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식사는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것이다.

<그림책 리뷰> 할머니의 식탁 / 글, 그림 오게 모라

by 천세곡

오무 할머니가 커다란 냄비에 걸쭉한 토마토 스튜를 끓이고 있다. 맛있는 냄새가 마치 꽃향기처럼 온 동네로 퍼져 나간다. 스튜를 끓이고 있는 오무 할머니는 최고의 저녁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는 중이다.


'오게 모라'의 그림책 '할머니의 식탁'은 독자로 하여금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을 환기해 준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든든하게 해 주었던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해주신 그 시절의 음식들 말이다. 나의 쏘울푸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오무 할머니의 식탁 앞에서 아련함은 어느새 기대감으로 바뀌게 된다.


오무 할머니가 끓이고 있는 토마토 스튜처럼 이 책은 따뜻함을 가득 품고 있다. 표지부터가 이러한 느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오무 할머니가 짓고 있는 온화한 미소는 물론이고 마치 누군가와 나누어 먹을 것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넉넉히 조리되고 있는 스튜의 양을 보아도 그렇다. 배경에 사용된 따뜻한 색감까지 어우러지면서 할머니의 식탁이 가지는 따스함과 풍성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의 앞표지는 뒤표지와 함께 보아야 한다. 앞표지가 요리하고 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다면, 뒤표지는 훨씬 먼 거리인 건물 밖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영화 촬영 기법처럼 각각 줌인과 줌아웃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표지뿐 아니라 책의 내용에서도 일정하게 반복된다. 할머니의 스튜 냄새를 맡고 찾아온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건물 안팎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할머니만 비추던 시선이 전체를 향하게 된다는 것은 할머니가 만든 음식 역시 그렇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혼자서 만들고 있지만 함께 먹게 될 음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할머니가 만든 토마토 스튜의 맛있는 향내를 연기의 형상으로 강조해서 표현한다. 연기는 줄곧 건물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는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냄새를 맡고 할머니의 집을 방문해 스튜를 얻어먹게 된다. 꼬마아이를 비롯해서 경찰관, 핫도그 장수, 가게 주인 등등. 심지어 마지막에는 도시의 시장님까지 찾아왔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자신의 스튜를 나눠주었다.


결국, 스튜 냄비는 텅 비게 된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막상 먹을 스튜가 없어진 오무 할머니는 우울한 기분으로 식탁에 앉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요란하게 두드린다. 문 앞에는 꼬마아이를 비롯해 오무 할머니에게 스튜를 얻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음식을 얻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나눠주려고 온 것이었다. 모두가 각기 다른 음식들을 싸왔고, 꼬마아이는 정성스럽게 쓴 편지도 들고 왔다. 이들은 할머니의 작은 아파트에 모여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할머니의 스튜는 동이 났지만, 그녀가 베푼 선행으로 인해 식탁은 더욱 풍성해졌다. 음식의 종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 혼자 앉아있었던 외로운 식탁도 사람들로 인해 북적대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날 오무 할머니는 생애 최고의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그림책의 작가 '오게 모라'는 일러스트레이션 전공자이다. 마치 종이를 오려 붙인듯한 그림들은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요리하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실제로 그녀의 할머니는 생전에 여왕(오무)처럼 음식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한다.


자신의 첫 작품인 이 책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것은 그만큼 그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각별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는 할머니가 실천하셨던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되새기며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혼자가 아닌 함께의 가치를 통해서만 최고의 식사가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눔과 섬김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따뜻하게 연결해 주는 매우 중요하고 마땅히 있어야 할 가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개인화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나를 위한 배달 요리를 시켜 먹는 것은 쉽지만, 이웃을 초대해 함께 나누는 식사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고 때로는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과거 어느 때에는 분명 오무 할머니, 오무 아주머니 같은 분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웃과 음식을 나누기는커녕 누가 사는지 조차 모르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현대인에게 식사는, '혼밥'이라는 단어가 알려주듯이 더 이상 나눔의 가치를 내포하지 않는다.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공동체는 어느새 동화 속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전히 최고의 식탁은 함께 나눌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는 공동체의 식탁이야말로 풍성하고 따뜻해서 우리의 영혼까지도 살찌우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여전히 끈끈한 공동체의 유대감과 정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는 나눔과 섬김에 바탕해서만 세워지고 유지될 수 있다. 오무 할머니가 정성껏 요리한 토마토 스튜를 이웃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최고의 식탁에 같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을 낳았고, 모두가 함께 풍성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의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잊고 있던 아주 당연한 가치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책은 우리 영혼의 토마토 스튜와도 같은 따뜻하고 맛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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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그림책 '할머니의 식탁 표지,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