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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Apr 10. 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간 리뷰

<tvn 드라마>스물다섯, 스물하나

영화든 드라마든 멜로물은 잘 보지 않는다. 멜로물을 볼 때면 마음속이 오글거림으로 가득 차곤 하는데 이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멜로가 체질이 아니다.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기에 드라마 정주행을 하기 전 먼저 유튜브 짤방으로 시식을 해보는 편이다. ‘스물다섯, 스물 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본 짤방은 3화 중 일부분으로 책 대여점 씬이었다. 


  백이진(남주혁)이 알바를 하고 있는 책 대여점에 나희도(김태리)와 고유림(보나)이 차례로 찾아와 서로 풀하우스 12권을 빌려가겠다고 옥신각신 한다. 결국 나희도가 풀하우스 12권을 차지하게 되고 100원짜리 동전 3개를 당당하게 내려놓고 가게를 나선다. 이 장면을 보는데 하굣길 친구들과 수없이 들렸던 추억의 책 대여점이 떠올랐다. 

  ‘책’ 대여점이었지만, 거의 99% 만화책을 빌려보기 위해서 갔던 곳이다. 당시 우리 동네 기준 만화책 한 권 대여료가 300원이었는데 추억 고증이 정확해서 소름까지 돋았다. 극 중 나희도와 친구들이 1998년에 18살인데 나 역시 그 시절 같은 나이었던 터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깨알 추억 템들이 주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PC통신의 푸른 창, 백팩 양대산맥이었던 이스트백과 잔스포츠, 스티커 때문에 사 먹었던 슈퍼마켓 빵, 삐삐에서 벽돌 핸드폰으로 기변해 가던 모습 등등. IMF로 인해 어수선했지만, 청춘을 함께 살아준 그때의 아이템들이었다. 보는 내내 추억을 자극해 준다.


  여기에다 추억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려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들을 그대로 쓰지 않고, 새로 만든 레트로 한 음악들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은 신의 한 수인 듯하다. 2022년에 듣는 낯선 노래 속에서 90년대 말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할 정도다. 


  한 마디로 이 드라마 OST맛집이다. 듣다 보면 이게 무슨 일이야 싶을 정도로 다 좋다. 최애를 뽑기는 매우 어렵지만 굳이 고르라면 원슈타인의 ‘존재만으로‘이다. 원슈타인의 보컬은 말할 것도 없고, 레트로 하면서 살짝 몽환적인 멜로디에 후반부 랩 파트까지 완벽하게 추억에 중독되게 만들어준다. 거기다 제목에 ‘존재’라는 단어를 쓰다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멜찔이’인 내가 소화하기엔 여전히 오글거리는 극강의 단맛도 있지만, 추억 소스들이 이 모든 것을 중화시켜 버렸다. 풀하우스 다음 권을 기다리는 나희도처럼, 간절히 다음화를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막장이 아니면서 볼만한 드라마를 만난 것 같다. 


  그 시절 추억과 감성에 빠져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백도’(백이진&나희도) 커플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게 된다. 멜로가 체질이 아닌 내가 ‘스물다섯, 스물 하나’에 푹 빠져 산다. 모처럼만에 무료한 삶을 미소처럼 빛나게 해주는 드라마이다. 존재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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