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의 이유

by 두루

요 몇 달간 퇴근 직후 소진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있다. 이 소진됨은 잠을 아무리 충분히 자고 일어나도 재충전되지 않는다. 테니스를 치러 갈 의욕도 생기지 않고, 빼놓지 않던 아침운동도 가지 않고 있다.


어젠 2주 만에 요가를 갔다. 몸이 뻣뻣하게 굳고, 뻣뻣함 사이를 테니스로 인해 성장한 근육이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트위스트도, 후굴도 모두 힘겨웠다. 몸이 충분히 움직여지지 않으니 땀도 나지 않았다.


더워서 그런가. 여름이라 그런가, 한 일주일 충분히 쉬어야 하나.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것에는 알게 모르게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신규 입사자가 들어오고 나서 나는 생전 처음 어딘지 모르게 내 모든 것이 공개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노력이나 과정을 남에게 여실히 드러낸 적이 없다. 보스에겐 밤을 새우더라도 내 딴에 완벽해 보이는 결과물을 제공했다. 의뢰인이나 자문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내가 어떤 헛물을 얼마큼 켜던지, 그것은 은밀했다. 혼자만의 시행착오이고, 충분한 시행착오를 마음껏 겪은 후 완성된 결과물을 제공하곤 하였다.


신규 입사자에게 업무를 배분한다는 것은, 내가 치러야 할 시행착오의 과정까지 배분해주는 것이었다. 업무를 가르친다는 것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가르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왔는데, 이 방식을 납득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깊이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니 이 과정을 겪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필요 이상의 설명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는 말이 많은 직장 상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효율적으로 지시하지 못하고 말이 많은 직장상사 라니.


로펌에 있을 때도, 회사에 있을 때도 나에겐 누구도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질문을 던져줄 뿐, 누구도 구체적 방법을 알려준 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신규 입사자에게, 대표에게, 협업 상대방에게, 팀원에게, 새로 이동할 팀원에게, 또 테니스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말은 나를 소진하게 한다.

나는 말을 하면 소진된다.

나의 직업은 말을 하는 직업이다.

나의 위치는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여러 질문을 고민해야 하고 결론을 고민해야 하는 위치다.


기계가 되고 싶다

는 생각은, 스무 살에도 했었는데 지금도 한다.


기계가 될 수 없으니, 소진되면서도 사회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도 있다.

가치판단을 하지 말자. 평가는 내 사고의 영역이 아니다. 나에 대한 평가도 남에 대한 평가도.


나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고민할 뿐. 그게 중요한지 사소한지 맞는 방향인지 답답한 방향인지는 내 판단의 영역이 아니다. 틀린 방향이라면, 적당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 제 방향을 찾을 것. 사필귀정이다. 나는 그저 눈앞의 일을 해 나갈 뿐.


결국 언제나

소진의 이유는

평판. 평가. 의심.

지지받고 싶은 마음.


머리를 많이 쓰고 말을 많이 해서 힘들다.

더워서 힘들다.

이 정도로 심플하게 끝내면 되는 하루 끝에


오늘은 굳이 한번 더 생각을 해본다.

나의 해방 일지에 나오는 대사처럼

내 모든 근육과 정신과 내장과 두뇌와 혈관을 모두 꺼내 뙤약볕 아래 탈탈 털어 말려 다시 장착하고 싶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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