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에어컨 가동일을 기억한다. 지난 5월 20일이었다. 물론 그때부터 매일 켠 건 아니지만, 6월 초순을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풀가동했다. 선풍기 바람 따위로는 절대 식힐 수 없는, 가장 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난 주말부터 낮에도 제법 바람이 선선해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걸어서 동네 단골 카페에 왔다. 정확히 세어본 건 아니지만, 느낌상 거의 석 달 만이다. 좋아하는 아이스 라테로 목을 축이고 케이크 한 스푼을 입에 넣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카페 공간은 늘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뜨겁고 길었던 올해 여름은 나의 유일한 루틴마저 지워버렸다. 숨이 탁탁 막힐 정도의 무더위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도무지 집 밖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카페에 가는 대신 내가 선택한 일은 일어나자마자 에어컨을 켜는 것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리모컨부터 찾았다. 밤이 되어 다시 잠들기 전까지는 에어컨에게 쉼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백수 주제에 하루 종일 에어컨 풀가동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전기요금을 아껴보려 다시 카페로 피서를 떠날까 고민도 했지만, 한 잔 커피값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세 시간.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에어컨을 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애매한 상황 속에서 나는 차라리 집에 눌러앉기로 한 것이었다.
심지어 ‘처서 매직’도 사라져 서울 기준 8월 말까지 열대야가 이어졌다. 9월이 되어서야 열대야가 사라졌고, 일주일쯤 지나 이번 주에 들어서니 낮에도 제법 바람이 시원하다. 문득 궁금해져서 절기를 찾아보았다. 지난 9월 7일이 백로였다.
신기하게 그날을 기점으로 낮의 더위도 한풀 꺾였다. 비로소 가을의 문턱에 이르렀다. 한 절기를 밀어낼 만큼 올여름이 길었다는 뜻이다. 참 오랜만에 에어컨에게 쉼을 주고 있다.
이번 2025년 여름은 기상청도 공식 인정한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 전국 평균 기온은 25.7도로 기존 최고였던 지난해(25.6도)보다 0.1도 높아 기록을 경신했다. 열대야지수(서울 기준) 역시 총 46일로 기상 관측 이래 최다일 수를 기록했다.
폭염은 이제 ‘여름이니 더운 게 당연하다’는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나는 백수의 처지에서 에어컨 풀가동이 주는 헛웃음을 기록했을 뿐이지만, 사실 이상 기후가 주는 피해는 훨씬 심각하다. 냉방은 단순히 ‘사치’가 아닌 ‘생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더위든 추위든 심화될수록 가장 큰 피해를 떠안게 되는 건 항상 사회적 약자들이다. 에어컨 없이 무더위를 버텨야 하는 독거노인이나 쪽방촌, 있어도 비용 문제로 사용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 이에 해당된다. 부실한 냉방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2025년의 여름은 끝났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일 수도 있다. 당장 내년에 ‘백로 매직’ 역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다가올 더 뜨거운 계절 앞에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취약 계층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