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깼다. 커튼을 걷었지만 실내는 여전히 어둡다. 비가 들이치지 않을 만큼만 창문을 열자, 귓가를 울리는 빗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창틈에 코를 살짝 대어 깊게 들이마셨다. 비 냄새다. 비 오는 날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한다.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한 잔 받아 차를 마시듯 천천히 들이켰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창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온도가 선선하다.
지난주에도 비가 내렸더랬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비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가 그치자 기온은 다시 올랐다. 흡사 화마에 가까웠던 올여름은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내리는 비는 조금 더 다르게 다가온다. 어제 오후 잠시 개었다가, 늦은 밤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빗줄기가 오전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내 짐작이 빗나갔지만, 지금 내리는 이 비는 가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듯하다. 창틈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가 코끝을 간질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젯밤 아내가 비염 증세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알레르기성 비염인이다. 특히 환절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증세가 심해진다. 개코 못지않은 비염 코는 계절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심한 ‘프로 비염인’이다. 기온 차가 조금만 벌어져도 코가 막혀버리니, 어지간한 일기예보보다 정확하다. 이 비가 그치면 낮의 기온도 크게 오르지 않는 진짜 가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인구의 약 10%가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라고 한다. 봄보다 가을에,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2021년 기준 알레르기 질환으로 내원한 사람의 수는 약 1,300만 명으로, 9월 환자 수(약 258만 명)가 4월 환자 수(약 243만 명) 보다 많았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 끝나간다. 지난 계절을 미워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일 년 중 아내의 비염 증세가 가라앉는 유일한 계절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을을 알리는 빗소리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당분간 온도와 습도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완치가 없으니 조심하는 게 최고다. 온습도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 서랍 구석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비염 때문에,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 부부는 마스크와 친했다. 상비약처럼 늘 구비해 두는 편이다.
오늘부터 습도계도 매일 확인하려 한다. 건조할수록 비염인은 괴롭다. 집안 습도를 적정 수준인 50~60%로 맞춰야겠다. 우리 집은 주로 젖은 수건을 활용한다. 가습기를 써본 적도 있지만 위생 관리가 힘들어, 가장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진짜 가을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여름은 저만치 물러가고, 본격적인 환절기가 시작된다. 9월은 비염의 계절이다. 빗소리에 깼다. 비염인의 코가 깨어났다.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