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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Sep 11. 2024

벌레와의 전쟁

날파리들의 전성시대

밥만 차리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나와 아내의 식사를 방해하는 불청객. 밤손님이 아닌 밥손님. 바로 날파리다.


음식물 쓰레기는 늘 제 때 치웠더랬다. 싱크대 배수구도 깨끗하다. 이 정도의 깔끔함이라면 진작에 씨가 말랐어야 한다. 그런데 바선생(바퀴벌레) 못지않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이 날파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걸까?


밥 좀 먹을라치면, 어김없이 날아와 반찬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한다. 그것도 꼭 한 마리가 나타나 그러고 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손으로 몇 번 휘휘 저었다. 하지만 약 올리듯 다시 날아드는 얄미운 놈이다. 


살생을 하고 싶지 않아 연신 쫓아내 보지만 소용없다. 조용히 일어나 휴지를 한 장 빼들었다. 내가 휴지를 빼들었다는 건 녀석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날파리가 다시 오길 기다리며 밥 먹는 척을 해본다.


오른손 엄지, 검지, 중지를 이용해 휴지를 잘 파지 하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녀석을 섬멸하려고 자세를 잡은 채로.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나타나질 않았다. 마치 내 계획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수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자 휴지를 내려놓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날파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또 날아들었다.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날파리를 보고 있으니 요샛말로 킹 받는다.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손은 눈보다 빠르게 휴지를 다시 집어 녀석을 쫓기 시작했다. 뭘 먹고 컸는지 요리조리 잘도 피한다. 게다가 나는 비문증 환자라서 순간순간 날파리가 여럿으로 보이기까지 해 더 애를 먹었다.


장비 교체가 시급했다. 휴지를 이용한 근접전은 승산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원거리에서 녀석을 잡을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아뿔싸 그런데 우리 집에는 뿌리는 살충제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총 두 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둘 다 비염 환자다. 전에 한번 뿌리는 살충제를 잘못 뿌렸다가 벌레보다 우리가 먼저 죽을 뻔했었다. 그 뒤로 우리는 XX킬라 같은 건 절대 사놓지 않는다. 


그냥 포기하고 날파리와 겸상해야겠다고 포기하려던 바로 그때. 분무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 성분의 뿌리는 소독제로, 소주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라 인체에 무해하기로 유명한 제품이다. 그렇다. 식당에 가면 식탁을 닦을 때 쓰는 소주향 진한 그 스프레이다.


그 분무기는 화장대 위에 놓여 있었다. 잽싸게 달려가 휴지 대신 알코올 분무기를 집어든다. 분사구를 ON으로 개방하고, 날파리가 날아들길 기다리며 다시 밥 먹는 시늉을 했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거리고 있으니 금세 나타난다. 무슨 스텔스 기능이라도 갖춘 것인가? 안 보이던 게 밥만 먹으려면 나타나준다. 기다렸다는 듯이 날파리를 향해 분무기를 들고 알코올을 분사했다. 


녀석이 무척 빠른 날갯짓을 이용해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비행했지만 괜찮다. 분무기에서 발사된 알코올은 마치 산탄총처럼 넓게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두어 번 발사하자 날파리가 아래로 추락한다.


날개가 젖어서인지 알코올 때문에 취해서 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효과는 확실했다. 녀석은 힘없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치열한 한판 승부였다. 잠시 날파리를 향해 짧게 묵념하고 휴지에 곱게 싸서 일반 쓰레기봉투에 잘 매장시켜 줬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실제로 날파리를 잡을 때 알코올 소독 스프레이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날파리는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 스프레이는 예방 효과도 있었다. 


쓰레기통이나 싱크대, 욕실 배수구 등 날파리가 생길만한 곳에 알코올을 뿌려두면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스프레이를 들고 집안 곳곳 녀석들이 좋아할 만한 곳들을 찾아가 알코올을 사정없이 분사해 두었다.


사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집안 소독용으로 구입해 두었던 소독 스프레이다. 리필까지 포함해 잔뜩 사놨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지니 별로 쓸데가 없어 계륵 취급하고 있었다. 우리 집이 식당도 아니고 식탁 닦는 데에만 쓰기에는 많은 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해 예측하지 못했던 용도로 쓰이게 될 줄이야. 올여름 날파리들의 전성시대는 이제 이것으로 끝이다. 조만간 더 큰 몸집을 가진 벌레들에게도 실험해 볼 생각이다. 부디 효과가 있길 바라며, 말 나온 김에 모자라지 않도록 소독제 몇 통 더 쟁여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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