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을 쉼 없이 달려왔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벽면을 채운 학위기, 서랍 속 수많은 자격증,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의 승승장구. 나는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 했고, 내가 관리하는 이들의 행복과 성과를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을 기꺼이 갈아 넣었다.
하지만 화려한 성적표 뒤에 남겨진 것은 지독한 공허함과 답답함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인가?"라는 질문이 가슴을 후벼 팔 때쯤, 운명은 가혹하게도 직장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시험지를 내밀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한쪽이 무너질 것 같은 절박함 속에서, 나는 나의 화려한 '자리'를 포기하고 가족이라는 품을 선택했다.
가정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직장에서 나의 영토는 사라졌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한때 나를 우러러보던 이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왜 그 자리를 포기하고 저러고 있지?"라는 무언의 질문들, 그리고 예전만큼 주어지지 않는 기회들. 다시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쳐보았지만, 한 번 비워진 자리는 쉽게 되찾아지지 않았다.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자존심과 서글픈 상실감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나의 공허함을 '성장'이라는 양분으로 채우기로 했다.
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나의 가치까지 잃은 것은 아니기에, 나는 펜을 들고 글을 썼고 새로운 자격증 공부에 몰입했다. 그 몰입의 시간은 나를 우울의 늪에서 건져 올린 구명줄이었다. 남들의 수군거림과 동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이제 직장 안에서의 '승진'이 아닌 인생 전체에서의 '승리'를 준비한다.
보도 섀퍼가 말했듯, 승자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 나는 내 삶의 핸들을 다시 잡았다. 비록 지금의 자리가 과거보다 낮아 보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진짜 나'를 만난다.
남은 10년, 나는 다시 나를 위해 투자하려 한다. 병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글 쓰는 간호사로, 공부하는 전문가로, 그리고 80세 현역을 꿈꾸는 개척자로 말이다. 지금의 이 시린 가슴은 더 단단한 열매를 맺기 위한 겨울일 뿐이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향으로 두 번째 항해를 시작했으니까.
후회는 어제의 웅덩이에 버려두고, 나는 오늘 나의 성장을 기록한다. 훗날 돌아보았을 때, 그때 그 자리를 포기했던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신의 한 수'였음을 나의 성취로 증명해 보일 것이다.