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

by 두루

이번 주 금요일은 왠지 하루 종일 우울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이 기분에 잠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장 급한 일도 없고, 여기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버티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어서 1시간 일찍 퇴근했다. 요가원에 갔다. 내가 가는 저녁반은 대개 테라피, 힐링 이런 강도 낮은 스트레칭 수업이라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는데, 한 시간 일찍 가니 내가 매우 좋아하는 하타요가 수업이 있었다. 요가로 땀을 빼고 나니, 유일한 팀원의 퇴사 소식과 이 회사에 적응해 나가는 고단함으로부터 약간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일요일마다 같이 테니스를 하면서 한동안 평일이고 주말이고 자주 만나던 친구는, 요즘 혼자만의 시간 시즌이라 얼굴 보기가 어렵다. 퇴근 후 곧장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적적한 날이 있다.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서 파는 로또라도 한 이만원어치 사 가면 좋을텐데 현금도 없었다. 그날따라 성시경의 그리움과 이별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한층 다운되고 우울한 기분에 잘 맞아들었다. 이렇게 울적할 때에는 평소에 왠만하면 늘 틀어놓는 슈프림팀이나 다듀는 조금 산만하다. 퇴근이다. 요가도 끝냈다. 이 저녁 만날 친구도, 예정된 영혼 없는 모임도 없다. 마음껏 우울함과 막막함과 적적함에 젖어들어 갈 타이밍이었다.


그래도 주말인데. 아기다리고기다리 던주말인데.

집에 들러 차를 가지고 건대에 스파이더맨을 보러 갔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본 애들은 추억돋기가 장난이 아녔을 것 같다만, 나는 휴대폰을 한 다섯 번은 봤다. 뒷사람한테 민폐이기 때문에 액정은 안켜는 게 인지상정인 걸 안다만, 시계를 한 30분마다 본 것 같다. 언젠가부터 영화들이 길어도 너무 길다. 이 정도면 뮤지컬처럼 중간에 한번 끊어가는게 맞다고 본다. 타이타닉 러닝타임이 3시간으로 길다고, 길다고 뉴스에 났던게 엊그제 같은데 (97년작), 이젠 두시간 반 정도는 거의 디폴트값인 것 같다.


자정이 다 된 시각. 유쾌한 마블영화로 기분 전환을 좀 해보려 했던 전략이 실패했다. 나는 더 지쳐버렸고, 연극이 끝난 후 막 내린 무대처럼 스타시티의 모든 점포들은 이미 몇시간 전 모두 셔터를 내렸다. 텅텅 빈 자정의 도로 위에서, 집으로 찍은 네비를 종료하고 오랜만에 미음나루를 찍었다. 뭐 별 게 있지도 않고, 큰 나무와, 한강과, 맞은편 성수동 좋은 아파트들 뷰가 있는 한산한 주차장이다. 작년 여름 쯤인가, 저녁에 운전연습을 하고는 싶은데 딱히 갈 데가 없어 가끔 찍고 왔던 곳이다.


성시경과 네비녀의 목소리를 번갈아 들으며, 강릉까지 가버릴까, 지금 갔다오면 내일 아침 피티 못가려나 세번 쯤 고민했지만 미음나루로 착실히 빠졌다. 네비녀를 끄고 반사된 불빛이 너울거리는 한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성시경의 노래를 두어곡쯤 들었다. 그러고 집에 오니 잠이 잘 왔다. 내 안에 잘도 파고드는 꼬맹이를 안고 전기장판과 꼬맹의 체온과 내 체온이 한데 섞여 포근함을 느끼며 꿈도 안꾸고 꿀잠을 잤다.


회사는 회사지. 나는 나지. 직업은 직업이지. 나는 나지. 막막한 것은 막막한 것이고, 해야 할 일은 하면 되는 것이지. 하루는 이렇게 가는 것이지. 가끔은 이렇게 가만히 유튜브를 보며 누워서는 해결이 안되는 적적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게 얼만큼의 감정이든 하루일 뿐이다. 하루의 일일 뿐이다.


오늘 아침에 헬스장에서 피티를 받고, 요가까지 갔다가 부대찌개를 든든히 사먹고, 마트 쇼핑을 하고 집에서 푸지게 낮잠을 잔 후 기분좋게 어제의 저녁을 쓰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하루의 일일 뿐.


어떤 하루는 적적하고, 어떤 하루는 재미있고, 어떤 하루는 몹시 바쁘고, 어떤 하루는 지루하고, 어떤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을 때도 있다. 다 하루의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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