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리뷰> 무릎딱지 / 샤를로트 문드리크 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불확실한 인생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 한 가지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맞이할 가장 명확한 미래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즐겨 보는 편이다.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얇지만, 결코 얕지는 않다. 활자와 그림이 잘 어우러져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그림책이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책만큼 모든 세대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인쇄 매체도 없을 것이다. 무게감이 적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죽음을 다룬 그림책들이 꽤 많아서 놀랐다.
'무릎딱지'(샤를로트 문드리크 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도 그런 그림책 중 하나이다. 주인공 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서술의 많은 부분을 주인공 아이의 독백으로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독백이 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투정하듯 내뱉는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엄마를 잃은 아이가 느끼는 감정선들에 하나하나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거의 날것에 가까운 직접적인 아이의 화법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죽음에 대한 가장 원형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는 아픔과 슬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빨간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엄마의 죽음 이전에 아이가 겪었을 가장 큰 아픔은 뛰어놀다가 넘어져 얻게 된 무릎의 까짐 정도였을 것이다. 무릎에서 흐르는 빨간 피를 보며 아이는 고통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주와도 다름없는 엄마가 죽었으니,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붉게 물들여질 만하다. 표지부터 빨간색으로 가득한 것은 아이의 상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죽음은 남겨진 사람과 떠난 사람 사이의 완전한 단절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인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추억에 잠기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내 유품들 말고는 만질 수 있는 실체란 아무것도 없음을 자각하게 되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실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나이는 없다. 죽음에 대해 납득해야 하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죽음이든 다른 이의 죽음이든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부고, 뉴스에서 접하는 대형 참사 등의 소식은 죽음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 준다.
유가족들에게 죽음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타인의 위로가 터널 밖의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지만, 밖으로 나오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현실을 마주하며 받아들이고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 나가야 한다.
‘무릎딱지’는 엄마를 잃은 아이가 느끼는 슬픔, 분노, 좌절, 수용의 감정들을 어떻게 통과해 가는지 그 과정을 담아낸다. 아이가 느끼게 될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한 별다른 장치 같은 것은 없다. 매우 진지하고 이성적인 톤으로 죽음에 대해 직면하게 만든다.
작가는 책을 통해 죽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받아들여하는지 가장 현실적으로 조언해준다. 주인공 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무릎에 난 상처에 비유한다. 딱지가 앉아야 새살이 돋고 나을 수 있는 것처럼, 엄마를 잃어 큰 상처를 얻게 된 아이에게 필요한 것 역시 '딱지'였다.
나는 이것을 '마음 딱지'라고 부르고 싶다. 충분히 아파하는 과정을 거치고 너무 고통스럽고 많이 힘들지만 용기 내어 받아들일 때 마음 딱지가 생길 수 있다. 시간이 흐른 후 자연스럽게 딱지가 떨어지고 마음에도 새 살이 돋아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사진출처: 구글검색 "그림책 무릎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