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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대학이 만든 죽이는 콘텐츠 ‘한시간반복재생라이브’

by 천세곡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취향이 특이하다. 콕 집어 엄청 좋아하는 가수나 앨범이 있다기보다는 시기별로 어떤 ‘한 곡’에 팍 꽂히는 편이다. 그래서 굳이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이하 플리)를 만들지 않는다. 열심히 이곡 저곡 선택해 플리를 만들어 봤자, 어차피 꽂힌 한 노래만 한 곡 죽어라 반복 재생해서 듣기 때문이다.


이동할 때는 주로 음악 스트리밍 어플로 음악을 듣지만, 집이나 카페처럼 한 곳에 머무를 때는 유튜브를 사용한다. 유튜브 뮤직 말고, 그냥 유튜브로 검색해 듣는다. 유튜브라는 거대한 영상 플랫폼 속에는 여러 종류의 음악 플리 동영상들이 차고 넘친다.


동영상 형태로 보는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유튜브가 가진 큰 장점이다. 앨범 재킷 이미지만 띄워 놓고 노래만 삽입한 영상들도 있고, 방송국이나 소속사 공식 페이지에서 올려주는 공연이나 뮤직비디오도 있다. 당연히 음질이나 화질의 퀄리티면에서는 후자가 압승이기는 하다.


그런데 역시나 한 곡만 귀가 터져라 듣는 나에게 있어 최고는 일명 ‘한곡 반복재생’ 동영상이다. 노래 하나를 약 한 시간가량 계속 반복해서 나오게 만들어 놓은 콘텐츠다. 듣고 싶은 곡의 제목 뒤에 한 시간이라고 입력해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주 매니악한 음악만 아니라면 ‘설마 이런 곡도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찾으면 어지간한 음악은 다 검색해 찾을 수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플랫폼이다 보니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이 몇 명쯤은 존재한다. 유명한 유튜버가 아님에도 자신이 편하게 듣고 싶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편집해 올려놓은 이러한 콘텐츠들이 고맙다.


덕분에 나와 같은 사람들은 덕을 본다. 물론, 가끔씩 나오는 광고가 집중도를 떨어뜨릴 때도 있다. 이마저도 센스 있는 업로더는 광고 없이 한 시간 내내 들을 수 있도록 대인배의 배려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유튜브 플랫폼에 존재해 준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에 꽂힌 노래는 ‘한로로’가 부른 ‘먹이사슬’이라는 곡이다. 한로로는 2000년 생으로 지난 2022년 ‘입춘’이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상>, <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촉망받는 실력파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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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문학적인 가사로 듣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이와는 상반되는 모던록 장르의 곡들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내가 요즘 꽂혀 있다는 ‘먹이 사슬’이다.(2024년 4월 발표)


평소처럼, 나는 이 노래만 죽어라 듣기 위해 유튜브 검색창에 ‘먹이 사슬 한 시간’을 검색했다. [한로로의 한시간반복재생라이브 먹이사슬….]이라는 영상이 맨 위에 떴다. 한 시간 반복도 감사한데 무려 라이브 영상이라니!!! 두 손을 힘차게 들어 올리며 해당 영상을 클릭해 본다.


신나게 노래를 듣다가 첫 번째 반복이 끝날 때쯤 무심코 다시 영상 제목을 보게 되었다. ‘외 18곡’라고 덧 붙여져 있다. 들뜬 마음에 제목을 보고 싶은 부분까지만 읽어 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시 재검색을 하려던 찰나 이어지는 곡에서 익숙한 전주가 귀로 흘러들어온다.


설마 했는데 한로로는 먹이사슬을 또 부르고 있다. 좋긴 한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라이브인데 똑같은 노래를 연속 두 번 부른다고게 이상해 갸우뚱하던 중, 그제야 채널명이 눈에 들어온다. ‘피식대학’이었다. 알다시피 피식대학은 279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개그 콘텐츠 채널이다. 여기서 음악 라이브 콘텐츠를 보게 되다니. 어울리지 않는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곧 아주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 곡, 그다음 곡, 그 그다음 곡. 계속 먹이 사슬 한곡으로 무려 한 시간을 채워내고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가수인 한로로와 피식대학 멤버들 모두 마치 매번 다른 곡을 부르는 것 있다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연기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 한로로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자신을 화끈하게 불태운다. 샤우팅에 점핑은 물론, 헤드뱅잉까지 곁들이면서. 밴드팀도 중간중간 넋 나간 표정을 지으며 현타에 빠진 표정을 짓기는 하지만 똑같은 곡을 반복함에도 조금씩 변주를 주는 프로다운 연주로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다.


관객의 역할을 하는 피식대학 멤버들도 예외는 아니다. 함께 일어나 몸을 흔들면서 마치 락페스티벌에 참여한 것처럼 뛰고 있다. 막바지로 향할수록 화면 속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지쳐갔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화면을 통해 보는 나까지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게 미안해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게 된다.


마지막 먹이 사슬을 부르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순간, 한로로와 피식대학 멤버들은 마라톤 완주한 사람들처럼 땀범벅의 모습이었고, 밴드팀도 넋이 나간 듯 보였다. 특히 드럼 치는 분은 놀랍도 못해 경이로울 정도였다. 슈퍼맨에 가까운 체력으로 드럼을 힘주어 화려하게 연주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 출연료를 더 드려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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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다가 누군가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으로 보게 되지만, 웃음 역시도 참을 수 없는 기가 막힌 콘텐츠다. 그들이 고생하면 할수록 무대가 더욱더 살아나고 있었다. 몸을 던져 이 힘든 미션을 해낸 화면 속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피식 대학과 한로로의 콜라보레이션. 전에 없던 아이디어로 너무나도 유쾌하고 신나는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채널 재생 목록을 살펴보니 한로로 이전에 ‘바밍타이거’와 ‘이날치’도 해당 콘텐츠에 출연했다. 내일과 모레 하나씩 즐길 노래가 정해졌다. 이 콘텐츠는 배속하지 말고 꼭 끝까지 시청하길 추천한다. 비록 한 곡이지만 불 끄고 방 안에서 음악과 그들의 퍼포먼스에만 집중해 보시길. ‘피식대학 축제’에 찾아와 콘서트 열어주는 가수들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퀄리티의 라이브 음악 감상은 기본이고, 웃음은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사진출처: 피식대학 유튜브 영상 캡쳐



https://youtu.be/kq0cfP6kD4Q?si=fPcdLxGsbY4Zim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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