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와 올드보이 (1)

by 두루

<스포 엄청 있음>


'동백꽃 필 무렵'을 재밌게 봤다. 공효진과 강하늘이라는 당대 제일 연기 잘하는 두 배우를 모셔놓고, 맛깔난 대사와 신박한 설정 일색인 이 드라마는 그냥 중간부터 봐도 그 자리에서 빠져들곤 했다. 채널 돌리다가 나오는 재방송을 드문드문 보다가 아예 각 잡고 넷플릭스에서 정주행.


그런데, 응당 '트렌디한 미니시리즈'일 것만 같은 기대와는 달리, 제대로 뚜껑을 열어본 '동백이'의 감성은 너무 올드했다. 주말연속극만큼 진부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미워도 다시 한번'만큼 전통적이었다.


세상 앞에 나약했던 동백이가 용기를 얻는 것 좋다. 쿨하고 철없어 보이는 향미가 알고 보니 동생에게 조건 없이 모든 것을 퍼준 희생의 아이콘이었다는 설정 역시 좋다. 7살 딸을 고아원에 버리고 도망간 동백이 엄마가 사실은 그 생애 동안 내내 동백이를 찾아 헤매며 그리워했다는 스토리에도 감동이 있다. 애까지 딸린 미혼녀 동백이에게 첫눈에 반해 홀어머니도 동네 사람들 입방아도 죄다 나몰라요, 첫 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직진하는 용식이 캐릭터도 멋지다, 좋다. 살인범의 정체를 결국 '민초'들과 민초를 대표하는 용식이가 밝혀낸다는 것도, 민초들의 단합 덕분에 동백이 어머니가 적시에 수술받는 것도 좋다. 다 좋다, 좋아.


권선징악,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다. 착한 사람 행복해지고, 주인공 남녀는 결혼에 골인하는 것을 보는 것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다. 열린 결말, 시청자의 해석에 맡긴다 운운 이런 거 극혐. 모름지기 TV는 바보상자여야 제 맛이다.


이런 권선징악 플롯이나 각자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 착한 이야기라는 뻔한 설정이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진부함에 반항심을 느꼈던 포인트는, 동백이가 상처를 말하는 방식과 세상이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다. 동백이가 쉼없이 넋두리를 하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방식에 공감할 수 없었다.


거대한 세상 앞에 홀로 나약한 동백이는, 각 회차 중 반드시 한 20분은 용식이나 엄마 앞에서 넋두리를 한다. 예전에 어렸을 때, 다른 애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왔는데, 나만 김밥을 사서 왔네 어쨌네. 미혼모라고 손가락질을 받아서 내가 참 서글펐네 어쨌네. 강종렬이 맨날 밖에만 싸돌아 다녀서 내가 임신했다는 말도 못했네 어쨌네. 동백이의 슬픈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는데도, 모든 회차에서 동백이는 한풀이를 하고야 말았다. 작가가 대본을 쓸 때 동백이 넋두리 분량을 미리 할당을 해놓고 들어가나 싶기도.


그리고 사람들은 동백이한테 참 대놓고 뭐라 뭐라 말을 잘한다. 성실하게 빠짐없이 등장하는 넋두리만큼, 참 대놓고 손가락질을 한다. 너무 대놓고 표현하니까, 이건 뭐 조선 말기 유행하던 판소리인가 싶기도.


동네 센 언니들은 술집을 하는 동백이한테, 예쁜 애가 꼬리 친다는 대사를 대놓고 한다. 강종렬 어머니는 동백이에게 너는 병균 같다는 누가 봐도 악담인 말을 퍼붓는다. 얘가 나를 맥이는 건지 절대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이 참 뭐랄까.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감안해주려고 해도, 권선징악보다 더 드라마 같았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꿀밤을 맞았더래요 만큼 직접적이라, 한창 몰입해 있다가 '아 맞다 이거 드라마지' 현타가 오곤 했다. 오히려 꿀밤을 맞은 신데렐라가 더 은유적인걸.

작가의 이전글불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