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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의 천국> - 김밥 한 줄이 보여준 K-컬처

[리뷰] 넷플릭스 다큐 '김밥의 천국'

by 천세곡

다큐 <김밥의 천국>이 지난 10월 1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경남 MBC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이미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28일 경남 MBC에서 처음 선보인 뒤, 올해 설 연휴(1월 29~30일)에는 특집으로 전국에 방송됐다.


이해나 PD가 연출한 <김밥의 천국>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김밥이 세계적인 음식 문화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충무김밥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개성 있는 김밥들을 소개하며, 김밥의 역사와 다양한 조리법까지 풀어낸다. 한국인인 나조차 아직 맛보지 못한 김밥들이 많아 놀라울 정도였다.


이 작품은 김밥을 주제로 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단순한 음식 다큐를 넘어, 한 줄 김밥 속에 담긴 한국 근현대사와 문화적 의미를 되짚는다. 서민들의 삶, 어린 시절의 추억, 지역의 특색까지, 김밥은 그야말로 K-문화의 집약체였다.


특히 김밥이 미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인상 깊다. 국내에서는 ‘가성비 한 끼’의 이미지가 강하다면, 해외에서는 ‘웰빙푸드’로 각인되어 있었다.


속재료를 각자의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고기를 빼면 비건푸드가 되고, 현지 재료를 활용하면 새로운 퓨전푸드가 된다. 외국인들이 김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즐기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김밥은 이미 외국인들에게 꽤 알려져 있었다. 지난 6월 전 세계를 강타한 ‘케데헌’ 열풍이 결정적이었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루미가 김밥 한 줄을 통째로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되며, SNS에서는 이를 따라 하는 ‘김밥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졌다.


K-김밥의 성공 사례는 그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국내 한 업체가 냉동 김밥을 미국에 수출했는데, 출시 몇 주 만에 품절 사태를 빚으며 인당 구매 제한까지 걸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케데헌’ 열풍이 더해지며 김밥은 한국인의 간단한 한 끼를 넘어 어엿한 글로벌 푸드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김밥의 천국>은 한 줄 김밥이 보여주는 K-컬처의 위상 변화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갓 싼 김밥을 썰어내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돈다. 화면 너머로 고소한 향이 전해지는 듯하다.


김밥은 내게도 추억이 많은 음식이다. 학창 시절 소풍 때 친구들과 뛰어놀다 은박 도시락 뚜껑을 열면 있던 김밥은 내 키를 한 뼘 더 자라게 했다. 군 제대 후 주머니가 가벼울 때 천 원짜리 분식집 김밥 한 줄은 허기뿐 아니라 청춘의 허전함까지 달래주었다.


돌이켜보니 아내와 함께한 첫 식사도 김밥이었다. 아내가 김밥을 좋아한다기에 첫 데이트 날 김밥 두 줄을 샀다. 우리는 한강공원에 갔고 김밥을 함께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아내와 김밥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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