고 다니던 학생이 훈련을 통해 강해져 자신을 때렸던 학생들을 끝내 쓰러뜨려 버린다. 괴롭힘을 당해왔던 다른 친구들까지 함께 힘을 모아 소위 약자들의 연대가 무엇인지 보여줄 때는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복수의 중심에는 병태의 각성이 있다는 점이다. 병태가 강해지지 않았다면 사이다 복수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맞고만 살아서 답이 안 보이던 병태. 마침내 백호를 중심으로 한 교내 일진 세력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영과 훈련을 하는 한편, 나름의 전략도 세운다. 그리고 한 명씩 차례대로 쓰러뜨린다. 


  그때마다 병태는 청룡 복면을 썼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다. 복면이나 가면은 이런 스토리에서 흔한 클리셰이고 특히나 영웅 서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병태가 청룡 복면을 쓰고 일진들을 하나둘씩 물리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사이다도 이런 사이다가 없다.


  복면을 쓰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하나는 주인공이 비밀리에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체를 감춤으로써 상대방에게 더 큰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 싸우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장치는 소년시대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병태는 자신의 정체를 숨김으로써 청룡으로 활동하지 않을 때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병태의 복수가 성공할수록 일진 무리들은 청룡 복면을 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에게 점점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복면을 쓰는 순간, 병태는 강한 힘을 가진 청룡이 된다. 맞고만 살던 찌질이 븅태는 복면 뒤에 남겨둔 채 폭력에 당당히 맞서는 새로운 자아로 태어난다. 병태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천하나 뒤집어쓴 것뿐인데 그들은 놀랍도록 용맹한 모습을 보여준다. 


  얼굴을 가려 정체를 숨기는 것이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자신들을 끈질기게 괴롭혀 오던 자들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약한 피해자의 모습 그대로 맞선다면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와 먼저 이별해야만 강자들 앞에 용기 있게 설 수 있다.


  그래서일까. 병태는 끝판왕 백호(경태)와 대결할 때도 청룡 가면을 쓰고 임한다. 시야도 답답하고 호흡도 불편할 텐데 끝까지 복면을 고수한다. 그리고 마침내 백호를 쓰러뜨리고 나서야 가면을 벗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경태야, 이게 무서우면 우리는 어떻겠어?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게 무서워서, 맞는 게 지긋지긋혀서 차라리 죽고 싶은 우리 심정을 니가 아냐고!”





  청룡 가면 뒤에 숨어 있던 병태는 스스로 걸어 나온다. 이 순간만큼은 청룡이 아닌 병태로, 백호가 아닌 경태에게 말하고 있다. 피해 학생으로서 가해 학생에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병태는 복수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자신과 친구들을 포함한 약자들을 대변하여 저 말을 경태에게 하기 위해서 험난한 길을 달려온 것이다. 


  피해자가 겪고 있는 아픔을 가해자인 그가 절대 모를 수 없도록 깊게 새기고 있다. 이 부분은 드라마 소년시대 중에서도 최고의 명장면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한에 복받쳐 울부짖는 병태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 드라마를 가벼운 학원 코믹물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연출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폭력만큼은 안타까울 정도로 현실적이었기에.


  병태의 마지막 절규는 비단 드라마 속 경태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화면 너머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외침이었다. 귓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병태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할 소년과 소녀들의 시대가 폭력으로 얼룩진 야인시대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적어도 올 해는 청룡의 해가 아니던가.






*사진출처: 네이버검색 "소년시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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