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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 어스' 느림의 미학인가 답답한 지루함인가

[디즈니플러스] '에이리언 어스' 중간 스포일러 리뷰

by 천세곡

‘에이리언 어스’는 여러모로 느리다. 각 에피소드의 공개 속도부터 그렇다. 첫 주에만 2편을 공개했을 뿐, 그 뒤로는 매주 1편씩 공개 중이다. 꼬박 일주일을 기다려 고작 1편밖에 볼 수 있다는 건 시청자 입장에서는 곤욕이다.


서사의 전개도 마찬가지다. 총 8부작 미니 시리즈인데, 주인공 웬디가 에이리언과 한 차례 맞붙은 것 말고는 드라마틱한 진전이 거의 없다. 지난주 수요일 공개된 4화를 기점으로 반환점을 돌았지만, 스토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불시착한 유타니의 우주선에서 에이리언의 알을 옮겨온 것이 전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투 장면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웬디가 에이리언을 두 동강 내버렸지만, 정작 직접적인 전투 장면은 생략됐다. 새롭게 등장한 하이브리드 인간과 에이리언의 첫 대결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다니. 기대를 잔뜩 품고 있던 팬들로서는 김이 빠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느린 속도가 주는 장점도 있다. 회차 하나, 장면 하나하나를 더 집중해 음미하듯 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화면 전환조차 다른 작품들보다 느리게 느껴진다. 실제로는 1초도 안 되는 차이일 테지만, 그 찰나의 정적이 주는 깊이는 길게 남는다.


‘에이리언 어스’ 4화의 부제는 ‘관찰’이었다. 해당 편에서 어른의 몸을 가졌지만 정신은 아이인 하이브리드 인간들은 하나둘 내적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꽤 격정적이다. 이를테면 닙스는 하지도 않은 임신을 했다고 주장하며 갑작스럽게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다.


슬라이트리는 관리자를 속이고, 접촉해서는 안 되는 유타니 소속 사이보그 모로우와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하이브리드 아이들의 일탈은 마치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성인 관리자들에게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회사의 소유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싹트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 전반에 흐르는 ‘느림’은 액션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겠다는 감독의 의지로 보인다. 빠름이 주는 즉각적 자극은 없지만, 그 빈자리를 서서히 조여 오는 압박감으로 메우고 있다. 다만, 과거 ‘에이리언’ 시리즈가 보여줬던 도파민 터지는 화끈한 액션을 기대한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OTT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 시장의 흐름은 점점 더 ‘빠름’에 최적화되고 있다. 배속조절 버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에이리언 어스’의 느린 호흡은 답답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 평점(IMDB 7.6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5%)에서 보이듯, 느린 전개 속에서도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얼마나 ‘느림’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어색하겠지만, 어느 순간 각 캐릭터의 내면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에이리언 어스’는 단순히 우주 괴물을 빠르게 물리치는데 방점을 찍지 않는다. 점점 더 빠르게 소비되는 세상, 인류는 얼마나 여유를 가지고 깊이 사유할 수 있는지 물어오고 있다.




*사진출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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