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와 올드보이(2)

by 두루

그래서, 동백이를 보다 보면, 아니 정말 저렇게 대놓고 못되게 군다고? 싶은 것이다.


사실 우린 참 대놓고 뭐라고는 잘 안 하지 않나. 특히나 이토록 면면이 약자인, 공격성이 1도 없는 존재에게는, 정말 뭐라고 잘 못하지 않나. 우리는 따돌릴지언정, 누구도 나서서 못된 말을 막 서슴없이 하진 않지 않나.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지, 사회가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말한다. 내가 경험한 사회의 말하는 방식은 '눈치'다. 사람들은 눈치를 준다.


내 목소리가 구성원들의 목소리보다 크다면? 사람들은 내게 일부러 목소리를 더 낮춰 말할 것이다. 또는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하겠지. "모모 씨는 정말 씩씩해서 좋아~" "맞아, 저기 탕비실에서도 목소리가 들리더라니까." "모모 씨 어제 땡땡 회사 아무개 대리랑 통화했지? 나 다 들었잖아"


사람들 간 공기 속에는 웬만하면 아리송함이라는 게 둥둥 떠다닌다. 좋은 뜻이 숨어있든, 상처 주는 뜻이 숨어있든, 말에는 함의가 있다. 함의가 없는데도 함의를 판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의가 있는데도 그걸 참 제때 못 알아차리는 인간들이 있기도 한다. 그런데, 함의를 드러내는 인간들은 잘 없던데 말이다.


내가 만약 친구나 심리상담가에게 "사람들이 저를 비웃는 것 같아요. 멸시해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내게 뭐라고 조언할까? 아마 '피해망상'이라고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너에게 큰 관심이 없어. 자격지심이야. 자신감을 가져. love yourself.


우리는 남들과 다른 것에는 언제나 고개를 갸웃한다. 동백이는 남들 다 있는 부모도 없고, 남들 다 있는 남편도 없는데, 남편 없는 여자에게는 없어야 할 아들이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동백이에게 갸웃할 수밖에 없다.


동백이는 고아, 미혼모, 술집 사장에 대한 편견을 '눈치'로 전달받지 않고 말로 즉시 전달받기 때문에 "와, 나한테 미혼모라고 한다니까? 나한테 고아래! 술집 한단다! 어쩜 사람들이 그렇게 못됐지? 무개념이야!"라고 그 부당한 편견에 즉시 항거할 수 있다.


하지만 동백이가 아닌 우리는, 못된 말을 듣지는 않지만 못된 편견들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듣지 않았지만 들리는 것 같은 그러한 편견 속에서 동백이처럼 즉시 항거할 수 있는가?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항거할 수조차 없다. 갖가지 편견들의 그물에 걸릴 때마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대한 자의식을 탓한다. "내가 오버해서 생각하는 거겠지"


동백이에게 사회의 편견은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 누가 봐도 옳지 않은 편견이라 온 시청자와 용식이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희생을 논할 수 있었지만, 우리 안의 편견은 그렇게 심플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백이를 보며, 뭐 저렇게 다 쉽지라고 생각했다.


동백이는 혼자 일어서지 않았다. 용식이를 통해 일어섰다. 하지만 나는 혼자 일어나야 한다. 저마다의 편견과 통념에 싸우는 모든 자들은, 동백이처럼 한풀이할 명확한 대상이 없으므로, 그저 내 안의 자의식과만 싸우면 된다. 내가 오버했다 치고, 내 자의식이 크다 치고, 사람들은 관심 없다 치고, 아 나 몰라 치고, 그저 나의 길을 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라는, 이제는 원작보다 올드보이의 첫 대사로 더 유명한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자의식에 다소간의 눈치를 보다가, 내가 왜 이러나 싶어 끄적여 보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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